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는 동안 희망찬 동심의 나라와 마주한다기보다 오히려 삶의 희로애락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의 동화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나는 특히 여성 주의적 관점에서 이 동화에 드러난 여성의 삶을 살펴보고 작가가 그린 여성상이 가져 올 부정적인 효과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책에 등장하는 마당 식구들은 크게 닭과 집오리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은 무리를 통제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수컷’이라는 것이다. 즉 마당을 지키고 무리를 통솔하는 위엄 있고 능동적인 주체는 언제나 남성이다. 남성이 안팎으로 자주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반면 남성의 삶에 속한 채 순종하면서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주체는 어김없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젠더 전형화는 상대적으로 열린 사고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동화에서조차 자주 사용된다. 이것은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 청둥오리가 지속적으로 먹이를 물어다 주는 행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결국 남성은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인 부양의 책임이 있으며 더 나아가 조직을 통솔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고임금 적용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여성은 일차적으로는 가정의 영역에서 출산과 양육, 남편의 내조에 헌신하고 이차적으로는 직장 영역에서 산업 예비군의 형태로 남성을 보조하는 저임금 적용 대상이라는 식의 젠더 전형성을 독자로 하여금 내면화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새끼를 키우는 잎싹의 삶만 보더라도 전형적인 어머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 대목에는 모성애라는 중요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그에게 자신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집중시키는 주인공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지나치게 자식의 삶에 종속된 여성의 삶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의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젠더 전형성의 강화는 이야기의 결말과도 맞닿아 있다. 족제비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도 처절하게 대항하던 잎싹은 자식과의 이별 앞에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상실한다. 결국 잎싹이 자신을 족제비의 먹이로 자처하는 결말은 이 동화가 여성에게 행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이런 결말은 남편 혹은 자식이 없으면 여성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성으로서의 잎싹의 삶이 얼마나 의존적이고 수동적이었나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현모양처의 미덕을 강요하는 억압과 폭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비극적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작가는 모성애, 희생과 사랑의 고귀함 등을 독자에게 전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젠더 전형성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했던 독자에게는 그것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아직 젠더 전형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독자에게는 그것을 내면화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