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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평점 :
난 어릴 때부터 생명에 관심이 많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이 터질 때부터 생물공학이란 학문에 관심을 가졌고, 한동안 그 꿈을 유지하며 살았다. 고교 시절 문 이과를 결정할 때 과학 중에서 생물계통은 수학의 영향을 덜 받지만, 이과를 가야만 생명공학과를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수학을 지지리도 못하는 난 문과를 택했고,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내 인생의 첫 번째 꿈을 저버리게 되었다.
문과에 진학하고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고, 어쩌다 영상 과에 오고 또 어쩌다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책을 내고 어쩌다 취직을 하게 될 때도 ‘그대로 생명공학과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문과지만 사회학책보다 과학책에 관심이 깊은 건 이 때문이었다. 특히나 최근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 작은 것들이 일으키는 변화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 책은 세균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현재 어떻게 이용되는지 등 세균 전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마 책의 두께가 조금만 더 두꺼웠으면, 세균의 역사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넓은 범위 범위를 다루려고 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바이러스에 관해 관심이 깊어졌지만, 아직도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그 점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쉽게 말하면 바이러스가 더 작고 세균은 더 크다. 또한, 바이러스는 숙주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고, 세균은 숙주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아주 간단한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세균은 이보다는 복잡하다. 그리고 세균은 200년 전에 나온 현미경으로도 볼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그렇지 못하다.
저자가 세균을 많이 사랑해서 그런지 세균에 대한 편애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도 사실인 게 세균은 이로운 역할을 많이 한다. 우리 장에 대장균이 없다면 인간은 소화를 못 해서 맨날 설사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아주 먼 옛날에 따로 존재했던 세균의 일종이 우리 세포에 들어와 공생하게 되면서 만들어졌다. 또 피부 겉면에는 보습을 도와주고 외부로부터 안 좋은 물질을 막아주는 세균이 정말 많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세균이 꼭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탄저균은 세균의 일종인데, 인간이 이에 노출되면 호흡만 해도 죽는다. 또한. 핵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고 적은 기술력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게 세균 공학이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이를 언급하며, 인간의 행동에 따라서 세균은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실 난 과학책을 너무 좋아해서, 이 책에 대한 리뷰에 편애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해봤을 때, 이 책을 읽기 어려운 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생물학에 완전히 전무한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세균에 대해 정말 잘 풀어쓴 책이라 읽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바이러스나 세균에 관해 관심이 생겼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색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