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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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을 대충 묶은 채 발그레한 볼 따귀에 바람을 가득 채운 소녀가 민들레를 살며시 불고 있다. 마치 모든 시련과 아픔을 훌훌 날려버리듯이 말이다. 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다소 유치한 제목에 유치하게도 잘 어울리는 귀여운 표지에 매혹되어 '이상‘적인 연애 소설을 기대했지만, 담담해서 더욱 더 차가운 ’이상‘한 현실을 앞에 맞이했다.

 

표지의 소녀는 아니, 숙녀는 아마도 ’앞뒤꼭지 짱구에 태평양 같은 이마‘를 지닌 주인공 해금이인 듯 하다. 노래 잘하는 귀염둥이 막내 미영을 제외하고 ’금‘자 돌림의 지독히도 평범한 이름을 가진 넷째 딸, 대학에 떨어지고 어영부영 친구들과 있기를 즐겨하는 소녀는 가장 예뻤을 때에 가장 거칠게 흔들리고, 또 지쳐 쓰러진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며 슬퍼하기도 한다. 수경은 지나간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지 못하며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승규 역시 군대에서 자신의 머리통에 커다란 ’구녕‘을 남기며 잠들어버린다.

 

반드시 죽음이 아니더라도 살아있는 자들의 삶 역시 비참하다. 임금을 못 받아 울고,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겨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또 기본적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다 피를 흘리고 지쳐간다.

 

나는 여공들의 비명이 아스라이 사라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당위적이고 붕어빵 기계에서 찍혀 나오는 반듯하지만 반듯하지 않은 붕어빵들 같은 남들과 똑같은 불합리함에 분노라든가, 약자에 대한 측은함 따위의 감정보다 제일 먼저 ’두려움‘을 느꼈다. 담담하고도 사실적이며 목격자 진술과 같은 감정이란 놈을 탈탈 털어버린 듯한 문체 때문이었을까?

 

비명을 지르며 우는 ’김경자‘와 ’판님이‘, 아니 언제나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여겨지는 ’제2생산라인 3번 미싱사‘,’같은 라인 2번 시다‘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강자의 현실이 무서웠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며 이렇게 까지 악랄하고 가슴의 떨림을 OFF 버튼으로 닫아 둔채 머리로 미친 듯이 손익 계산을 할 수 있을까라고 느끼며 말이다. 노동자들의 ’공개적‘인 외침이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남아버리는 현실에서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안타까움을 절감했다.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그리고 안타까운 시대 상황 속에서 흔들리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럼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는 책을 읽으며 불안정한 삶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동정하며 슬퍼했지만 그렇다고 전체적인 책의 느낌, 그리고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해보라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쓸쓸함을 씻어주는 달콤하고 가슴 설레는 이야기가 더욱 내 머리 속에 깊게 남아서 인 듯 하다. 나는 특히 환이의 슬픈 속마음을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해금을 보며 ‘사랑’이 가진 치유의 힘을 느꼈다. ‘A에 대한 답은 B야’라고 정확한 해답을 내려 주지 않아도, 머릿속에 종소리가 들릴 법한 명쾌한 조언이 아니더라도 진솔하게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모든 걸 꺼내 놓은 채, 믿고 들어주는 모습에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치유이며 소통이라고 느꼈다.

 

그 밖에도 가난한 화백과 사랑에 빠진 사람, 혁명하는 김에 사랑도 하라며 웃어버리는 사람, 임시보호소에 제 아기를 보며 흐뭇해 마지않는 사람까지..... 그 중에서도 승희에 대한 만영의 귀여운 짝사랑이 책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비록 구태의연한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더래요.’ 식의 결말이 아닌 서로의 편안함과 애틋함을 남긴 채로 아쉽게 끝을 맺지만 말이다. 청혼이 참 멋도 없다. 제 순댓국의 간이 안 맞자 슬그머니 바꾸면서 뱉어낸 말이 바로 “우리 같은 집에서 살면 안 될까?”라니....... 하지만 여자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진솔한 만영의 말에 담긴 진심을 전해 졌고, 승희 에게는 최고의 청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남자에게 비싼 다이아를 건네며 낭만적인 한마디를 날리는 드라마 속 청혼은 아버지 양복을 훔쳐 입은 갓 졸업한 어린 티 풀풀 내는 스무살 같이 어색하고 촌스러워 보일 것 같긴 하다.

 

‘탱자나무 울타리 위로 아지랑이가 뽀얗다.’, ‘내 머리카락과, 내 눈물과 함께 꽃향기 바람에 날리는, 봄밤이 이제 막 열리고 있었다.’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고 100%라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미묘하게나마 작가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스무 살 시기는 절대 달콤함만이 가득하지 않다. 이제 성인이라는 이름표라고 쓰고 의무와 경쟁이라는 꼬리표라고 읽는 굴레에 놓인 우리에게는 냉혹한 현실만이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20대는 ‘봄’이다.

 

사랑에 실패해 실연을 당해도, 돈에 쪼들려 괴로워해도, 부당한 처사에 울음을 터뜨려도, 먼저 삶의 종착역에 도착하더라도....

 

결국 따뜻한 ‘봄’인 것이다.

 

가족과 친구간의 진심을 느끼며 슬플 땐 펑펑 울고, 미친 듯이 후회 없는 사랑도 해보고, 분노의 에너지로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어찌 보면 무모한 그들의 골대 앞 헛발질도 스무 살 시기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학점, 인턴, 봉사활동, 교환 학생등 어떠한 사회 경험이란 재료를 넣더라도 ‘취업’이라는 무미건조한 흔해 빠진 식빵이 튀어나오는 지금의 현실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비록 조금 맛이 없더라도, 아니 심지어 탄 빵이더라도 타인과 소통하고, 적어도 거짓 없이 울고 웃는 그들의 진솔한 삶이 어찌 보면 더 행복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의 스무 살 시기는 너무나 치열하다. ‘힘내라!’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 ‘힘 내지 않아도 돼!’라고 다소 패배자 같은 느낌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의 한마디가 어찌 보면 지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오늘날 20대에게 더 큰 힘이 될 지도 모른다.

 

힘내도 좋고 힘내지 않아도 좋다.

치열해도 좋고 치열하지 않아도 좋다.

후회해도 좋고 후회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솔직하게, ‘스무 살’ 다시 못 올 청춘의 꽃 같은 시기를 만끽하자. 지금은 ‘봄’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시를 좋아해?"
"야학 선생님이 시인이야."
"와아, 시인은 멋있지?"
내 말에 환이 꺽꺽거리며 웃었다.
"안…… 멋있어?"
"그냥…… 보통. 그 시인 형 말이 시가 무기도 될 수 있대."
"총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그런 무기 말야?"
"총은 죽이기만 하잖아. 시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니까 총보다 힘이 더 세다는 거야."
"시가 총보다 더 힘이 세다니, 무서워."
나는 달달 떠는 시늉을 했다. 환이 헤헤헤, 바보같이 웃으며 엄살을 부리는 내 손을 꼭 잡았다. 환은, 이 바보는 정말 내 엄살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그의 의심이라곤 없는 말간 표정이 좋았다. 환이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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