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화는 언제나 재미있다. 이상하게 동화 속 사상이 옛날 사상이거나 폭력적이더라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알려진 동화를 보면 꽤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난 읽을 때 충격은 받지만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다거나 하진 않는다. 다른 현대 소설은 똑같이 '가상의 이야기'라도 인물이나 내용 전개에 화가 날 때가 있는데 동화는 왜 그렇지 않은지 새삼 궁금했다.

왜 콜브륀과 죈느는 아이드비크 드 엘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아이드비크가 기억하지 못하게 마법을 부린 것일까? 아니면 남녀 주인공이 기억력이 안 좋을 것인가? 분명 지은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을텐데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메두사의 대한 소론에서 작가가 하려는 내용이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다.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알겠는데..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도 알긴 알겠는데... 정확히는 알겠는데가 아니고 읽었는데 눈으로만 읽고 머리로 읽지를 못했다. 그래서 알긴 아는데 글자만 안다. ㅋㅋㅋ 본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라고 물어보면 해석할 수가 없어서 아무말도 못하겠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은 세대의 연쇄 고리 안에 죽음을 밀어넣어 연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즉시 화급하게 바통을 넘긴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무엇의 바통을 넘긴다. 정면으로 마주 보면 안되는 무엇의 바통을 넘겨버린다. 얼굴 없는 앞면을 슬쩍 떠넘긴다. 울부짖는 임무를 더 젊은 여자에게 맡기는 이유는 홀로 지옥을 떠맡을 용기가 없어서일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죽음의 비명을 중단시킬 욕망을 표명한 적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자체로는 무의미에 불과한 이름 하나를 건네준다. 언어를 넘기는 것이다. 여자는 입을 벌려 울부짖으며 고통 속에서 낳은 어린애의 등에 죽음의 무게를 옮겨놓는다. 기원을 넘기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름을 전달한다. 어머니는 울부짖음을 전달한다.

P 104


일부만 이해할 거 같은 아리송한 문장 속에서 인상 깊었던건 출산에 대한 생각이다. 출산에 대해서 공포심을 느낀 적은 있지만 남에게 지옥을 떠맡긴다? 혹은 혼자만 이 고통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표현되는게 신기하면서 동감이 안갔다. 작가가 부모랑 사이가 안 좋았나 까지 생각했다.

계속 얼굴 없는 앞면에 대해서도 말하고, 여자의 얼굴로 겹쳐지는데 난 무슨 작가가 앞면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다. 뭐 작가 뜻은 따로 있겠지만 난 별로 와닿지도 않고 기분도 안 좋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과의 관계를 끊는다. 관계 단절을 좋아한다. 가시적인 것을 증오하기를 즐긴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가 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것에 열정적으로 몰두한다. 절대로 객체일 수 없는 무엇에 열중하고, 책에 열중한다. 펼쳐진 책은 마치 이제 막 떠오르려고 가물거리는 단어를 향해 벌린 입과도 같다. 그 입은 되찾은 단어를 이미 알던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되살리게 될 것이다.

P118


이건 글쓰는 사람에 대한 특성이 생각나서 재미있게 읽었던 문장. 증오하는 건 아닌거 같지만.

메두사에 관한 소론에서 기분이 별로였던 건 성기나 생식 활동에 동반되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굳이 왜 그 단어를 써야 하는가. 이게 왜 쓰지 말아야 할 단어냐고 물어보면 할말이 없긴 하다. 성적인 게 꼭 안 나올 필요는 없긴 한데.


어쨌든 예전부터 생각했고 아직도 결론이 난 적 없는 문제 중 하나를 적어보고 싶다. 난 예술 작품에서 성기나 생식 활동이 두드러지게 등장할 때, 작가 자신이 일단 쓰고 싶어서 쓴 다음에 대단한 무언가로(섹슈얼한 의미가 아닌 뭔가 의미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그치만 그냥 내가 해석을 못해서 작가를 저격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게 크다.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뜻이 중요한 거라고 하면 또 할말이 없다. 제대로 된 해석을 못하는 사람은 너무 힘들다. 나도 아이러니한게 아예 작품에 나오는 모든 성적인 무언가가 싫은거면 '그래서 싫다'라고 확실히 말할텐데 또 그건 아니다. 어쨌든 파스칼 키냐르에 메두사에 관한 소론은 어려었고, 난 이해를 못했다...


친구가 문해력이 걱정된다고 뭔 공부를 해보라고 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