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11월의 제주는 육지의 봄날처럼 포근했다. 하늘은 더할나위 없이 쾌청했고 바다는 푸르렀으며 생돔감이 넘쳤다. 생명이 역동하는 낮의 풍경과는 다르게 밤엔 더할나위 없이 고요했다. 바다는 등대의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이 바래갔고 하늘거리는 바람은 새벽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포근했다. 한 달 가량 지나 그 풍경이 눈에 아른거려 다시 찾은 겨울의 제주. 미친듯한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때렸다. 순식간에 하늘은 검게 변해갔고 순식간에 눈은 곳곳을 하얗게 물들였다. 내가 한 달 전에 마주한 제주도가 맞나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얼굴의 제주. 방랑객이었던 내가 잠깐 밟았던 제주라는 고립된 공간에 터를 잡은 사람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의녀’이자 ‘거상’이었던 김만덕의 삶이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그녀의 이야기. 중학교 교과서에서 짧은 단락으로 나왔던 지문에서 잠깐 봤던 기억이 있다. 서른 두 해를 육지에서 살았던 내게는 큰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정확한 정보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제주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 그들이 살아왔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지닌 관광지로 변모한 지금의 제주도와는 다르게 고립된 사람이 살기 척박한 땅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바다로 나아가야 했을 것이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그 터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뚫고 육지로 향해야 했을 것이고, 목숨을 걸고 바다로 싸워야 했을 것이며, 척박한 토지의 불리함에도 생존을 위해 바다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어릴 적 바다는 아버지 ‘김응열’을 앗아갔고 곧이어 그의 어머니마저 앗아갔다. 이제 스스로 살아가야만 했던 그녀는 관아의 기방에 맡겨진 채 모든 모든 형제들까지 잃게 된다. 그러나 어렸을 적 부터 아버지를 통해 보고 들은 장사에 대한 것들과 손재주가 더해져 조개로 각종 장신구를 만들고, 기방에 필요한 비누와 촛대 등을 만들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간다. 기방 손님의 요구를 빠르게 판단해가던 그녀는 사업과 연계된 술을 직접 제조하기 위해 제주 최고의 주조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최상 품질의 제주도 갓양태를 육지 양반들에게 공급할 공급망을 구축하기도 한다.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그녀에게도 시련의 순간이 찾아온다. 당시 제주 목사였던 이한길의 망나니 큰아들 ‘진욱’이 기방에서 당한 수모때문에 마을 지방 관리와의 계략으로 양인 신분을 잃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목사는 지방 관리와 큰아들을 질책하며 양인과 천민 사이 어중간한 신분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업을 통해 큰 돈을 만지게 되고 숙원 사업이었던 주막건설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의 막바지로 가는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자신들의 잇곡만 챙기려는 태도에 분노하기도 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 구휼 작업을 펼치기도 하는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당돌하고 당찬 모습에 실소가 쏟아졌다. 그녀가 성장해 가는 이야기는 각색이 더해졌지만 약 300여년 전 대기근이 찾아왔을 때 그녀가 여성이란 한계를 이겨내고, 평민이란 신분을 극복해내고 실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는 사실이다. 양난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아야했던 백성들. 그리고 급속하게 망가져가던 조선 중/후기를 살았던 그녀가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남겨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이제는 서서히 잊혀자가는 잊혀지면 안 될 인물을 지금의 방식으로 재조명하는 꽤나 흥미로웠던 팩션소설 ‘조선의 왈가닥 비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