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적인 아이러니 속에서 이 기록이 그 역할을 하리라는 믿음,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라는 자각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도록 다독여주었습니다." (p249) 


2447명. 2018년에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채 발견된 사람들의 숫자다. 사는 과정도 사무치게 외로웠지만 죽어서도 고립된 채 뒤늦게 발견된 이들. 삶은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했지만, 고독사로 죽은 자들에게는 죽음보다 삶이 더 큰 고통이었을 것 같다는 무례한 생각이 든다. 


김완 작가는 이렇게 혼자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집을 청소해주는 ‘특수청소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김완 작가는 이 일을 하기 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작가로서의 따뜻한 시선과 감수성이 특수청소업을 만나 탄생되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의 특별함을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글로 구성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일목요연하게 글을 쓰는 재주가 부족해 일단 나열해보기로 했다. 


1.  작가는 고독사한 자들을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다. 사실 홀로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을 바라볼때, 대부분 안타까운 시선이 동반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시선에서 과감히 벗어난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누구도 남에게 쉽게 동정받고 싶지 않을테니까. 그런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작가는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면서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의 인생에 남아있던 열정, 사랑, 취향, 근면함을 조명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홀로 죽은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언급되는 내용처럼,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김완 작가 또한 일상적으로 죽음을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기에, 글에서 삶에 대한 초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삶을 덮쳐오는 가난과 밥벌이의 힘겨움에 고통스러워도,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내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련이 찾아왔을 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죽음을 생각하며 초연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워야겠다. 

3.  자살할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나? 김완 작가는 자살시도를 하려던 사람을 저지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에서 나 또한 생각이 깊어졌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속사정과 마음은 타인이 재단할 수도, 쉽게 판단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하다’는 상투적인 말 하나로,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려는 이들을 제지하는 것이 정말로 그 사람을 위한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자살을 막는 선택은 그를 위한 것일까, 혹은 남겨진 이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일까?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쉽게 못 내리겠다... 


4.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혼자 죽는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혼자 죽어갈 때,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그들의 죽음조차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이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 사실 나도 이렇게 막연한 이야기를 무책임하게 한다는 걸 알아서 답답하다. 누구든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무엇보다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복지 강국이 될 때까지 나는 투표권을 열심히 행사할 것이다. 


5.  무심하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들아 미안해... 그리고 그 사체를 거두어주시는 작가님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너희들이 죽어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 또한 너무 무책임하고 나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말인줄 알지만, 남은 고양이들에게라도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할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력의 위상학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김영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과주체는 아무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기에 자유롭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가 그의 심리 상태에 본질적 계기가 된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명령이나 금지가 아니라 자유와 주도권이 그의 실존을 규정한다. 성과의 요구는 자유를 강제로 전도시킨다. 타자 착취가 가고 자기 착취가 온다. 성과주체는 아주 쓰러져버릴 때가지 자신을 착취한다. 폭력과 자유는 하나로 합쳐진다. 폭력은 자기관계적인 성격을 얻는다. 착취자는 피착취자다. 가해자는 동시에 피해자다. 

성과주체는 자유와 강제가 분간할 수 없게 된 긍정성의 폭력에 지배당한다." (p137-8)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했을 때 마음 속 깊이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직업이 보장되는 한의대에 다닌다고 해도 이렇게 살다가는 뒤쳐질 것 같은데’ ‘남들은 다 앞서나가는데 나 혼자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자기 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런 날 밤에는 쉽게 잘 수 없다. 분명 나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같은 심리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사회는 ‘자기계발’의 사회라고 총칭할 수 있다.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계속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한다. 시험 점수, 자격증, 인턴 경험, 연구활동... 끊임 없는 성과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존재 가치를 보존시킨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게 왜 문제야? 열심히 살면 좋은 거 아니야?” 이런 질문에 작가 한병철은 ‘시스템적 폭력’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성과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은 자유를 보장받고, 주권을 갖는다. 그들은 법이 정해놓은 한도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적 폭력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는, 돈으로 환원되어야만 가치를 얻는 사회 속에서 개인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 ‘자기 착취’를 한다. 그리고 목적은 너무도 ‘긍정적’이어서 그것이 착취라고 느낄 겨를도 없다. 성공하기 위해, 조직에서 인정 받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하고 발전한다는 느낌에 이끌려 몸을 내던진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자신 스스로가 성장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긍정성’의 폭력에 휘둘려 개인은 착취당한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 착취의 끝은 결국 정신적 소진상태로 도달하고, 우울증, 자기혐오와 같은 정신 질환으로 악화된다. 


한병철 작가가 지적하는 ‘시스템적 폭력’은 오찬호 작가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자기계발’에 미친 지금 세대들은 자기 착취를 통해 자기 혐오에 빠진다. 그리고 자기혐오는 타인과의 성과 경쟁에서 이겨야만 잠시나마 극복될 수 있기 때문에, 미친듯한 경쟁을 불러 일으킨다. 서울대와 연고대를 가르고, 서울대 속에서 상경과 비상경계를 나누고, 서울대 경제학과 내에서 학점으로 학생들을 가르는... 그런 끝없는 피라미드 속에서 개인들은 서로를 착취하며 타인들을 배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 속에서 시스템적 폭력은 ‘성과, 성취, 발전, 성장’이라는 긍정성에 가려져 폭력이라고 인지할 수 없게끔 너무도 잘 숨겨져있다. 


사실 나 또한 이러한 시스템적 폭력의 피해자다. 어떠한 성과, 장학금, 성적, 성취를 내기 전까지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성과에 의해 잠시나마 올라가는 자존감은 진정한 자존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쉬기만 해도 귀중한 나의 존재 가치 (제의가치)를 아직까지도 쉽게 인정할 수 없다... 나조차도.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폭력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을 인식하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성장의 덫이 낳는 힘겨움과 거부감을 더이상 나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지. ‘성장과 발전’이라는 긍정성의 폭력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의 20대들에게 <폭력의 위상학>을 꼭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이라는 발명 - 1572년에서 1704년 사이에 태어나 오늘의 세계를 만든 과학에 관하여
데이비드 우튼 지음, 정태훈 옮김, 홍성욱 감수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과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 가지에 관한 것임이 명백하다. 그것은 철학에 대한 경험의 승리다. - 새로운 과학과 낡은 과학의 차이를 나타낸 것은 경험이었다.” (p779) 


<과학이라는 발명>은 16,17세기에 어떻게 ‘과학’이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매우 방대한 책이다. 데이비드 우튼은 과학혁명이 1572년 브라헤의 신성 발견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후 16,17세기에 걸쳐 현상에 대한 ‘발견’이 발명되고, 수학화가 일어났으며, 가설을 세운 후 실험을 통해 이론을 정립하고, 법칙을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과학혁명’이 완성된다. <과학이라는 발명>을 통해 데이비드 우튼은 매우 방대하고 해박한 역사적, 과학적 지식을 통해 과학이 어떻게 발전되고, 그 틀을 다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사실 책이 매우 두껍기도 했고, 철학적 논쟁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는데 꽤 힘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매일같이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는 해부학, 생화학, 조직학, 생리학같은 학문의 탄생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벽돌같은 책을 읽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은 보너스다!) 그리고 한의대생으로서 한의학과 과학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앞서 발췌한 문장처럼, 근대를 걸처 과학이 철학을 이길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경험과 새로운 정보의 유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한의학은 더 이상 고서와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다. 한의학적 치료의 유효성에 대한 실험을 설계하고, 측정하며, 결론을 내린다. 경혈의 존재를 인체에 흐르는 생체전기로 증명해내고, 침술의 효과를 다른 대조군과 비교해 입증한다. 이처럼 현대한의학이 진정한 의학의 한 분야로 성장하고 남기 위해서는 철학의 영역에서 탈피해, 측정과 반복이 가능한 데이터와 경험을 계속해서 편입시켜야 한다. 나 또한 맹목적인 믿음 하나만으로 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 현대한의학의 흐름에 맞게 끊임없이 의학논문을 읽고 연구하며 임상적 데이터를 끊임없이 축척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 - 보리수, 바다거북 그리고 실론티 나의 스리랑카 견문록
고선정 지음 / 김영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동남아시아에서 태어났어야 할 사람인데 대한민국에 잘못 태어난게 분명하다. 추운 것을 정말 싫어해서 일년 내내 8월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매일 하고, 똠양꿍과 쌀국수, 팟타이는 매일 먹어도 하나도 질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난 정말 ‘동남아 체질’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멋진 할머니가 돼서 동남아시아에서 살 것이라는 거창하고도 막연한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라는 책은 내가 노후에 살만한 완벽한 나라를 찾게 해주었다. “살생하지 않는” 불교 문화, 뜨겁고 습한 기후,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면서 선한 사람들, 아름다운 불교 사원들, 보존된 밀림과 자연환경...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리랑카주의자>는 스리랑카의 자연과 문화, 역사와 문화재를 방구석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정리된, 웰 메이드 여행 에세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내게 ‘방구석 동남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 고선정 작가에게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낯선 단어들, 정체 모를 물건들, 신기한 음식들. 사소하기 그지 없는그런 디테일이야 말로 다른 세상과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김지현 작가는 따뜻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따뜻한 사람은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사소한 것일 수록 중요하다는 명제는 책을 읽을 때도 적용된다. 셜록 홈즈가 걷는 19세기 말 런던의 골목들과 상점들, 허드슨 부인이 차려주는 저녁 식사의 메뉴, 홈즈가 담배를 피우며 걸치는 실내복 가운의 형태... 김지현 작가는 이런 소설 속 ‘디테일’에 열광한다. 이런 디테일에 대해 찾아보고,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에 더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누구보다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책이 불러일으킨 상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 보는 것. 그건 내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자유의 경험이었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김지현 작가의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이 집약된 책이다. 작가는 세계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주목한다.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가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바닷가재 샐러드’, 마틸다가 혐오했던 ‘TV 저녁식사’,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가 벌컥벌컥 마시던 ‘버터밀크’. 소설 속 주인공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배경지식을 알려줌으로써 독자들을 더 깊은 독서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실 나는 음식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마시고 먹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으면서 김지현 작가가 왜 ‘디테일’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음식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맛일지 상상해보는 과정은 나를 책 안으로 빨아들인다. ‘옥수수 팬케이크’를 통해 흑인 노예 역사를 배우며 그 맛을 음미하면서 ‘톰 아저씨’의 슬픔과 애환을 느낄 수 있었고, ‘차가운 멧도요 요리’에 대해 읽으면서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의 식사 자리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처럼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문학 속 ‘디테일’이 독서 경험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 덕분에 앞으로 나의 독서 경험이 훨씬 확장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말 고마운 책이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에는 서양 음식 이야기 말고도 주목할 점이 많다. 그 중 제일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문학 작품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점이다. 고전 문학 작품은 대개 남성 중심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남성주의적 문학에 숨겨져 있는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에 주목한다. 똑똑하고 책 읽기 좋아하는 소녀 ‘마틸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안네 카레니나’, 왕자를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싶어하는 공주 ‘소공녀’, 자신의 욕구와 삶을 사랑하는 ‘스칼렛 오하라’처럼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성 인물들을 소개하고, 긍정한다. 또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문학 작품 속 여러 ‘여성혐오적’ 시선을 지적한다. ‘마법 수프’를 만드는 마녀 이야기를 통해 중세 시대에 죄없이 희생된 많은 여성들의 삶을 고발하고, <목걸이>에 나타나는 남성에 종속된 여성의 삶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여성주의적 문학 해석은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더욱 매력적인 책으로 만든다.

서양 문학을 ‘음식 문화와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분석한 아주 따뜻하고도 세련된 책을 찾는다면,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