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구매하진 않았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신착도서인데 출간 1년 만에 3쇄를 찍었다 하니 내가 모르는 새에 상당한 호응을 얻은 모양이다. 사춘기 때 처음으로 가수 팬덤에 발을 담근 대상이었고, 그의 죽음에 비통했던 팬의 일원이었고, 두세 번은 그의 강연회에 참가하여 가까이에서 존재를 느낀 사람이었던지라 그의 사후에 나온 평전과 분석서들을 관심있게 찾아 읽는 편이었다.

 

저자가 그의 단순한 팬이 아니라 생전의 가까운 교우였던 관성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큰 자산이다. 필자 자신이 대중음악평론을 업으로 하고 있고 신해철과의 교분이 깊었던지라 그가 말한 대로 3주 만에 본문을 다 써내려갔을 법하다. 신인 시절부터 멈추지 않았던 대중음악계 적폐와의 싸움, 잠재력은 크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아 밟힐 뻔했던 신인에게는 큰 행운이 되어 준 가왕 조용필과 제작자 유재학의 영향을 짚어준 부분은 이후 신해철의 성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스쿨밴드 멤버에서 솔로로, 프로젝트 밴드에서 풀밴드로 변신하고, 그 와중에도 간간이 솔로라기보다 1인 밴드 개념으로 음반을 내면서 더 치밀하고 완전한 구조의 음악을 축조하기를 갈망했던 음악인의 행보를 꼼꼼하게 짚은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100자평 중에는 '다른 강연이나 책에서도 많이 다룬 내용'이라 신선하지 않다는 말도 있었지만, 신해철을 잘 몰랐던 독자가 읽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알찬 정보일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런데 책의 섹션 구성과 만듦새를 보면 그래서 이렇게 작업했구나, 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아니라 왜 이렇게 작업했을까, 라는 의아함만 커진다. 우선 레이아웃이 그렇다. 하드커버로 감싸이고 세로로 길게 빠진 날렵한 책장 속에 과도한 시각적 실험을 해놓았다. 명조 계열의 굴림에 날카롭게 각을 넣은 본문 서체, 어절 단위로 행이 갈라지게 설계한 좌측정렬 문단 구조는-특히 그의 기나긴 인터뷰 문답에 적용한 글자 크기와 들여쓰기의 변주들은, 신해철의 예민함과 철두철미한 작업정신을 은유한다고 좋게 해석하기에는 가독성이 떨어진다. 신해철의 음악세계와 메시지에 대한 저자 자신의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저자의 '신해철 주크박스 뮤지컬' 대본은, 글쎄, 내용 구성은 저자의 소관이지만 그닥 훌륭하거나 의미있는 콘텍스트를 '분만'하지 못한다. 텍스트에 담긴 내용만이 아니라 책의 하드웨어 또한 독자에게는 책의 메시지를 말 대신 오감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될 것이지만, 그가 좋아했던 보라색으로 새겨진 하드커버 위의 플레이리스트(이것 역시 읽으라고 새긴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하다)와 보라색 가름끈을 제외하면 그 오감 메시지가 무엇인지 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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