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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묻다 주니어 클래식 6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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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대학시절, 수업과제로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고 발표했던 적이 있었다. 촉박했던 시간에 쫓겨 책은 대충 읽고 풀이집만 열심히 베꼈던 생각이 난다. 번역도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 당최 무슨 말인지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점수는 안습이었고, 재수강을 해야 했지만 과감히 날려버렸고, 나에게 막스 베버의 이 책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랬기에 친구의 강력한 추천과 표지 그림이 아니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다. 요즘 미술과 관계된 책들을 즐겨읽는데, 이 책에는 좋은 삽화가 많았다. 표지에 브뢰겔의 '아이들의 놀이' 부터 시작해  레핀의 '볼가강의 뱃사람들' 레제의 '인부들' 등등 순간 미술서적이 아닐까 란 의심이 들었다. 목차의 내용을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처음 1부와 2부는 막스 베버의 원저작을 풀어쓴 글이었다. 제목만 보면 대학시절 악몽이 되살아나 읽기가 꺼려졌지만 책을 읽을수록 노명우 저자의 필력에 빠져들었다. 노명우씨의 글은 엄청 쉬웠고 독자의 흥미를 잘 끌었으며 막스 베버의 핵심을 잘 집어내고 있었다. 옛날에 어렴풋이 다가왔던 [프로테스탄트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제 분명하게 읽혀졌다. 근대의 노동 개념이 고대나 중세와는 완전히 달랐던 점이나 자본주의 정신이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되는 과정과 프랭클린의 자기관리법까지 새삼 막스 베버의 분석력에 놀라고 말았다. 이 책이 좀 더 일찍 나왔으면 대학시절 레포트 점수를 올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3부의 내용에서 노명우씨는 막스 베버의 이론으로 21세기 현재를 분석하고 있다(막스베버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는 1620-1720년이었다). 3부의 내용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저자는 단순히 고전해설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를 되묻고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역사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하고 있다.

노명우씨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노동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나간다. 우리는 왜 일할까?  불안을 없애려고? 돈을 위해서 아니면 쇼퍼홀릭의 저자인 레베카처럼 쇼핑을 하기 위해서? 나는 왜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걸까? 자기 개발을 안 하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걸까? 백수는 죄악인가?

아침 8시 눈 뜨기 무섭게 출근 준비를 한다. 산더미 같이 쌓인 오늘 할 일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지하철 푸쉬업맨의 고마운(?) 도움을 받아 겨우 지각을 면한다. 월말이면 며칠 동안 계속되는 야근으로 눈 밑의 다크써클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자기개발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늘 외국어 테이프를 듣고  '시크릿'과 워렌 버핏을 읽는다. 이런 삶이 행복한지 내가 원했던 삶인지 물을 겨를도 없다. 그저 눈앞의 당근만 보며 죽어라 달리는 우리의 삶이다.

일본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은 노동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파트타임 잡을 선호하며 여가시간이나 놀이를 더 소중히 한다고 한다. 이런 형태를 책에선 비노동주의라고 말한다. 게으를 수 있는 것도 권리가 될 수 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건 철이 없는 어린애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란 얘기다

저자는 노동의 여러 형태들을 제시하면서도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가 하는 가치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책은 고전읽기에서 나아가 내 삶에 문제의식을 심어주었다.

삼청동 어느 담벼락에 적힌 "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란 책 속 사진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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