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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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란 영화에서는 미래에 범죄가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미리 처벌한다. 뉴턴의 고전역학이 정립되고 나서 과학자들은 이제 우주의 모든 일을 수학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복잡계 과학 등 실질적으로 계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입장이다.) 과학은 어느새 종교의 위상을 얻어버렸지만, 절대적 진리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기술에 대한 맹신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투자 시스템을 만드는데 물리학자가 대거 참여해 여러 알고리즘을 만들어냈지만 잘못 설정된 시스템으로 인해 연쇄적인 경제 급락 사태가 오는 데 기여했다 - 출처: 대량살상 수학무기)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재난이 찾아오기도 한다.

 

 

현대 과학기술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일으키는 분야는 생명공학과 빅 데이터이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지배를 일차적으로 받는다고 말한다. 유전자에 생물의 행동 양식이 결정되어있으면 빅 데이터를 체계화해 생명체를 통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등록자는 이와 비슷한 일이 현실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책에서는 인간의 유전정보로 키, 성격 등의 신체 상태와 행동 양식 등을 모두 추출 해낼 수 있다. 유전자 풀은 국가가 통제하며 누군가가 범죄를 일으켰을 경우 범죄 현장에서의 데이터와 정부 소유의 유전자 데이터를 비교해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다. 검거율은 100%지만 한 살인사건에서 데이터를 찾을 수 없는 유전정보가 나와 수사당국은 전 국민한테 데이터를 수집해 범인을 찾으려 한다.

 

 

책 후반부에 들어가면 일부 기득권층은 범죄를 저질러도 검거되지 않도록 플래티나 데이터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의 유전정보가 현장에 떨어져 있어도 실제로 검사해보면 not found라는 결과가 나오게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내용은 조지오웰의 ‘1984’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빅 브라더에 감시당하는 것이 노골적인 전체주의였다면 빅 데이터를 통한 시스템은 교묘히 인간을 속박하고 통제한다. 이는 현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진짜 중요한 정보는 소수의 거물 투자자한테만 공유되고 실제 시장에서 나오는 정보는 한물간 더미 데이터일 뿐이다. 기술의 발달이 평등한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한 사람은 과연 기득권층이 자신의 특권을 내어줄 것이라 보는가? 인공지능, 빅 데이터, 유전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가장 먼저 그 혜택을 받는 건 소수의 지배층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끔찍한 전체주의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도 접어둘 순 없다. 기술은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본능은 그대로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언제나 그렇듯 쉽게 쓰여 있고 몰입감이 있다.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학술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핵심 키워드만 잡아내 서술하는 걸 보면 베스트셀러의 대가라는 말이 괜히 붙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한참 나라 안팎이 시끄러울 때인지라 이 책의 존재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중국에서 얼마 전 유전자 가위 기술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 미등록자에서 보이는 사회가 멀지 않았다는 우려가 든다. 과학기술은 철학적, 윤리적 사유를 하지 못하기에 과도한 맹신은 광신도의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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