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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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이라는 감수성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나날이 길었다.

당신은 입을 다물고 희영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편집부에서 가장 가까웠던 정윤을 빼앗긴 심정일지, 회의 시간마다 희영의 주장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용욱에 대한 거부감일지. 어쩌면 희영은 그때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정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처음부터 정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정윤이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삶을 사는 것을 경계했던 용욱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배출될 수 없는 독처럼 하루하루 당신 몸에 쌓였다. 당신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저 당신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 심지어 당신 자신을 대할 때 당신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됐다. 짜증을 쉽게 냈고,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서 자기 분노 속에 갇혔을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시기를 쓰는 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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