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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ㅣ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정신 출판사 작정단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식인종으로서, 예비 식인종들에게 해줄 말, 나누어줄 지혜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하하! 솔직히, 사람을 잡아먹는 데 지혜 따위 필요 없죠. 그리고 식인종이 뭐 특출난 종족이 아니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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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김사과 작가의 소설이 궁금했는데 작정단 활동으로 제공받았다.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의 짧은 소설, 게다가 판본도 크지 않아 더욱 속도감 있게 읽힌다.
신선하고 재밌다. 위에 인용한 저 한 문단에 이 소설의 모든 재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네 사회가 먹고 먹히는 경쟁일변도의 사회라는 문제의식도, 그 문제의식을 "잡아먹히지 않으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라며 직설적인 화법으로 표현하는 것도, 1인칭 시점이라는 것도, "쫑 나고 마는 것"이라는 여과없이 내뱉는 표현도, 돌연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도 다 이 소설이 가진 재미 중 하나다.
사실 김사과 작가의 소설을 궁금하게 생각해왔음에도 책을 읽기 전에는 '재밌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컸다. 마케터분이 보내준 메일에 "'식인'의 세계관을 가진 주인공"이라는 말에 '아니 웬 식인...? 노잼 스멜이다...'라고 생각했고, 제목을 보고는 '어.. 뭘까.. 이거 어떻게 읽어야 하니.. '영영제로..?' 마지막 한자는 뭐지?'라고 생각했던 것. 소설의 첫 장면을 보면서도, '식인이라더니 웬 이별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것도 툭툭 내뱉는 듯한 이 독백체는 뭐람.
그런데, 그런데 자꾸만 빠져든다. 소설이다보니 내용을 언급하진 않겠다.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재미는 '속도감'이라 생각한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걸러지지 않는 표현들을 따라 읽다보니 '내달리는' 기분이 든다. 거기에 몸을 맡기고 함께 질주하면 된다. 과연 우리는, 먹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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