분홍 나막신 문학과지성 시인선 47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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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동시에 시집에서 울리는 묵직한 이야기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남긴 먼지를 훌훌 털어가는 발견과 사유의 질문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들이었다.

송찬호 시인님의 『분홍 나막신』은 고전 도서에서나 찾아볼 법한 이야기를 요즘의 시선으로 느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흔적을 언어로 들려주셨다. 은폐되고 고립된 어둑한 밤의 거리를 모닥불을 지펴 "코밑이 거뭇거뭇 해지는 아이도 아버지처럼 불꽃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밤이었다"(63p, 모닥불 부분) 고"냇가에 살얼음이 하얗게 떠 있던 늦가을 아침이었다"(99p, '화북化北을 지나며' 부분)의 발걸음으로 "부유하는 공기들"(67p, '부유하는 공기들' 제목) 을 전해준 시어에 눈길의 발걸음이 마음에 멈춰 미동도 없이 서성이게 했다.

몇 달이 지난 오늘, 다시 시집을 펼쳤다. 그리고 누군가의 시간이 깃든 흔적의 이야기도 함께 꺼내었다. 내게 시집과 찻잔은 참으로 귀한 선물로 만나 인연이 되었다. 앞으로 내 안에 미학의 발견과 오래된 시간에 깃든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닦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먼지와 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란 울림을 주었다.

알 수는 없는 무수 함들이 이야기로 빚어져 이슬로 담아 질료의 원형을 찾아보라는 물음을 준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중에서)의 두 가지 선물로 불을 지피고 꺼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때론 뜨겁고 따뜻하며 정열일 것이고 언젠가는 바람의 안내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는 재가 되어 존재의 무엇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무엇도 대답할 수 없는 앎에 있어 존재를 찾으려 할 때마다 오르고 내리는 정의는 장담할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과정이 삶의 의미에 있어 디딤돌이 되어주는 값진 보석이라면 비록 차갑고 단단한 돌처럼 혹은 황폐한 대지의 메마름이 되어 다시는 피어날 수 없을 것 같을지라도 보자기를 펼쳐야 모란이 꽃 피는 그 씁쓸한 눈빛이라도 보이지 않겠냐는 작은 희망의 기억, 그리움이 어디선가는 태어나고 울리는 목소리가 되지 않던가.



억새 바람 불던 어느 날의 오름을 바라보던 지난가을, 태움으로 검게 그을려질 오름이 되더라도 다음을 기다리는 생명은 초록이 될 풍경을 그리며 기약했다. '초록의 말'이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해도 반복의 다다름에 정화는 언제든 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금동반가사유상"의 금빛을 바라보던 시인의 발견처럼 더딘 발걸음의 엉성한 보폭으로 어둠을 더디며 따라가는 시간일지라도 언젠가 만나어질 기약이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밤의 눈을 찌르지 않고도 기다리는 날이더라도 그 발견을 담고 싶다. 그동안 여러 시를 읽었지만 요즘에 읽는 시집과는 분명 다른 시인의 언어를 통해 발견과 사유의 질문을 읽었다. 깊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다음에 다시 이 시집을 읽으면 "냉이꽃" , "눈사람"의 시처럼 또 다른 눈으로 발견하는 시간을 만날지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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