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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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이라니. 게다가 저자의 약력도 독특하다. 포스텍 생화학 석사학위를 가진 작가라니. 호기심이 발동해 읽었다. 단편 일곱 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장르 덕분인지 심심할 새 없이 술술 읽힌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다가 어린 시절 읽었던 냉동인간과 관련된 책을 떠올렸다.(검색해보니 2003년도에 대한과학진흥회에서 쓴 <냉동인간의 비밀>이다.) 어떻게 ‘냉동인간‘을 소재로 이렇게 애틋한 내용을 쓸 수 있지?


냉동인간뿐만 아니다. 신선한 소재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 지구인과는 다른 시간 개념을 살아가는 외계인,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감정의 물성, 망자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도서관, 우주여행을 위한 개조 인간, 단숨에 공간이동이 가능한 웜홀까지. 이런 소재들 덕분에 신비감과 더불어 또다른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이런 신비로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소설의 이야기는 모두 현실 사회의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흉측한 얼굴이 있는 사람, 40년 동안 우주미아가 되었다가 구조된, 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할머니와 같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뿐인가. 여성 우주 비행사를 향해 겨누어지는 따가운 의심의 시선은 현실과 너무도 닮았고, 도시개발(소설에서는 우주개발, 엄밀히는 웜홀의 발견)로 인해 소외된 슬렌포니아의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개발만능주의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너무 암울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나름대로 ‘이상‘이라 할 법한 모습을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순례자들의 마을이나 류드밀라의 행성, 또는 두 쌍의 비혼모와 딸로 이루어진 가족과 같은 모습들. 이들 덕분에 소설이 참 따뜻해진다. 이 소설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참 맑은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신선한 소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그 문제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작가의 손길이 어우러진 좋은 작품들이다. 호흡이 긴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아울러 낼 수 있을까? 장편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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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품의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땐 과감히 의미의 맥락을 바꿔라. 자기 정체성을 고집하여 지나치게 표면적 일관성을 내세우지 말자. 본질을 잃지 않되, 시장과 소비자에 따라 유연하게 형식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를 맥주잔에 준 것처럼. 자기다움은 형식에 있지 않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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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 젠더 평등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마이클 코프먼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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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위근우의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읽은 책. 남성 페미니스트, 혹은 ‘남성 페미니스트 앨라이‘(이 책에 위근우 작가가 추천사를 쓰며 그 표현을 썼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남성으로 살고 있는 편집자는 어떤 책을 기획해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달갑지 않았다. 결국 이 ‘전쟁‘을 끝내는 건 남성이라는 걸까, 결국 주체적 위치에 서겠다는 표현이 아닌가. 하여. 심지어 원제는 ˝The Time Has Come˝인데, 이는 지나친 초월번역(?)이 아닌가 싶었다.

이와 같이 다소 미심쩍은 마음으로 읽어간 책이다. 하지만 읽고나니 이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이 남성에게 이야기할 때 이 정도의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남성에게 손 내미는 남성,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그 지점이 아닌가 싶다. 아마 제목은 그런 톤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뽑아낸 것이리라 생각된다.

페미니즘이나 가부장제 철폐가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많은,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는 선에서 동조하는 목소리 역시 함께 터져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위근우의 책도, 이 책도 소중하다. 나는 세상의 어떤 목소리를 책으로 펴낼 것인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고민할 문제다.

이것은 내가 나의 모든 활동에 적용하는 접근법과 동일하다. 직장 내 평등을 위한 활동이든, 남성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육아 참여를 위한 활동이든, 여성의 재생산권을 지지하는 활동이든 마찬가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성을 동맹군으로 여기자. 변화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들고 남성에게 손을 내밀자. 동료 남성에게 변화를 촉구하되 남성 지배 사회에서 남성이 겪는 기이하고 종종 고통스러운 경험의 역설을 이해하자. 남성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과 자신이 범하는 실수를 진심으로 돌아볼 수 있게 돕되 집단 전체에 죄나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는 말자. 광범위한 이슈에 관하여 폭넓은 공적 연대를 이루어 다른 문제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힘을 합치자. 특히 여성과 여성 단체와 연대하고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여성의 지도력과 힘을 배우자. 남성도 변화할 수 있고 괜찮은 사람일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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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오답이 아니라 정답이 하나라는 사고방식이다.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해석을 강요하는 건 의미의 파시즘‘이다(전체주의는 아예 말을 못하게 하지만, 파시즘은 하나의 의미로만 말하게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의미만 고집할 때, 현상의 주름 사이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를 놓치게 된다. 세계는 기본적으로 다의적多意的, polysemic이어야 한다. 의미의 다양성은 세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단일한 해법만을 강요하는 모든 소박한 인식들. 이는 세계의 다양한 의미와 관계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맞선다. 의미의 다양성을 수용하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다르게 살아가는 모든 생활인들의 삶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며 인정할 줄 아는 공동체를 그려 본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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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
위근우 지음 / 시대의창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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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고 유익했다. 내게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에 필적할 만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내 주변 사람을 설득할 때 이 이야기를 꺼내 보면 괜찮겠다, 무턱대고 들어오는 공격에 이렇게 반박하면 되겠구나, 하고 감을 익힐 수 있어 좋았다.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통렬하게 비판하고 시원하게 비꼰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일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정말 오랜만에 웃으면서 읽었고, 크게 배운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았다. 위근우 작가는 공고한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는 역할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뒤의 사람들은 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게 최선일까 하는 문제의식,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남성 발화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최선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이건 뭐 끝까지 파 봐야 알겠지.


정치적 선언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실천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그 자체로 어떤 자격이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실천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란 자신이 속한 남성 중심적 사회에 스민 여성혐오적 관점과 편견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반성하며, 자신에 대한 여성들의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언제든 의도와 상관없이 성 불평등 구조 안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잊지 않는 그 모든 실천으로서만 존재한다.

물론 논쟁에서 모르는 걸 솔직하게 물어보는 태도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질문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보자. 내가 이걸 모르고 있는 건, 혹시 모르고 살아도 아무 문제없던 나의 특권적 위치 때문은 아니었을까.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제대로 이해할 준비(공부)를 하고 다시 의문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는 아닐까.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말뿐인 정중함보다 중요한 공론장에서의 진정한 예의일 것이다.

강자가 안전한 곳에서 낄낄댈 자유를 위해 약자들의 실존적 자유가 억압된다면, 무엇을 억제해야 할지는 꽤 명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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