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이따금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문둥병자들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할머니는 그들 걸인들을 내치지 않았다. 밥도 주고 돈도 쥐여 주셨다. 나에게는 겨울날 온돌 같은 기억이다. 난민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다. 이 손님을 철학적으로는 타자他者,the other 라고 부른다. 신화의 언어로 바꾸면, 손님은 신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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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신화는 존경의 대상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영웅적인 기질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신화는 수동적 관망이 아니라 모방이나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 - P145

창조신화의 주목적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치유였다. 사람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대립을 멈추고 싶을 때 혹은 병자를 낫게 하고 싶을 때도 창조신화의 낭송을 들었다. 인간 존재를 뒷받침하는 영원한 힘을 얻자는 생각이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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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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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치가 ‘서로 다른 기념일’이라고 명명한 그날의 장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모르긴 몰라도 그 눈물이 슬픔을 뜻하는 건 아니었을 게다. 내내 사랑스러웠던 하루미치의 시선이 절정에 달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은 앞으로 많이 엇갈리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행복을 마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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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를 겪고 나는 변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도 근본부터 바뀌었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진가로서 가장 신뢰하던 ‘보다‘라는 행위에 의문을 품었다. 아니, 의문을 품었다기보다는 ‘보다‘ 라는 행위에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통감했다는 게 적절하겠다.
보청기를 끼지 않기 시작한 스무 살 이래, 세계를 오로지 보면서 살아왔는데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라는 생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무시한 셈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표면을 눈이 훑은 것에 불과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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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이 우는 아이였는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엄마는친구에게 보청기를 빌려 왔다(사실 보청기는 개인의 청력에 맞도록맞춤 제작한다). 부모님은 그 보청기를 서로 번갈아 끼고 나를 돌보았다. 보청기의 출력음을 가장 크게 해놓아도 잠이 들면 소용이 없어 엄마는 나의 작은 발과 자신의 손을 실로 묶고 잠에 들었다. 내가 움직이면 실을 통해 그 움직임이 엄마에게 전해져 나를 한 번 살펴보고 다시 잠들었다. 행여나 알지 못할 이유로 아이가 죽지는 않을까 엄마는 나를 보고 또 보며 길렀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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