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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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 씨의 신간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책을 받고서 열흘, 책을 펼치고선 여드레가 지났다. 감기 몸살로 며칠을, 감기 걸린 날 돌보느라 나한테 감기가 옮아 몸살 걸린 엄마를 돌보느라 며칠을, 미리 잡아놓은 설날 약속으로 이틀을 보냈다. ‘인문학카페 36.5°’ SNS 페이지를 구독하며 읽었던 글과 홍승은 씨가 이전에 내신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며 위로도 되었고 용기를 많이 얻어 신간을 받았을 때 바로 읽어볼 요량이었지만, 목감기와 몸살이 독하게 걸린 상태라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책을 펼치지 못했다. 약을 먹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니 몸이 좀 나아졌다. 나한테 감기를 옮은 엄마는 목이 간지럽기 시작할 때쯤 바로 병원을 가서 약을 처방받아 증상이 덜했고, 나는 엄마를 간호하면서 책을 조금씩 읽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주변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문득 떠오른다. 가족, 친구, 동료, 여러 인연들 속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관계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오롯이 담긴 글들을 보다보면 내 이야기들이 덩달아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아이를 낳을 때 어땠냐고 묻곤 했고, 그런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생생하게 그 순간을 들려줬다. 군인이었던 아빠가 부산에 있어서 엄마 혼자 외롭게 나를 낳았다는 이야기... 중략”(p150~151) 이 문장을 보자마자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 아빠에게 서운했던 것들을 이따금씩 얘기했던 것과, 태어난 나를 보며 할머니가 지 아빠 닮아가지고 눈이 쪽 찢어진 게 성질 있겠네.” 얘기했다고 엄마가 여러 번 말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몸으로 표현이 잘 안 되는 갑갑함이 있을 때마다 홍승은 작가의 책에서 접어놨던 부분 한 꼭지씩 읽었었다. 특히 정치적이고, 남을 설득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공적인 글로 써야할 때 많이 찾았다. 과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다다랐던 결론이나 결과물들은 옳은 건지, 글이 공개된 이후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혹여나 글쓰기가 자만에 그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여러 차례 겪어도 또 다른 상황과 맥락 속에 고민이 다시 놓이기 때문에 편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위로나 용기나 확신을 주고, 좋은 망설임과 고민을 더해주는 책과 글들을 다시금 꺼내드는데 홍승은 씨의 글도 그중 하나였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저자의 글을 계속 들춰보는 이유를 다시금 알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읽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용기를, 같은 고민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위로를 작가의 글을 읽으며 받아왔다는 걸. 특히 작가 자신의 이야기 자체뿐만 아니라 타자의 글을 읽는 태도와 자신이 글을 쓰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과 세심함이 더 작가의 글을 찾게 만든다는 걸. 타자의 고민과 이야기들에 함부로 말하지 않기에 되레 고민을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는 걸. 이번 신간에 있는 많은 문장들 속에서 지금 유독 마음에 남는 문장이 밑에 네 가지 문장이다.

다시 질문이 돌아온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타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까. 답 없는 질문의 도돌이표.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그 밤 T의 글이 나를 위로했다는 점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T의 글이 소외된 나를 위로했고 T의 절망이 내 슬픔을 어루만졌다. 나는 딱 그만큼의 글을 쓰고 싶다.”(p.197~198)

그 믿음이 고마워서,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의 세계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p.22)

말하는 순간, 자신이 불행한 존재로만 보일까 두렵기도 하다.”(p.13)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p.141)

 

일상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풀어내는 저자의 선명한 글들은 읽는 사람의 이야기도 부른다. 머리말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처럼 책을 읽다보면 오늘 일상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나고 글로 기록하고 싶어진다. 열흘 동안 책을 읽으며 세 번 글을 쓰고 싶어졌었다. 한 번은 설날에 엄마와 연극을 보며, 한 번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가족문제로 골머리가 아팠을 때 한 번. 저자의 글들이 보통 힘든 상황 속에서 위로와 용기가 되고 떠오를 때가 많았는데, 이번 책은 읽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글로 자세히 남겨보고 싶다는 마음을 정말 오랜만에 가졌다. 책속에 있던 문장 나와 엄마도 평소에는 성격 차이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함께 쓰는 순간에는 울고 웃으며 미처 표현하지 못한 서로의 속내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p.134)을 읽고 글을 썼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조그마한 일들로 엄마와 부딪히는 일들이 생긴다. 특히 살아온 삶이 다른 만큼 가치관이 충돌할 경우에는 대화를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들을 많이 얘기하는 날이 있는데 바로 맘에 드는 예술작품을 함께 경험하는 날인 것 같다. 며칠 전 설날 엄마와 함께 본 예술작품은 꽃의 비밀이란 연극이었고 네 명의 여자가 각자 남편으로 변장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코미디 연극이었다. 설날 당일임에도 좌석이 꽉 찬 극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어마어마했고 남성성을 통렬하게 꼬집는 대사와 상황을 보고 들으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도 간만에 빵빵 터지며 옆자리에서 웃었다. 어떨 땐 나만 웃고, 어떨 땐 엄마만, 어떨 땐 함께. 서로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보니 연극이 끝나고 서로 가장 좋았다고 얘기한 캐릭터가 달랐다...(중략) 엄마는 젊었을 적에 연극을 자주 봤다고 하던데 결혼 이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개학하기 전에 엄마랑 연극을 몇 번 더 봐야 할텐데...”

 

사실 저자의 글들을 좋아해서 신간을 산 것도 있지만 내가 쓰다 멈춘 글을 쓰려고 샀기도 하다. 저자의 신간을 읽으며 내가 쓴 글을 지긋이 다시 봤지만 그래도 써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힌트는 얻었다.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고민들을 들으며 내가 왜 못쓰고 있는 지에 대한 실마리가 떠올랐다. 아마도 글을 다시 쓴다면 나는 왜 못쓰고 있었는가에 대해 구구절절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할 듯하다. 그리고 이번 신간을 읽으며 좋은 영향을 받은 건 좋았던 일상들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보통 갑갑하거나 슬픈 일에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경우가 있고, 좋은 일이 있거나 하면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정도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일도 기록하고 싶어진 마음이 커졌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특별히 좋았거나 기억에 남을 때 그런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p.165)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 P165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고통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쓸 수 없는 말을 쓰기. - P141

그 믿음이 고마워서,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의 세계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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