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라 - 어느 철학자의 행복 수업
김요한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진정한 행복은 언떤 행동 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어떤 행동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나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거나 나의 본성의 실현이거나 나의 본질의 완성, 즉 나란 존재의 핵심을 규정하고 완성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살아가거나 나란 존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그것은 행동하거나 욕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행동하고 욕망한다. 나의 본성은 나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내가 가진 몸이나 다른 소유물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과 구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사고는 단순히 나의 의식 차원이 아니라 세계를 표상하거나 이해하려는 시도와 같이 더 높은 차원으로 넘어간다. 생물학자들은 인간과 다른 영장류 원숭이들과 유전자 차이가 2~4퍼센트 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교한 언어 사용과 과학, 기술, 예술, 도덕, 기술의 발명 등 지적 능력에 기반을 둔 문화적 차이는 인간과 동물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다.

바로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

생각하는 것이 나의 본질이지만 과연 나는 본질적으로 합리적인가? 나는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지만 인간은 단지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뿐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담배가 수많은 발암물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라! 우리는 모든 문제를 쉽게 분리해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으로 치부해버린다. 나에게는 오히려 그런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간주된다. 따라서 나는 잠재적으로 합리적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본성에 대해 비판적인 교육을 받고 스스로 생각할 때만 실제적으로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마땅히 되어야 할존재로 바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다. 나는 성장하면서 나의 본성을 구현해야 하고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행위로 드러내야 한다. 산이나 고양이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들의 본성은 이미 현실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산이 더 산이 되기 위해, 고양이가 더 고양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현재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즉 좀 더 인간 다워야 한다는 사실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신기하게 나는 나의 본성에 맞게 스스로를 계발하기 시작하고 인간 존재의 삶을 살아간다는 쾌락을 느낀다. 바로 나를 알아가는 지식이나 나의 근본적인 허기진 욕망을 채워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알기를 욕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세계를 알아가길 욕망하고 그것들을 발견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강요하는 교육에 따라 더 이상 우리는 자신을 탐구하지 않고 잘 길들여진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요구받는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을 실용적 지식이라고 가르친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제거해버린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사유가 필요하고 그런 진정한 사유 활동에 자유롭게 전념할 수 없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나를 찾아갈 자유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을 교묘하게 노예 상태에 있도록 만든다. 자유는 우선순위에 올라 있지 않다. 마르크스의 시각에 따르면 프랑스 대혁명의 인권이라는 개념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사적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시장 경제의 논리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원하는 사람에게 팔어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굶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4년재 대학생 대부분이 공시족이거나 대기업 취업에 목매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밀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 즉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실험적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으면 그가 아무리 신분상 자유민이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노예 상태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인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생각하는 자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은 전통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삶’, ‘정치적인 삶’, ‘관조적인 삶을 행복의 구성 요소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 지향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이 행복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쾌락주의적인 삶은 인간보다는 개나 돼지에게 어울리는 것이고 정치적인 삶은 행복이 아닌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가 곧바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또한 명예는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계속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좋은지 나쁜지에 관한 가치문제는 올림포스의 신들조차도 옥신각신하지 않았는가? 트로이 전쟁을 놓고서도 신들은 그리스 아가멤논을 지지하는 신들과 트로이의 헥토르를 지지하는 신들로 나뉘어서 서로 싸웠다. 남의 말은 100퍼센트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결국 마지막으로 관조적인 삶, 즉 자신과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삶이 행복의 길이 될 것이다. 물론 단순히 탐구하는 것이 곧바로 행복한 삶은 아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행복의 출발점이다. 가능하면 앞선 세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하는 삶은 정치적 조건들, 즉 더불어 사는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에 대한 지적 탐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평화로워야 하고 어느 정도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개인은 공동체와 유리될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데 금융 위기가 터지거나 북한의 전쟁 도발이 생기면 관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나의 삶은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앙가주망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한 삶이란 지상에서 고독한 나그네의 삶이나 독불장군의 삶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좋은 상황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이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유로운 생각을 갖지 않으면 이 사회가 정말 좋은 사회인지 분간할 수 없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자유로운 인간은 더욱더 정치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정치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좋은 사회가 정말 행복한 사회인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는 다수의 지배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이기 때문에 다수가 원하는 것이 꼭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점을 매일 확인해야 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이것이 행복이라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요즘에는 행복 심리학자들이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정상인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기에 생명공학 기술이 더해지면 우리의 뇌에서 불행을 느끼는 요소를 제거해서 항상 행복감만 느끼게 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낄 때마다 그런 감정을 제어해주는 약들이 곧 발명될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풍요로운 삶’ ‘걱정 근심이 없는 삶’, ‘다수가 원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부르짓고 있다.멋진 신세계에서 야만인으로 간주되는 존은 그런 예언자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어찌보면 그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에다. 그런데 정말 행복하려면 우리는 먼저 다수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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