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우맘 > 모든 공주 시리즈에 대응할만한 대안 그림책
긴 머리 공주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5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5
안너마리 반 해링언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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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읽고 자란 공주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공주는 아니지만 훗날 세자빈(?)이 된 신데렐라.... 그들 모두는 공통점이 있다.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행복해졌다는 점. 그런데 이 공주는 좀 다르다. 하긴, 그녀 역시 남자를 만나긴 만났다. 그런데 그 남자는 왕자님이 아니다. 전직 서커스 단원으로, 공주의 <모발용 가방 포터>라는 특이하고도 미천한 직업의 소유자였다. 공주는 이 남자와 도피를 감행하고, 궁궐이 아닌 서커스의 긴머리 공주가 되어 행복해진다.

이 독특한 이야기는, 만만찮게 독특한 그림과 어우러져서 충격을 배가시킨다. 내 머리 속에 큰 돌을 하나 던져 넣은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오래 묵은 어떤 체증을 쑤욱 내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다양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나에 반해 딸아이는 담담하다. 그저 '오랜만에 재미있는 새 책 한 권 읽었네~'하는 얼굴이다. 당연하지. 백설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신데렐라가 그림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로...내 머리 속에 꼭꼭 굳혀 놓은 고정관념이 딸아이에겐 없으니까. 굳은 것이 없으니, 깨질 것도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아주 뿌듯하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이 그림책을 주고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리포트를 쓰라고 하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공주의 긴머리와 그 긴머리를 대하는 국왕의 태도, 왜 하필이면 서커스 단원이었으며 그녀의 탈출이 어떤 의미를 띄는가... 이야기를 이끄는 모든 요소들은 사고적이지 못한 성향의 나도 충분히 눈치 챌만큼 암시적이다. 그러나 분석은 그만두자. 그럴 능력도 없을 뿐더러, 나는 지금 딸아이의 엄마로서 리뷰를 쓰고 있으니까. 그래, 딸아이의 엄마로 보기에... 이 그림책은 기존의 공주 시리즈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멋진 대안동화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굳이 백설공주를 흑설공주로 만들고, 신데렐라를 쟌다르크같은 여전사로 만든다고 대안동화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개미나 베짱이가 아닌 들쥐들의 이야기인 <프레드릭>이 무엇보다도 훌륭한 <개미와 베짱이>의 대안동화이듯이, <긴머리 공주>도 기존의 모든 공주 시리즈가 은연 중에 아이의 머리에 심어 놓을 모든 음모(?)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는 것이다. 왕자를 만나 결혼해서 궁전에 살아야 행복한 거라고? 아니! 왕자가 아니라 서커스 단원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궁전 아닌 산골짜기에서 머리를 이불 삼아 누워도 진정, 행복할 수는 있는 것이다.

딸 아이가 여권운동가가 되길 원하느냐고 물으면...글쎄, 잘 모르겠다. 자식은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 엄마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최소한 아이의 머리가 편협하고 부조리한 선입견으로 채워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좀 더 솔직해지면 딸아이가 자라서 궁전 안의 왕자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하지만 그 이전에 단칸 월세방에서 살게 되어도,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누릴 수 있는 아이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그런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긴머리 공주>같은 책이 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딸아이의 엄마가 아닌 '나' 입장의 사족 --- 그림책이 이렇게 섹시해도 되는거야! 공주의 도피 중, 서커스 단원 남자와 함께 긴머리를 덮고 잠이 드는 장면은...왠지 아득하게 섹시한 느낌을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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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crashdown > 총천연색 이야기의 즐거움,
왕도둑 호첸플로츠 1 비룡소 걸작선 7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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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세권의 시리즈인 호첸플로츠는 대악당인 호첸플로츠가 할머니의 커피기계를 훔치면서 시작됩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한 캐릭터들입니다. 동굴 속에 살며 칼과 권총, 코담배를 물고 사는 대악당 호첸플로츠부터 세권의 책 서두에서 언제나 기절하는 할머니, 실수로 악어로 모습이 바뀐 강아지 바스티, 고지식해서 번번히 당하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다정해서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딤플모저 경감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열광에 가까운 흥미를 유발시킵니다. 또한 주인공인 두 아이 제펠과 카스페를은 영리하고 용감한 아이들로써,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이 두아이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용기나 지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권의 책으로 구성된 시리즈라고 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던지,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른 점층적 구조와 함께 결국은 악당이었던 호첸플로츠가 개심하여 착한 사람이 되고, 그것을 믿지 못하던 사람들이 그의 진심을 알자 그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관용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 얽매여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죠. 호첸플로프가 비록 대 도둑이었지만, 그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굉장히 긍정적인 시선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서 개화와 개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가 무리없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모두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권인 호첸플로츠 또다시 나타나다에서 호첸플로츠가 개심한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할때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가 도둑질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유는 언제까지고 악당일을 하는 것은 피곤하고,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해야하기 때문인 것이죠.

책 전반에 걸쳐 이렇듯 긍정적인 시선을 한꺼번에 감싸안으면서도 악어로 변한 강아지나 마술구슬, 여러가지 맛이 나는 호박등의 마술적인 요소 또한 함께 차용하여 신비감과 흥미를 더욱더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도 감탄할만 합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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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독자 > 꼬마야 꼬마야 시리즈 너무 괜찮네~
기러기 꼬마야 꼬마야 6
몰리 뱅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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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마루벌의 꼬마야 꼬마야 시리즈를 <안보여요 안보여>라는 책으로 처음 접하면서 참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꼬마야 꼬마야 시리즈라고 하기엔, 꼬마들만이 보기엔 너무 좋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두번째 꼬마야~시리즈를 보니 더욱 이 시리즈에 뿅간다.^^

'도대체 닭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너무 맛있잖아.' 라는 인상깊은 광고멘트처럼 '도대체 꼬마야 시리즈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너무 좋잖아. 이렇게 좋아도 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그러겠다. 도대체 무슨 왕오바를 그렇게 하는거야? 라고..그러나 나는 좋은책을 보면 잘 오바한다. 좋은걸 어쩌나. 오바하고 싶은걸 어쩌나. 내 맘이다 뭐. 내가 쓰는 리뷰니까.

.............................

어느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 밤에 둥지에서 그만 알이 하나 떨어져 나와 데굴데굴 이리저리 굴러  깊고 깊은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비버의 집 한가운데까지 굴러갔어요.

.............................

이 초입부 내용이 여섯페이지에 걸쳐 그림으로 펼쳐진다.

하얀 기러기의 털과 몰아치는 빗방울이 오버랩된다. 둥지에서 벗어나 이러저리 굴러가는 알이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깊고 깊은 비버의 굴 속이라니...너무 웃기다.^^ 아니 너무 경이롭다. 그 땅속 굴을 깨지지 않고 잘도 굴러갔는지...

백조는 그래도 엇비슷한 오리가족에게로 갔는데 이건 생판 틀린 비버네 집이라니...거기에서 짜자잔~ 하고 태어난 맑은 눈동자의 아기기러기를 보라. 생명탄생은 그곳이 어디이건 경이롭고 아름답다.

여기서 기러기가 태어나게 된 비버 가족은 아주 따뜻한 가족이다. 팥쥐엄마같지도 않고 미운오리새끼네 가족같지도 않다. 흠뻑 사랑해 주고 살아가는 방법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러기가 슬퍼할때 즐겁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따스한 가족.

하지만 가족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안대해주고의 문제가 아닌 문제가 아기 기러기에게는 존재한다. 바로 정체성의 문제.

스스로 찾아야 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러기는 집을 떠나 정처없이 헤메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날수 있는 기러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더없이 기쁜 기러기는 이제 집으로 향한다.

기러기들을 찾아가는것이 아니라 비버가족에게로 훨훨 날아 돌아온 것이다.

정말로 꼬마야 시리즈라고 하기엔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책이지 않은가.(특히 미운아기오리새끼의 내용에 익숙한 이들에겐) 그런데 내용뿐 아니다. 이책의 그림에도 나는 매우 큰 점수를 준다.

앞서도 말했지만 초입의 기러기알이 비버네에서 태어나게 된 과정까지는 클로즈업이 되어 그려져 있다.비버네에서의 생활은 자그마하게 네모칸에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듯 그렇게 그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슬퍼지는 기러기에 대한 표현은 숲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파란 숲속에 유독 나무 한그루가 하얀색이다.그것도 나무줄기만 하얗고 그 나무에서 피어난 잎들은 푸르다. 아마도 자기만이 식구들과 다른 그래서 외롭고 슬픈 기러기의 탄생과 마음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뿌리는 줄기는 다르지만 잎은 숲과 함께 어우르고 있으니까.

마침내 기러기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에서는 그 그림속의 하얀 나무가 그림의 바깥 배경을 이룬다. 그림속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그림의 바깥 배경으로써 존재하는 나무.....세상속으로 나왔다는 의미.....굉장한 그림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은곳.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어 고개를 떨구고 슬픔에 잠긴채 한없이 걷다가 벼랑에서 떨어진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밑에서 위로 그려져있다.기존의 내 시각을 뒤집어 놓은 그림이다.저 낭떠러지 아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로 뒤집어져 떨어지고 있는 기러기. 그 모습이 내 인식의 반대로 그려져 있는 걸 보는 느낌을 뭐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떨어지던 기러기의 모습이 네 장면으로 포착되며 날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너무 멋진 그림이다.

그렇게 날아오른 기러기의 깃털이 처음으로 생생하게 보여진다. 정체성을 찾은 모습이라서 그럴까?

나는 이런 깃털을 가지고 이렇게 날수 있는 기러기였다!!!! 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실망에 잠겼던 작은 모습의 기러기는 이제 상반된 모습으로 멀리 자신있게 앞을 내다보며 힘차게 날아간다. 그 장면 옆으로 네모박스 세칸. 기러기가 그렇게 날아 찾아온 비버네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껴안고 뽀뽀하고...

비버를 태우고 다시 파란 하늘로 날아오른 기러기가 참 멋지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멋지게 컸으면 좋겠다. 멋지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거 다 떠나서 그림이 참 좋다.꼬마야 시리즈라 글이 참 적지만 그림이 보여주는 바를 봐라.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역시 뿅간다.^^

(아~ 나는 너무 좋아서 열라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써놓고 보니 역시 한계만 느낀다. 서점가서 한번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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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아이들과 함께 읽는 반전평화...
바람이 불 때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9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 김경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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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여름 휴가 기간동안에 읽었던 책이다. 대체로 이런 류의 책은 나보다는 우리 집 사람(사실 나보다 바깥 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이시기도 하다.)이 구해온다. 그러므로 난 편하게 집사람이 사오는 책을 앉아서 넙죽넙죽 받아 먹으면 된다(부러워들 하시라, 흐흐).

이 책의 저자 이름을 보고 이 책이 그의 다른 책들 가령 "스노우맨,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곰" 등을 연상하신 분들은 약간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작품들이 일종의 해피엔딩에 아동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이 책은 아동들이 읽기 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만화를 이용한 일종의 반핵계몽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17초. 핵폭탄이 투하되자 폭격기 승무원들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특수방안경을 착용했고, 히로시마 상공 570m 지점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은 성공적으로 그 임무를 완수했다. 승무원들은 진홍색의 섬광을 보았다. 원자탄은 십만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에 섭씨 300,000도에 이르는 불기둥을 뿜어냈고, 1초 후 불기둥은 반경 250m로 부풀어올랐다. 버섯구름은 7km 상공까지 솟아올랐고, 폭발로 인한 열반응은 16km 상공까지 미쳤다. 아무런 사전경고 없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은 폭발 즉시 그리고 며칠동안 대략 14만 명의 사람을 죽였다. 3일 후 나가사키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7만 명이 죽었다. 그후 5년간 방사능에 피폭된 13만 명이 더 죽었고, 그 외 수십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불구가 되었고, 자식들에게까지 유전되는 질병을 얻었다. 전쟁은 끝났다. 미/영/소를 비롯한 연합국 49개국과 독/이/일 등 추축국 8개국이 참전하여 1조 6,000억의 재산 손실과 2,700만의 전사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과연 반성했을까? 아니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이 만화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70년 레이몬드 브릭스가 살아왔던 20세기의 전반기에 경험한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면서 더 이상의 세계대전은, 더 이상 전쟁은 있을 수 없다고 낙관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인류에게 지불하도록 만든 피의 교훈이, 핵의 공포가 인류를 공멸시킬 수도 있는 전쟁을 억제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이런 낙관적인 기대는 오래지 않아 착각이었음이 밝혀진다.

파멸의 시한폭탄인 핵은 그 이후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베트남전 당시엔 전술 핵폭탄의 사용이 진지하게 고려된 바 있었고, 그외 국지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진지하게 혹은 너무 경솔하게 사용을 검토해온 무기였다. 많은 이들이 핵전쟁이 벌어진 적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이미 핵무기와 상당히 친숙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미국은 이미 여러 전쟁에서 특히 걸프전을 통해 '열화우라늄탄'이라는 핵무기를 사용해 왔고, 그 결과 전장으로 변한 지역의 일반인들은 물론 참전한 병사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열화우라늄탄"의 방사능에 피폭되어 병이 나고 있다. 이름하여 '걸프증후군'이 바로 그것이다.

레이몬드 브릭스가 그리고 있는 "바람이 불 때에"는 바로 그런 지점, 인간이 핵에 의한 공포 속에 놓여 있던 시점에 그려진 것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동서양진영 간의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 동서냉전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개발하고, 1959년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뒤,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인 중소 관계가 악화되고 베를린에는 장벽이 설치되고, 1962년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다. 이 무렵 유럽에는 소련의 위협에 대응한다면 미국의 핵무기들이 배치되기 시작한다. 1965년 미국은 본격적으로 베트남 북폭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굳이 유럽이 아니라 어디에서라도 핵전쟁의 위험은 커져만 갔다.

이 작품의 전체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바로 그 무렵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의 이야기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 무렵은 아직 핵무기의 공포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마리 퀴리와 이렌느 퀴리가 우라늄을 다루면서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방사선의 위험을 미처 알지 못해 두 사람 모두 암으로 사망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인 존 웨인은 영화  1954년, 서부영화의 전성기를 누리고있던 존 웨인은 MGM 영화사로부터 "징기스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는가"는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영화를 찍기로 되어있던 미국 애리조나의 피닉스 외곽 120km 사막지대는 1952년까지 핵실험이 있었던 방사능 오염 지역이었다. 방사능의 위험을 잘 몰랐던 제작자는 정부에서 허락한 문제의 지역에서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이때 영화 <정복자>에 출연하거나 종사했던 스태프 117명과 수백 여명의 엑스트라 중 95%가 암으로 5년 안에 사망했다. 그중에는 존 웨인과 함께 출연한 감독 딕 포웰, 수잔 헤이워드, 아그네스 무어헤드도 포함되어 있다. 

국가와 정부는 적의 핵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이쪽도 핵무장을 추진하고, 상대방의 핵무장에 보복하기 위해 더욱더 강력한 핵무장을 준비한다. 미국이 1940년부터 1995년까지 핵전쟁 준비를 위해 투입한 돈은 대략 3조 5천억 달러로 추정된다. 1995년 이후 계속되었던 탈냉전의 분위기 속에서도 미국은 매년 270억 달러를 군비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핵전쟁 방지를 위해 투입한 돈은 22억 달러에 불과하다. 군비를 위해 투입한 돈의 10분지 1도 안 되는 금액이며, 그렇게 쓰인 돈 역시 자신들의 핵전쟁 회피 노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국의 핵전력을 제한하기 위해 쓰인 돈이다. 그런 중에 자국의 국민들에게까지 핵전쟁에 대비해 안전한 대피책이라고 알려준 것이 바로 레이몬드 브릭스의 이 책에 나오는 대피법이었다. 레이몬드 브릭스는 바로 그런 정부 정책의 허구성과 핵전쟁이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이 만화를 그렸다.

1950년대 미국의 어느 잡지는 핵의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핵공격 당시 피폭된 한 시민에게 필요한 의약품의 총량을 계산한 바가 있는데(그렇다고 이 환자가 치유되어 살아남는다는 뜻은 아니다.) 산소통 42개, 붕대43.2km, 혈액 36리터, 체액 47.1 리터, 간호사 3명, 몰핀, 페니실린 등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어느 병원도 단 한 사람의 피폭자를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의약품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즉, 핵폭발이 일어나면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레이몬드 브릭스는 평소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즐겨 그려왔던 인물인데, 이 작품에서만큼은 전혀 환상적이지 않은, 차라리 냉정하다고 느껴질 만큼 리얼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느꼈던 핵의 공포가 그만큼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무언가 결론을 짓기는 참 쉽다. 이젠 핵의 공포가 사라졌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서냉전의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지 되물어야 한다. 이 미친 시대, 12명의 사우디 인들이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을 공격하자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해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안전한가?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 중에서 실제로 동서냉전의 원인처럼 보였던 이념이 실제 전쟁의 동인이었던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쟁의 실제 원인은 늘 전쟁으로 이득을 보고자 하는 이들이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아왔고, 그들의 손에 무기가 쥐어져 있는 동안 전쟁은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몬드 브릭스의 이 만화 "바람이 불 때에"처럼,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 결과 확실한 건 한 가지다. 우리들 중 누구도 살아서 별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참고로 이 책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그런데 그 작가는 레이몬드 브릭스가 아니다. 그가 감수를 하긴 했지만 실제 감독은 지미 데루 무라카미란 작가다. 그리고 이 작품과 관련해서 추천하고픈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이언자이언트"다. "아이언 자이언트"의 원작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다. 한 번 꼭 같이 살펴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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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등 긁어줄 사람을 찾는 공주
공주는 등이 가려워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세르주 블로흐 그림, 이은민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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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면 나는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큰아이 학교 도서실 도우미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3시간동안 계속 일이 있는 건 아니라, 틈 나면 몇 권의 어린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또다른 소득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어린 학생에게 책 한 권을 골라주는 것도 뿌듯하다.

<공주는 등이 가려워>는 기증도서 책장을 분류, 정리하다 발견한 얇은 책이다. '난 책 읽기가 좋아' 시리즈였다. 일단 이 책의 작가 수잔 모건스턴의 기발하고 통통 튀는 발상이 부럽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이야기 속에 담긴 얕지 않은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그렇게 기억에 남는 작가였다. 이 책은 세상 모든 공주, 이 세상의 딸들에게 주는 책이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 모든 어린이, 어른들이 보아도 웃다가 고개 끄덕일 책이다. 삽화도 기막히게 재치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집약적이다. 그리고 상징적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손이 닿지않는 등부분에 물린 모기라는 괴물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괴물은 하필 공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물어 고통을 준다. 세상의 멋져보이는 - 멋지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겉멋에 든 - 온갖 부류의 왕자들을 만나며 공주는 등을 긁어달라고 하지만 매번 실망과 분노만 돌아온다. 어느 날, 책읽기를 좋아하는 공주는 마음을 달래려 책방에 간다. 그 곳에서 만난 또또왕자는 단번에 공주가 가려워하는 곳을 선선하게 긁어주고 둘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 마지막 명 구절, 인생은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이라고...

가치관이 같다는 건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성격은 오히려 다른 것이 분위기를 더 좋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 가치를 두고 사는 부분이 다르다면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떠다니는 사이만 될 뿐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말은 벽에 부딪혀 되돌아와 내 가슴을 공허하게 때리고, 변죽만 울리다 정작 내보이고 위로받고 싶은 곳은 쓸쓸하게 혼자 남아있는 그런 경우가 있다. 가려운 곳이 어딘지 말하는 지혜도, 또 그곳을 눈치채고 긁어줄 수 있는 지혜도 겸비하면 좋겠다.

등이 가려운 공주가 마음에 맞는 왕자를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책방이다. 역시 가치관이 같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의 동반자로 적합하다. 겉멋보다는 내면이 꽉 찬 사람을 만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살기를, 세상의 험난한 바다를 헤쳐나갈 딸들을 보며 나의 염려와 바람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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