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걷는사람 시인선 28
희음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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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시집은 제목만 보면 다소 과감하고 명징한 선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 시집을 앞에서부터 끝까지 다 읽은 후에야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된다. 그것이 은밀하고 낮게 울리는, 힘 있고 간절한 소통의 목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희음 시들의 언어에는 늘 소리와 냄새가 일렁인다. 소리는 혼자 내뱉는 웅얼거림이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하울링이다. 행간에서 늘 풍겨 나오는 역한 냄새는 스스로 만들거나 맡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은 고통과 상처, 길 없는 막막함, 쓸쓸한 울부짖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감각들은 동물적이면서 동시에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활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약한 짐승이 처절하게 상처받으면서 길러온 야생의 습성 같은. 그것은 숨결을 타고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서서히, 은밀하고 치밀하게.

시집의 앞에서부터 읽게 되면 홀로 서 있던 시인이 어떻게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치마를 부딪혀 오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다가오는 몸부림이 얼마나 무해하고 처절한가도 알 수 있다.

 

소리를 불러낸다는 건

바람이 지은 계단을 당겨 오는 것

그것은 한없이 말랑거리고 깊어

계단에 맞춰 흥얼거리며

나는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어루만지는 높이> 중에서

 

소리로 불러내고,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는 시인의 몸부림은 말없이 말을 거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귀결된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사람을 위한, 사람에게로 다가가려는 말들인 것이다.

 

말수가 없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게 아닐까

<얼룩 이야기> 중에서

 

내게로 손 내미는 시인의 손은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가시가 돋은 듯 위험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손을 기꺼이 마주 잡고 싶어지는 것은 이 시들의 언어가 가진 힘이며 시인만이 가진 소통의 방법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깊이 나를 감각하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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