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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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오빠'라는 호칭의 오묘한 어감 때문에 제목이 오래 기억났던 책을 같은 작가의 신작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를 읽은 뒤에 찾아 읽었다. 이 책보다도 훨씬 전, 10여 년 전에 발표된 <최순덕 성령충만기>까지 아울러 감안하면 작가가 개신교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가벼운 조롱과 연민과 혐오를 뒤섞어 품고 있는 속칭 가나안 신자인가 싶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가 무슨 짓을 했나 싶어 책을 열어보았는데, 뜻밖에도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작품들은 따로 있었다. 


한 권으로 엮인 작품들의 공통 주제도 작품 자체뿐 아니라 평론가의 친절한 해설과 작가의 글 덕분에 더 잘 알겠고,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한정희와 나'도 주인공의 사실상 장인 장모의 무조건 친절과 주인공의 조건부 친절이 교차하면서 깊은 인상을 주긴 했다. 


그런데 무심코 베푼 친절이 오해되거나 어그러지면 급기야 어떤 사달을 내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상당히 긴 분량과 중량으로 읽히는 연작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오래전 김숙희는'이다. 김숙희가 연애라고 믿었던 관계의 성격, 연애의 시작이라고 믿었던 구 내연남의 행동의 동기, 어쩌다 보니 갖게 된 직업에 대한 혐오의 말마디도 상대의 본심과 기억에는 다르게 저장되어 있다. 상대의 무심한 친절에 어쩌면 혼자서 자극받은 김숙희는 제멋대로 가는 마음에 휘둘려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난 그냥 친절했을 뿐인데 저 사람은 혼자 왜 저럴까, 라는 의아함과 답답함은 박창수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김숙희 시리즈에서 (이승환의 노래 제목을 빌리면) 소통의 오류를 친절하고 소상하게 알려준 직후, 작가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의 파격적인 작법으로써 독자를 황당하게 만든다. 교회 여후배가 울부짖는 모양을 보니 오빠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후배는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말하지 않고 오빠는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몸에 밴 친절이 그만큼 무심했고, 딱히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할 만큼 대수롭지도 않았다는 증거다. 


김숙희 시리즈의 친절한 서술에 길들여져 교회 오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잔뜩 기대하던 독자에게, 기억이 안 난다며 시치미를 뚝 떼는 '교회 오빠'의 무성의한 서술은 작가가 책 밖에서 일부러 저질러버린 소통의 오류인 듯싶었다. 소설 안에서나 밖에서나, 너와 내가 화법과 태도와 생각을 딱 맞추기가 이렇게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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