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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7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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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 소설을 좋아하진 않는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여성 캐릭터에 대한 몸매 평가와 구시대적 성적 농담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다가 관둔 적이 많았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달랐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모라고 불리는 거장으로, <모방법>, <낙원> 등의 유명한 작품을 쓴 여성 작가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는 일본 남성 작가들에게서 느껴지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배제되어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특정한 여성 캐릭터의 몸매 평가도, 이상한 성적 상상도, 지금까지 시대가 요구해온 수동적이고 정적인 여성상도 없었다. 나처럼 일본 소설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갖고 있는 독자도 ‘미미 여사’의 작품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봄>은 미야베 미유키가 작가로 데뷔한 지 3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봉건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인데, 예전 작품에 비해 좀 더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고코인’이라는 마을에서 ‘기타미’ 번의 6대 번주 ‘시게오키’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여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게오키’의 숨겨진 과거는 끔찍하면서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키’, ‘오리베’, ‘한주로’ 등의 등장 인물은 ‘시게오키’의 숨겨진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따뜻하게 연대하고, 공감하고, 토의한다. 이 때문에 흉악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이 소설이 따뜻한 분위기를 끝까지 잃지 않는다. 소설 속 다정하고 선한 인물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시로타 너는 앞으로 많은 환자를 상대하게 될 테지. 다양한 증상을 듣고 병례를 보게 될 테지. 그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잘 살펴보도록 해라.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고 갖은 수를 써서 신체의 생을 구해라. 그게 바로 의사가 ‘혼’이라는 것의 실체 없는 존재를 접하고 그 빛을 존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상의 봄> 상권에서 ‘의사 시로타 노보루’는 자신이 스승으로 부턴 배운 내용을 이렇게 말한다. 내겐 이 문장이 (상)권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 또한 미래에 의사가 될 사람이기에, 이 문장을 통해 의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시게오케’가 사령에 들렸다고 생각할 때, ‘노보루’는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남들이 주술적인 힘에 매달릴 때, 노보루는 냉철하고 과학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의 ‘질환’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비판적인 사고방식은 의학도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축적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질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바로 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의사 노보루의 의학철학은 이제 본과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시작하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의 봄> 하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바로 주인공 ‘다키’의 능동적인 여성상이다. 다키는 일본의 봉건제 사회인 ‘에도 시대’의 인물이지만, 그 당시 일반적인 여자와 다르다. 다키는 이혼녀다. 끊이지 않는 시어머니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창피해하면서 숨지 않는다. 엇나가버린 과거를 인정하고, 현생과 마주한다. 다키는 친정으로 돌아와서도 농사일을 하면서 꿋꿋하게 아버지를 봉양하면서 산다. 또한 다키는 ‘행동하는’ 여자다. 사랑하는 사람(시게오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다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일반적인 에도 시대의 여성이라면, 사랑하는 남자 곁에서 상처를 보듬어주고 위로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다키는 다른 남성 인물들과 함께 물리적인 해결을 위해 밖으로 나가고, 정보를 수집하고, 추리한다. 이런 다키의 적극적이고 강인한 모습에 시게오키는 역으로 다키에게 의지하는 신세가 된다. <세상의 봄>에는 다키 외에도 이런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들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에도 시대 속 여성의 주도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작가의 이런 열린 관점은 <세상의 봄>을 더 풍요롭고 개성있는 작품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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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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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생긴 것이 46억 년 전이니, 세균은 지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겨났고, 지구 역사의 4분의 1쯤을 자기들끼리 채우고 있었던 셈이다. 인류는 이제 막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손님 같은 모습인데 자기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고 지구의 지배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쉽게’ 쓴다고 했다. <세균 박람회>는 생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ATP가 무엇인지, 원핵세포와 진핵 세포의 차이는 무엇인지,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는 뭔지, 발효가 뭔지, DNA가 무엇인지 몰라도 <세균 박람회>는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런 점에서 곽재식 작가의 생물학적 지식이 더욱 돋보인다. 진정으로 어떤 지식을 ‘안다’고 한다면, 남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 곽재식 작가는 자신이 논문을 쓰면서 알게된 다양한 세균에 관한 지식을 쉽고 대중적인 동사와 명사로 풀어낸다. 책이 조금 두껍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니 페이지가 정말 잘 넘어가서 더 의욕적으로 읽었던 것 같다.

<세균 박람회>는 지구에서 처음 탄생한 생명체인 ‘세균’을 과거, 현재, 미래, 우주라는 카테고리 안에 분류했다. 곽재식 작가는 각 세균들의 매력적인 과학 포인트를 짚어낸 후, 그 이야기를 쉬운 일상 언어로 재구성했다. ‘세균’이라는 주제가 그렇게 흥미로운 소재가 아니지만, 곽재식 작가는 세균 이야기를 남의 가십거리를 읽는 것처럼 킥킥댈 수 있도록 한다. 단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과학 책 중 가장 쉽고 재밌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는 지식을 이렇게 재밌고 쉽게 풀어낼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글쓰기 실력과 그 지식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곽재식 작가는 이 모든 자질을 갖춰 <세균 박람회>같은 책이 나왔겠지. <세균 박람회>는 세균에 관한 해박한 지식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진정으로 어떤 것을 ‘안다면’, 이 정도 글은 쓸 수 있어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책에서 한 번 읽고 넘어간 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지식은 다 허구였다. 그런 의미에서 곽재식 작가가 정말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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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자연 - 생물학이 사랑한 모델생물 이야기
김우재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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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쓴 글을 읽으면 감탄하는 동시에 곧바로 저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작가를 향해 눈을 흘기는 버릇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질투를 소심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선택된 자연>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저자 소개란으로 돌아와 눈을 흘겼는지 모르겠다.

<선택된 자연>에서 초파리 유전학자 ‘이우재’는 생물학 연구의 대표적인 ‘모델생물’ 26종과 관련된 과학자와 과학사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소개한다. 작가는 모델 생물에 대한 지식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모델 생물이 선택된 역사적인 이유와 관련된 과학자의 이론, 과학계의 흐름, 추가적인 생물학적 지식을 유기적으로 서술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가 생물학적 지식을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 황우석 박사의 표절 사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일벼, 과학 연구가 거대 자본에 종속되는 문제 등을 모델 생물과 연관지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과학은 결국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단호하게 보여준다. 과학은 과학적 지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도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이슈에 악용될 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

작가는 <선택된 자연>의 끄트머리에서 ‘과학이 가지는 사회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과학의 사회적 특성을 이해할 때, 과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방향도 알 수 있다. 과학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작가는 이를 ‘과학적 인본주의 (scientific humanism)’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과학적 인본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사회적인 논의가 있을 때,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정량적인 수치를 제공해 인문학과 철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책임이 바로 과학에 있다. 또한, 과학은 시민들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식과 비판적 정신을 제공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오로지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만 충족하는 과학은 지양해야 한다.

오랜만에 정말 잘 쓰여진 과학책을 만난 것 같다. 생물학 연구에 관한 다양한 지식과 그 연구가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을 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선택된 자연>을 읽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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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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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제시대 때 징용하지 않았고 위안부 따윈 없었다고? 야 이 미개한 사람들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그 역사의 산 증인들이 사라진다고 이따위 개소리를 하면서 책을 쓰냐? 종이도 아깝다. 그리고 이따위 글에 별 5개주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를 위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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