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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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3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4권은 11월 출간예정이라고 하네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라니, 레누의 잃어버린 아이인지, 릴라의 아이 이야기일지.
아니면 이 둘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일지 완전 궁금!!

어느덧 3부,
3부는 릴라와 레누의 중년기 삶을 다루고 있어요.
(1부 유년기, 2부 청년기)

나폴리를 떠난 레누와 나폴리에 머무른 릴라의 이야기이지요.
레누는 첫 소설이 예상치 못하게 성공하면서 짧게나마 사회적 명망을 누리지만 결혼 후 그녀의 삶은 남편과 두 딸을 위주로 무료하게 돌아가요. 이에 비해 릴라는 공장에서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노동투쟁의 최전선에 서는 가하면 낙후된 남부 이탈리아에서 컴퓨터라는 최첨단 기기를 유능하게 다루는 전문가가 되어 웬만한 남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게 되며 성공하지요.

레누는 나폴리에 남은 릴라가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역동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하고,
릴라를 떠남으로써 놓친 수많은 경험을 안타까워해요.



'어떻게 여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동안 나는 수많은 책을 읽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 힘든 과정을 견뎌냈을 뿐 책에서 습득한 지식을 제대로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에 쓰인 내용에 대해 한번도 반문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비판적인 사유란 이런 것이다. 그렇게나 노력했지만 나는 제대로 생각할 줄도 모른다.
마리아로사도 마찬가지다. 마리아로사는 다독가인 데다 내용을 솜씨 좋게 재구성해 그럴싸하게 소개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릴라는 다르다. 릴라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공부만 계속했다면 릴라도 이 책의 저자처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즈음 어떤 책을 읽어도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에는 릴라가 떠올랐다. 머리속에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어냈는데 그 여성상은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면 릴라에게서 내가 느껴왔던 것과 똑같은 열등감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책을 읽을 때도 나는 릴라를 생각했다. 릴라의 삶에서 단편적인 사건을 떠올리고 릴라가 공감했을 법한 문장과 싫어했을 법한 문장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_394-5_



발전과 낙후가 혼재하는 나폴리에서 사는 릴라가 나보다 말할 거리가 훨씬 많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뭔가 대단한 삶을 살고픈 생각에 나폴리를 떠남으로써 나는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가.
나와는 달리 나폴리에 머문 릴라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돈도 많이 버는 데다 남들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계획을 따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릴라는 자기 아들을 아낀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바쳤고 지금도 아이에게 정성이다. 하지만 원하면 언제든 아이에게서조차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처럼 자식일로 불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친정 식구들과 연을 끊었다가도 필요하면 항상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 불행한 처지에 있는 스테파노를 도와주면서도 관계를 회복하지는 않았다. 솔라라 형제를 증오하면서도 그들에게 복종했다. 알폰소를 비꼬면서도 그와 친했다. 다시는 니노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릴라는 분명 니노와 다시 만날 것이다.
릴라의 삶은 동적인 데 비해 나의 삶은 정적이다._494-5_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처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_495_






이렇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던 레누 앞에 나타난 니노.
레누는 니노를 잘알면서도, 그를 따라 떠나는데 여기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사랑했던 니노이기에 그녀의 흔들린 감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바람둥이 아버지 피를 타고난 니노를.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다닌 니노를, 릴라와의 불타는 감정도 오래가지 못했던 그 니노를!!
이 모든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남편은 그렇다쳐도 딸 둘을 놔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는지!

과연, 4권에서 레누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네요. 릴라가 니노에게 버림받고 무너져내렸을 때처럼 그녀도 그렇게 될지,
혹은 니노가 진정한 사랑을 찾게될지(이건 말도 안된다고 봄), 혹은 릴라와 리노가 다시 만나게 될지,


나는 몇 년 전 니노가 나를 찾아 동네까지 왔던 때를 생각했다. 우리가 뜰에서 대화를 나눌 때 창문에서 니노를 본 멜리나는 그를 그의 아버지와 혼동했었다. 도나토 사라토레의 옛 정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부자간의 유사성을 감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명황해졌다. 멜리나가 옳고 내가 틀렸다. 니노는 자기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니노는 원래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니노를 미워할 수 없었다._110_


하지만 막상 그가 무아지경에 빠져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머릿속에서 뭔가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내겐 첫 경험인데 니노에게는 과거의 반복일 뿐이구나.'
니노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에게 여성의 몸은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이었다. 나디아나 실비아나 마리아로사나 니노의 아내 엘레오노라처럼 지금까지 니노를 스쳐간 다른 여자들이 생각난 것은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니노가 릴라와 저질렀던 정신나간 짓을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을 뻔했던 그 시절의 광기를 생각했다. 릴라가 그의 열정을 얼마나 맹신했는지, 니노가 읽는 어려운 책이며 니노의 생각과 욕망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생각났다. 릴라는 그렇게 하면 자신도 발전해서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니노에게 버림받았을 때 릴라가 어떻게 무너져내렸는지도 기억났다. 니노는 그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의 광적인 사랑은 다른 광적인 사랑의 재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토록 물불 가리지 않고 나를 탐하는 것도 지난날 릴라에게 했던 전례를 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피에트로와 나의 집가지 나를 따라온 것도 과거 스테파노와 릴라의 집에 숨어들었던 때와 상황이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_568-9_




그리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릴라.
그녀를 아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릴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밖에 마칠 수 없었던 릴라.
릴라를 보면 자꾸 '만약'을 떠올리게 되네요. 레누처럼 공부했다면,
스테파노가 아닌 파스콸레와 혹은 마르첼로와 결혼했다면,
니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미켈레는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릴라를 원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한 릴라 본연의 모습을 원했다. 릴라를 망가뜨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릴라를 가능한 오래도록 간직하기를 원했다. 성적인 이유로 릴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미켈레는 릴라를 섹스에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미켈레가 릴라를 원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그녀를 쓰다듬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릴라가 자신을 어루만져주고 도와주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때로는 명령을 내려주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릴라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늙어 가는지 곁에서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함게 생각하고 릴라에게서 영감을 받고 싶기 때문이었다._286



리나도 정상이 아니야. 언젠가 내가 리나에게 비밀을 털어 놓은 적이 있거든. 너무 두려워서 누구에게라도 내 감정을 드러내야마 했어. 나는 리나에게 내 비밀을 말했고 그때 리나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었어. 덕분에 나는 안정을 되찾았지. 그날 대화는 의미가 컸어.
리나는 귀가 아니라 리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신체기관으로 내말을 듣는 것 같았어. 덕분에 뭐든 말해도 될 것 같았어. 이야기를 마친 후에 제발 비밀을 지켜달라고, 나를 배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어. 다른 사람이었다면 부탁했었을텐데. 그런데 네가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니 리나가 정말 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_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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