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헤르만 헤세 지음, 강민경 옮김 / 로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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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헤세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생 무렵 어린이문고 <데미안>을 통해서였다. 온전히 이해하기 보다 훓으며 무심히 페이지를 넘겼다고 해야맞겠다. 이렇듯 헤세의 책은 내게 쉽게 펼칠 수 없는, 읽는대도 용기가 필요하였다. 시간을 돌고 돌아 <나의 믿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술술 읽히진 않았으나 마지막 장을 덮을때에는 마음 한가운데에 묵직한 존재감이 자리했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한 배경을 가진 헤세. 책을 통해 만난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달리 여러 종교와 믿음에 대해 더없이 관대했다. 믿음을 다양한 형태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중심은 ’사랑’이었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헤세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심이 깊지 않은 천주교인임에도 때때로 타 종교를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스스로의 이기심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책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게는 선과 평화가 아름다움을 추구할 가능성이 주어졌으며, 운이 좋은 상황에서는 활짝 피어날 수도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믿음의 확언 역시 앞서 언급한 여러 종교와 사상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흡수하는 깊은 관점이 바탕이 된 것이라 생각한다. 혼란한 세상에서 치열하게 깨달음을 얻고 불교의 열반과도 같은 경지에 이른 헤세의 통찰력과 포용에 감탄이 나왔다.

늘 무언가 변화를 원하면서도 닫힌 마음, 단편적 시선으로 모든 걸 바라보았다. 현실적인 인간과 종교적인 인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미온적 인간의 위치에서 앞으로 나아가야할 걸음이 많다 생각된다. 일단은 그 첫걸음으로 너른 마음으로 헤세에 영향을 끼친 불교, 노자…등 다양한 종교와 성인들의 의미를 너르게 바라봐야겠다.

여전히 내겐 헤르만 헤세는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믿음> 덕분에 깜깜한 세상을 향해 그가 내뿜는 빛줄기가 미세하게나마 발아래를 비추는 듯 하다. 환한 곳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다 보면 헤세, 나아가 삶과 세상이 좀더 나은 방향으로 뻗어가지 않을까 꿈꿔본다.

✔️욕망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채우면, 상대를 순수하게 바라보고 집중하려는 시선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비칠 것이다… 관찰은 연구나 비판이 아니라 애정이다. 영혼의 가장 숭고하고 바람직한 상태, 욕망 없는 사랑인 것이다.
✔️저는 독서와 사유라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 길이 가장 신에 가까운 길은 아니지만 그 또한 길입니다. 한때는 부처에게서, 한때는 성경에서, 한때는 노자나 장자에게서, 한때는 괴테나 다른 시인들에게서 신비로움을 느꼈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신비로움이 같은 근원에서 온, 같은 신비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언어라든가 시대, 사고방식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은 신비인 셈입니다.

✔️종교적인 천재와 현실적인 천재가 서로 흠모하고 마음이 끌리듯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적인 경험은 이성과 경외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가장 모순되는 존재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신 앞에서 모든 것은 똑같다. 그저 겉보기에 다양성과 모순이 드러날 뿐이다.

✔️ 분별력 없고 경솔하며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태곳적 욕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않는다면 풍습은 사라지고 개인의 삶은 결국 급격하게 늘어난 이기심과 점차 몸집을 키우는 죽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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