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신과 인간의 이원론적 체계가 잠시 동안이나마흔들리기 시작했던 18세기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작가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이와 같은 개입은 지식인적인..그렇기 때문에 갈등적이고 분파적일 수밖에 없는 시각에서진행되고 있는데..이와 같은 작가의 개입에 대해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는
'마녀 사냥'으로 비유되는 중세의 이단 심판이라는 창치다..어려운 구어와 종교/철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를 풀어나가는 긴장된 문장들로작가는 독자의 기를 꺾어놓고 있지만..이 책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무척이나 상식적인 사실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적 세계관이 억압했던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의 욕망이 그것인데..신만이 유일하게 점유했던 관점에 대해자연과학적 지식을 대안(?)으로 설정하고 있다..책속의 화자를 통해 작가는 자연과학이 신의 질서를 밝히는 학문이기 때문에이단에 대한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당대로서는 연금술(중세에는 연금술이 유일한 자연과학이었다)이
그 자체 만으로도 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는..지극히 모호한..어쩌면 화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하지만 이와 같은 현실의 정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내용이 '비판적'일 수도 있는 것은..여성과 남성을 동일체를 등장시켜이를 마녀로 분화시킴으로써신에 의해 억압되었던 인간의 무지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태양이 달에 의해 가려지는 일식..하늘과 땅, 양과 음 등의 조화를 철학적 내용으로 하는
연금술(=자연과학)의 체계를 통해전통적인 가치관에 문제를 삼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이는 동양적인 전통 사상에 대한 복원을 의미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에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연상시키는 방대한(!) 문헌적 지식에도 불구하고..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무엇을 답해줄 수 있는가..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비관적이다..이미 이원론이나 일원론적인 철학적 기반 자체가 해체된지 오래이고..그러한 문제설정을 다시금 현재의 지반에 개입시킨다는 것 자체가이미 복고의 회귀를 꿈꾸는..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가 아닌가라는생각이 들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히라노 게이치로라는 20대 초반의 걸물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일본은 자신들의 문학적 우수성을 자랑할만한 일이고..히라노 게이치로의 탄생을 거세하는 교육이 존재하는 한우리에게 히라노 게이치로는 절대 없을 것이고..더 이상의 문학적 대안도 없음은 분명하다..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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