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낸 워터프루프 도서
물에 안 젖는다는 홍보를 보고 무척 궁금해서 한 권은 사봐야겠지 싶었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 말고도 다른 워터프루프 시리즈를 갖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고민하다가 아포칼립스, 세계 종말을 테마로 하는 책이어서 해가 지는 곳으로를 구매했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따옴표가 없어서 엄청 신선했다. 따옴표가 없어!!? 요즘 대세는 따옴표 없는 글인가 보다. 신기신기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다.
권태롭지만 소소한 일상이 그리워질 정도로 세상은 미쳐 돌아간다.
어린 소녀의 간이 치료제라는 루머가 돌고
내가 살기 위해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약탈한다.
사람을 잡아 강제 징용하고, 군인으로 쓰고, 죽이고, 폭행한다.
세계가 멸망되기 전, 인물마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류는 생계를 책임지지만 나아지지 않는 미래 때문에 자기를 돌보지 못했고, 가족을 외면했다.
도리는 학자금과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건지는 집에서는 아빠에게 맞고, 학교에서도 맞아 많은 사람에게 시달렸다.
미소는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 없이 외로웠다.
지나의 아버지처럼, 삼촌들처럼, 사람들을 납치했던 러시아 무장 단체들처럼
내가 살기 위해서, 어떤 이를 위해서라고 변명하며 적극적으로 남을 해하지 않는다. 물론 도리도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남의 목숨 값을 들고 도망갔기에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언뜻 비치는 죄책감이 앞에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 중 하나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컸다.
이건 정말 매력적이다. 한 번씩 주인공들이 바뀌는데 류였다가, 도리였다가, 지나였다가, 건지였다가, 미소였다가. 시시각각 바뀐다. 주인공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건 즐겁다.
그동안 누나는 무사했던가. 우리와 함께라면 안전한 줄 알았다. 어른들이 총과 차로 우리를 지켜 주는 줄 알았다. 흉하고 위험한 사람은 바깥에만 있을 거라 믿었다. 누나는 얼마나 멀리 갈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저씨가 누나를 때릴 때 막았어야 했다. 누나는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을까. 누나의 눈동자의 사로잡혀 꼼짝할 수 없던 때 내게 닥친 감정. 그와 비슷한 이름을 찾아냈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 두겠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 언젠가 만에 하나 내게 다시 예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가 이유 없이 나를 때리거나 죽이려 한다면, 그럼 그때 누나의 그 눈빛을 떠올릴 것이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P31 건지
적은 내부의 있다.
주위 어른들이 자기를 믿으라고 하면서 사실은 제일 못 믿을 사람들이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런 일들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안 겪고 성장 안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인생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건지의 다짐은 도리와 닮았다. 용기를 내는 건 힘들지만, 나와 사랑하는 주변 사람을 지킨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이 떨렸다.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난 파렴치한이 아니야.
알아. 아빠는 날 사랑하지. 난 설득할 필요는 없어.
다른 방법이 없어. 총을 들지 않으면 노역을 해야 해. 그럼 기회가 사라지는 거야. 난 인정받을 거고, 그래서 널 반드시 살려 낼 거다.
아빠한테 뭘 바라는 게 아니야. 아빠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지. 나처럼. 그러니까 내게 좋아질 거라고, 여기 모두 같은 편이라고 말하지 마. 이런 식으로 얻는 희망이란 게 어떻게 가능해?
지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 기회라고 말하지 마. 이게 최선이라고 말하지 마. 제발
아버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커다래서, 눈앞에서 내가 잠시만 사라져도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걱정하던 아버지를 짓눌러 버렸다. 어쨌든 굶지 않고 죽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견디라고 말하는 아버지가 예전 아버지를 이겼다. 아버지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 104 - P105 지나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일
아무리 노력해도 썩은 지푸라기로 제대로 된 밧줄을 만들 수 없다.
아버지는 지나를 위해서 군인이 되었고 어쩔 수 없다고 정당화하지만, 난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군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나 아버지는 지나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빵도 중요하고, 생명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정신이 더 중요할 때가 있더라.
아포칼립스 물답게 우울하지만 계속 한 가닥 희망을 말하며, 결말도 나름 희망차다.
배경은 아포칼립스이지만, 그에 따른 굵직한 사건들과 해결 방법보다 개개인의 생각을 곱씹는 재미가 더 많은 책이었다.
세계 종말이 왔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주인공들이 아름답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