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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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불량 가족! 콩가루 집안 여울이네.

 

도덕 꼴통이 내준 자서전을 써오라는 수행평가에 여울이는 코웃음을 칩니다. 하지만, 코스튬플레이를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이때 장학금을 위해 잠시나마 가정사를 써볼까 생각하지만. 어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을 포기하고 여울이는 오늘도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적어봅니다. 용이 사는 집에서 피오나 공주로 살아가는 여울이의 가족은 조금 다릅니다. '부모, 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이 '가족'의 사전적 정의라면 여울이에게는 벗어나야 할 걸림돌이 바로 가족이고 식구랍니다. "밥 먹기 위해 유대 관계를 맺고 집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뭉쳐 사는 것 같은" 가족. 여울이의 곁엔 누가 있을까요?

 

여울이는 항상 '사랑으로 이어나가는 가족의 화목함'보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가족의 불평'이 익숙합니다.

양로원에 들어가 남이 차려 준 밥상을 받는 게 꿈인 잔소리쟁이 슈퍼 할매, 채권추심 하청 일로 집안을 꾸려나가며 손찌검과 고함이 특기인 불곰 아빠, 저주받은 입으로 고자질과 욕설을 일삼는 고3 언니,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는 신세인 전문대생 오빠, 평생 주식만 바라보다 뇌경색에 걸려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삼촌.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언제나 여울이의 상상 속에서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춤추는 나이트클럽 댄서 엄마. 제대로 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최고급(?) 불량 재료로 만들어진 가족이 부끄러운 여울이. 하지만, 이렇게 가족을 깎아내리고 '쪽팔려하는' 여울이도 사실 학교에서 식권을 복사하다 걸리고, 하지만 '30장밖에 복사를 하지 않았다.'라며 억울해하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입니다.

 

여울이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은 (경제적인 사정상 재탕하는 캐릭터지만) 피오나 공주가 되어 코스튬플레이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눈꼴 사나운 일투성이네요. 코스튬플레이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친하지만 조금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외고에 다니는 범생이면서 화려한 바니 걸로도 변신할 수 있는 류은이,  여울이가 좋아하는 공부도 잘하고 주먹도 센 세바스찬. 용기를 내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햄버거를 앞에 두고 여울이가 고백하는 순간! 마법이 풀리는 듯 어색하게 세바스찬은 사실 류은이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네요. 게다가 마리아 천사 복장을 한 오이장아찌처럼 늙은 아줌마는 부끄럽게 싸온 김밥을 같이 먹자고 달라붙네요.

집안은 흔들리고, 사랑은 깨지고, 학교에선 찍히고....... 그래서인지 여울이는 "슐 좀 마시고" 토하며 잠들어버립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피어오르나......?

 

여울이가 간절히 바라던 출가 계획은 의도치 않게 이루어집니다. 물론 삼류 인생 집합소를 먼저 박차고 나가는 가족들의 가출 때문에 혼자가 되어버리지만 말입니다. 두꺼비 같은 아빠의 손찌검을 받아 내며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서 행동하는 언니가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가버리죠. '썩어 뒤질 문딩이 놈' 삼촌도 고함을 치며 떠나고 계단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우며 오빠도 소리를 지르고 가출해버립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리하게 채권추심 정보를 다른 거래처에 유출한 죄목으로 아빠마저 구속됩니다. 마지막 가족, 늘 집을 떠나 양로원에 가고 싶어 떼를 쓰던 할머니는 이제 이모할매네로 떠나가기로 합니다.

 

그렇게도 얼른 어른이 되어 독립하고 싶어 안달하던 여울이는 한순간에 혼자가 됩니다.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집에서지만 여울이는 늘 꿈꾸던 독립을 이루게 된 거죠. 하지만, 생각보다 행복하거나 유쾌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며 여울이는 가족의 소중함(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아니 적어도 가족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다들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이 감당이 안 되어 본의 아니게 서로를 괴롭혔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말이죠.

 

모두가 흩어지고 나서야 최고급 불량 가족들은 서툰 사랑을 자기 방식대로 표현합니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삼촌은 미국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주유소에서 일하고 월급으로 홍삼 엑기스 1팩을 무뚝뚝하게 선물합니다. 불곰 아빠는 손수 순댓국을 뜨겁게 데워 할매 에게 살갑게 내놓기도 하죠. 그리고 여울이는 미운 할매를 위해 죽을 조심스레 끓이는 전혀 '권여울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역시 할매는 물을 쬐매 더 부야 된다며 잔소리를 하지만 짜증이 나기보다는 잔소리가 잠잠했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가시고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인생은 불공평한 개뼈다귀 같은 곳!

 

마리아 아줌마는 따끈한 보리차 한 잔을 건네며 여울이에게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하지만, 여울이는 '구라를 너무 잘 치는' 톨스토이에 멀미하거 '그놈의 사랑이 결핍되면 문제아가 된다는 것처럼 들린다.'리며 한숨을 쉴 뿐이죠. 그리고 17년간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며 깨달은 교훈을 토대로 답을 내리고 책을 덮어버립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미하일이나 세몬은 책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간이 진짜 있다면 매점 식권을 복사하는 일이나 아빠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허접한 일 따위는 결코 안 할 것이다."

 

출가에 성공하면 행복의 파랑새를 찾을 거라 꿈꾸던 여울이는 이제 조금 생각이 달라졌을까요?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슈렉 세바스찬의 애틋한 키스를 받고, 딸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마리아 아줌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여울이는 한 걸음씩 자라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갑니다. 비록 소중한 이들이 곁에 없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지만 진짜 용기를 내 출가한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마음먹습니다. 지금까지 여울이에게 '내일'이란 두려움과 초조함이 가득 찬 절망의 늪이었다면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지금. 여울이에게 '내일'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우리 가족의 주인공이 되고 말 하나의 희망의 숲이 되었습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이었지. 근데 어른 되니까 책임감만 있고 별 재미가 없어. 여울아, 흥미가 가는 건 뭐든지 해 봐. 그러고 나서 천천히 어른이 돼도 늦지 않으니까."

 

본의 아니게 가정의 가장으로 거듭나고 어른이 되어버린 여울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이 결코 어린 여울이에게 만만치 않기에 걱정이 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투성이인 열입곱 나이에 가난과 씨름해야 할 고통이 호락호락 해 보이지는 않기에 말이죠. 사실 책이 여울이의 당찬 결심으로 끝나버려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제가 생각하는 '청소년문학'의 일반적인 마무리라면 희망의 빛이 드리우며 밝게 끝나야 하는데 지금 닥친 상황이 절대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손현주 작가는 더없이 위태로운 불량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달은 것 자체가 가장 큰 여울이의 변화이자 성장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긴, '일확천금 로또에 맞아 가족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 식의 허무맹랑한 결론은 소설은 결국 허구란 생각만 가득하게 할 뿐이죠. <불량가족 레시피>처럼 (무섭도록 현실적이지만) 정말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여울이의 마지막이 독자들에게 더 큰 힘과 따뜻한 격려로 다가올 거라 믿고 응원합니다. 여울이는 거침없이 흔들리고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성장통을 겪고 있을 뿐인거죠. 사실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화를 내지도, 욕을 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무시하고 남일 이라고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말죠. 결국, 최고급 불량 가족들 모두 마음속 한 구석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표현의 방법이 서툴고 날이 서 서로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을 뿐이죠.

 

시련은 사람을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포기하고 슬퍼하고 남을 탓하거나. 혹은 시련을 이겨내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당당하게 웃거나. 가장 안전한 제태크의 '태'는 부모님 탯줄을 잘 잡는 것을 뜻하는 안타까운 현실. 냉정히 말해 날 때부터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경쟁 구도에서 100m 앞에서 출발하는 경쟁자를 뛰어넘기는커녕 따라잡기는 버거운 게 사실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환경에서 불공평한 차별을 이겨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반대로 불공평한 현실을 극복하고 바꾸어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이죠.)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희소하기 때문이죠. 부디 여울이가, 그리고 여울이처럼 조금은 다른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소년이 다가올 시련을 이겨내 진정 밝게 빛나는 보석 같은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이었지. 근데 어른 되니까 책임감만 있고 별 재미가 없어. 여울아, 흥미가 가는 건 뭐든지 해 봐. 그러고 나서 천천히 어른이 돼도 늦지 않으니까."

"쉬지 않고 쫑알대는 참새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는 딱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관리 받는 년과 방해 받는 년. 참새나 류은이 같은 아이들을 보면 가끔 화날 때가 있다. 아무리 똑같이 놀았다 해도 본질적으로 그 아이들과 나는 삶의 질부터가 다르다. 그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아도 최소한 안전망이라도 있지만, 나 같은 아이는 그물망조차 없어 바닥을 지나 지하 3층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는 누가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인간이 내 눈앞에 있다면 머리를 죄다 쥐어뜯어 놓고 싶다. 절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이건 내가 십칠 년간 세상을 겪으면서 깨달은 진리다. "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미하일이나 세몬은 책 속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이다. 이런 인간이 진짜 있다면 매점 식권을 복사하는 일이나 아빠의 호주머니를 뒤지는 허접한 일 따위는 결코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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