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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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펼치고선 적잖이 당황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여전히 현대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내로라하는 작가들(헤밍웨이, 보들레르, 랭보, 모파상, 카뮈,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파묵과 피츠제럴드 등)도 많았지만 로랑생, 플로베르, 모디아노, 라히리, 솔닛 등 생소한, 아니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도 여럿 보였다.

당황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차분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문학 여행의 시작점 ‘파리’. 예술과 문학, 문화의 중심지. 예술가들의 고향이자 요람, 무덤이자 종착지. 작가님은 파리의 유명하지 않은 미라보 다리를 거닐던 기억을 회상하며 파리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 다리를 수없이 건넜을 아폴리네르가 쓴 시 ‘미라보 다리.’ 시를 음미해본다. 직접 그 다리를 건너본 건 아니었지만 고즈넉한 놀이 지던 저녁 미라보 다리를 건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폴리네르와 그의 연인 로랑생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미친듯이 뛰었던, 각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가운데 위치해 있던 곳. 둘의 격정적인 사랑을 담은 곳이 바로 미라보 다리였다. 누군가에겐 단지 강을 건너게 해줄 수단으로써 존재하던 것이 사랑과 설렘을 가득 담은 공간으로 변한다는 것. 뭔지 모를 감동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대는 서서히 대서양을 건나 미국 시카고로 바뀌어간다. 그곳에서 전세계를 무대로 한 짧으면서도 강렬한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가 헤밍웨이를 만난다. 헤밍웨이의 소설의 요람이었던 북오크파크거리 339번지. 왜 그가 작품에서 죽음의 서사를 강렬하게 그리는지, 그의 남성적인 강인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에 대한 강의가 끝나고 다시 무대는 파리로 바뀌어간다.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의 주요 무대가 파리로 귀결되긴 하지만 시선은 꼭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프랑스 내 중소도시, 소도시로도 향한다. 그리고 꽤 많은 여정을 소화해 내는 곳 중 하나가 노르망디 지역이다. 4년 전 여름 정말 운이 좋게도 노르망디 지역에 갈 일이 생겼다. 그때 마주한 광활히 펼쳐진 지평선과 손에 닿을듯 가깝게 내려앉은 구름, 푸른 초원과 그곳을 여유롭게 거닐던 가축들. 여행 내내 우중충했던 그곳이 왜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는지 이제야 새삼 이해가 된다.

그리스와 터키, 상트페테부르크를 거친 여행은 마무리되고 이제 그 무대는 대한민국으로 바뀐다. 문예지 새내기 기자시절이었던 때 부터 글을 쓰는 현재까지 작가님이 겪어왔고 겪고 있는 한국 문학에 대한 견해를 들어볼 수 있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당면하며 느낀 시대상과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방식, 그리고 그 문제들을 청년들은 그리고 장년들은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내게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장을 덮은 후 남은 두근거림. 다채롭고 신나는 여행을 마치고 온 느낌이다.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사유를 했던 것 같다. 방대한 문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유하는 작가님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일기도 했다. 내 얕고 짧은 순수문학에 대한 견문과 독서 편식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여러 위대한 순수문학을 다채롭게 맛보았던 시간. 다채로움은 더 깊고 진하게 순수문학을 접해보고 싶은 아쉬움과 열망을 남겨주었다. 자기개발서나 경제/주식 서적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해줄 책이 될 것이리라 감히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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