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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팅 게임 - Science Pioneer(위대한 과학의 개척자들) 1
체리 루이스 지음, 조숙경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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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녹슨 못 두 개로 틈을 조이지만 이내 그 틈바구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내 아련한 시절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보물지도 한 장. 난해한 기호와 설명이 가득한 지도로 앞을 보고 우쭐되기 위해 써놓은 듯한 지구에 관한 간단한 정리로 뒤를 본다. ‘난 6살이고 지구는 46억 살이다.’ 붉고 푸른색의 색연필로 써내린 이 말은 곧 회상을 거쳐 책장을 넘긴다. 클레어 패터슨이라는 이름이 회상 속에 스치던 기억 사이로 기억되었고, 아서 홈즈라는 이름이 책장을 덮는 지문 틈새로 기억되었다. 왜, 홈즈인가?  패터슨의 업적보다 우월하기 때문인가, 본받아 마땅한 고귀한 업적의 주인공이기 때문인가. 그 답은 45억 4000만±4500만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과정 없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우리내 사회는 아서 홈즈를 잊었겠지만 말이다.

 아서 홈즈, 그는 한 명의 지질학 장인으로 다가왔다. 기껏 맨틀 대류설 창시자란 두 줄 남짓한 분량으로 교과서 어귀를 스쳐갈 뿐이지만 그 장인은 보물지도 가득히 지구의 나이를 외롭게 그려나갔다. 그 외로움은 예상을 짓밟는 실험결과와 변화를 두려워하는 학계, 그리고 우리가 쥐어준 족쇄의 다중적 괴로움이었지만 외로움조차 지구의 나이에 관한 그의 버릇을 고쳐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고쳐낼 수 없었기에 궁금했다. 46억년이라는 거대한 값을 캐낸 연장이 무엇일지 말이다. ‘탄소연대추정법’을 떠올렸지만 5만년 이하의 사물에만 사용한다는 사실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밀한 연장이 필요했다. 연장은 책장을 한 없이 넘기며 암석층에 포함된 우라늄과 납을 지목했다. 눈과 검지는 이 대목을 몇 번이나 반복해가며 미소를 띄워주었다. ‘우라늄의 방사능반감기‘. 방사능 원소가 일정한 시간과 비율로 붕괴한다는, 우라늄은 라듐과 라돈을 거치는 8단계의 핵붕괴를 거쳐 안정한 납으로 변한다는, 암석 속의 우라늄이 앞선 핵붕괴를 거쳐 절반으로 줄어들기까지는 놀랍게도 지구의 나이와 비슷한 45억년이 걸린다는, 그러므로 지구가 생겼을 때는 우라늄의 양이 지금보다 두 배 정도 많았고 핵붕괴 과정에서 남아있는 우라늄과 납의 상대적인 양이 지구의 나이를 캐낸 연장이라는 한 장이 미소를 주었다.

 미소에서 얻은 것은 지구의 나이지만, 긴 침묵과 뭉클함에서 얻은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이었다.

 그 마음가짐은 지질학자라는 막막함에 생계를 위해 미얀마 석유시추팀에 합류해 직장과 돈, 그리고 말라리아로 아들을 잃는 비극에서 콧등을 시큰하게 했다.

 책장 속에서 찾은 오래된 느낌이었다. 느낌이 오래되 기억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늘지도 줄지도 않은 잣대는 길게 늘어선 파노라마 사이로 스스로를 깨우칠 이유를 짚어냈다. 홈즈의 보물지도였다. 그러나 클레어 패터슨이라는 이름이 보물지도에 가지런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6000년이라는 지구의 나이를 바라보던 어린 물음의 홈즈는 없었고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앙상한 모습만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책장은 멈추었고 오랫동안 넘겨지지 않았다.

 책장이 다시금 넘겨진 데는 얼마 남지 않은 분량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장을 넘긴 후였지만 깊은 후회와 알지 못할 존경심은 메마른 가슴 사이로 스며들었다. 결승선을 일찍 통과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가며 끝까지 뛰어 결승선을 포기 없이 통과하는 것에는 선과 후가 없는 것이다. 홈즈는 끝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었다. 가슴은 뜨거워져 그를 기억해냈다. 하루를 살아도 진정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 행복은 스스로만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라 가슴은 외쳤다. 책장 속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찾고 바랐는지 모른다. 책장 속 빼곡이 이어진 문자 속에서 이 하나만 얻어갈 수 있어도 되는데 말이다. ’꿈‘. 아무런 이상 없이 눈앞에 놓인 당장만을 바라보는 내 자신에게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녹슨 못 두 개로 틈을 조이지만 이내 그 틈바구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내 아련한 시절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보물지도 한 장. 이제 근육이 아닌 가슴으로 그려가려 한다. 그려감에 작은 실수가 있더라도 지워 다시 그려가고 싶다. 아서 홈즈가 그랬듯이 말이다.

 “되돌아보면 내가 늙어 몸이 약간 불편한 것은 지구가 나보다 훨씬 빨리 늙는다는 것에 비해볼 때 약간의 위안을 줍니다. 내가 10살 때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었는데, 내가 60이 되었을 때 지구의 나이는 40억 혹은 50억 년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더 큰 위안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업적이 무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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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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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개에 인쇄된 사진 속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류시화 시인일까, 한참을 쳐다보다가 집중이 조금 되었다 싶은 찰나에 잽싸게 책장을 들췄다.(시라면 질색을 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시에서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내 무지에 놀랐다고 해야 옳다. ‘잠언’이라고 쓰인 이유도 알 듯 싶다. 나와 같은 무지인간에게 쥐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쓰인 것이다. 무지인간도 감명 깊게 읽었다. 이 땅의 모든 초・중・고등학생에게 추천할 뿐 아니라, 시라면 글자장난이라며 부정해버리는 또 다른 무지인간들에게도 권한다.

-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정석으로만 해석해야하는 시가 아니다. 수많은 질문을 굳은 가슴에 심에 줄 뿐 아니라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한 장은 이미 새털과 같이 가벼워져있다. 책장과는 먼 내 낙서전용 손조차도 넘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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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번째 사과나무 1 - 이용범 서정소설
이용범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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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니 단 몇 시간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보았으니 머릿속에 스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적이 있었을까, 몇 시간 후면 학교에 가야하지만, 잠을 자야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책장은 이미 그 두께를 잃은 지 오래였고, 가끔 눈물도 흘려줘야 했다.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이런 사랑이 내게도 올까, 이보다 더 아파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랑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랑의 폭과 넓이가 어느 정도였기에 그 앞에는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일까. 사랑이라 단 1년 만에 학교(서울대)에 들어설 수 있었겠지.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아, 그들은 비극적인 사랑을 서로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상은아... 그녀는 그렇게 끝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가슴으로 느끼라고 했던가, 내 돌덩이에서 명령하기도 전에 가슴은 달아올랐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그들 중 한 명은 사랑을 지키며 사라졌지만, 그들 중 한 명은 사랑을 새롭게 지켜나갈 것이다. 사랑스런 그들의 딸. 사랑은 잊히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보인다.

- 소설 속의 사랑,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을지 모르지. 지독하기까지 한 영원의 사랑을 만나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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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act VOCA 숙어편
강민수 외 지음 / 두산동아(참고서)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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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있는 숙어책이란 숙어책은 죄다 뒤져 찾았습죠. 보기 쉽게 정리된 구성과 수능 기출문제, 하루로 나눠진 정당한 분량, 그리고 하루 분량이 끝날 때마다 자가 체크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슷한 단어끼리 분류해두었으므로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story로 익혀요‘라는 메뉴는 익살스런 그림과 함께 배웠던 단어를 이야기로 이어두어 공부하기 전에 봐도 될 뿐 아니라 복습할 때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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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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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유태인 소설이 지겨울 수도 있다. 유태인 문제라면 영화, 소설, 만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매체로 접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피아니스트'가 그랬듯이 이 소설은 유태인 문제 전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한 소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다. 눈물이 흐르려 할 때 한숨이 나왔고, 한숨이 나오려 할 때 눈물이 나왔다. 지겹다고 느껴지면 덮어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보곤 했다. 과연 사실일까(작가는 체험을 바탕으로 썼다.)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로 소년 주위의 상황은 믿기 어려웠기 때문에 의심아닌 의심으로 책장을 이끌어 나갔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지겹게 본 이라면 이 소설마저도 지겹게 책값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읽어나가야 겠지만, 피아니스트를 조금이나마 흥미롭게 본 이라면 이 책은 더할나위 없이 상상력을 자극해 줄 것이다. '과연 사실일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미안하다.'로 끝마쳤다. 하늘을 바라보면 푸르기만 한데, 소년은 푸르지 않았다. 아니, 푸른 것을 몰랐다. 번역서라 어쩔 수 없는지 모르지만, 감동의 연속성이 부족한게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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