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훈의 그랜드투어 : 지중해 편 - 사람, 역사, 문명을 거닐고 사유하고 통찰하는 세계사 여행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송동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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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훈의 그랜드투어>의 표지에는 사람, 역사, 문명을 거닐고 사유하고 통찰하는 세계사 여행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책을 흔히 떠올리는 가이드북이나 견문록 정도로 봐서는 곤란하다. 말 그대로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책이다. 관광(sightseeing)과 여행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여태껏 <송동훈의 그랜드투어>만큼 훌륭한 여행서적을 본 적이 없다.

 

아크로폴리스는 한 눈에 보기에도 웅장하고 또 아름답다. 그러나 단순히 그 돌덩이를 한번 쳐다 보기 위해, 그런 일회적인 감상만을 내뱉고자 그 먼 곳을 날아 간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경험하는 것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야 생동감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런 관람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럴 때 아크로폴리스가 세워진 시대적 배경, 관련한 역사적 인물, 사건에 얽힌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숙지하고 미리 그것들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것들을 추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지중해 편에 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나는 이스탄불 이야기를 꼽고 싶다. 이스탄불 도시의 역사는 기원전 600년 경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그리고 4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동서양이 만나는 찬란한 문명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이후 이스탄불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충돌 한복판에 서게 되며, 수백 년에 이르는 기독교 문명과 또다시 수백 년에 이르는 이슬람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이 도시에 남는다. 그 세월 속에서 압도적인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하기아 소피아는 비잔틴 제국과 기독교를 상징하는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용도 변경된다.

 

남아 있는 외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유적들에 더해 이처럼 풍부하고 깊은, 거대한 역사와 마주하게 되자 나는 몹시 설레었다. 그 도시들에 진정으로 흥미를 느껴 <먼나라 이웃나라>를 다시 꺼내 보고 위키 백과에서 그리스, 터키, 스페인의 역사를 정신 없이 찾아 읽었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지중해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이미 디오니소스 극장과 블루 모스크, 세비야 대성당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들었다. 그리스, 터키, 스페인의 역사와 그 역사가 만들어 온 사회,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언젠가 직접 들러 그랜드투어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상기하면서 저 찬란한 문화 유산을, 역사를, 사람들을, 그들이 형성해 놓은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 나아가서는 이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지중해 편뿐만 아니라 서유럽 편, 동유럽 편까지도 이렇게 여행하듯 공부하듯 재미있게 읽어 보고 싶다.

 

읽으며 내가 직접 지중해를, 또 마치 고대에서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지중해를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책. 여행과는 무관하게 언제라도 쉽게 읽히는 유럽 역사책. <송동훈의 그랜드투어>, 동시에 나의 그랜드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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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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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싶다’ ∙∙∙<스토리셀러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했던 감상이다때론 담담하고때론 가슴 저미도록 애틋한 사랑 이야기소재의 참신함과 이야기 전개감정과 사건을 풀어가는 섬세함 모두 훌륭하다. <스토리셀러>는 대칭을 이루는 두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두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글 쓰는 여자와 그 여자 작품의 애독자인 남자 사이의 러브 스토리다글 쓰는 것을 사랑하는 여자와 그 글을 읽는 것을 사랑하는 남자둘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소설을 함께 완성해 나간다그러다 어느 한 쪽이 불의의 일을 당하여 둘의 사랑이 시험 받게 된다. <스토리셀러>는 우리가 사랑하며 겪게 되는 모든 일들 그리고 그 이상의 사랑을 담았다.

 

첫 번째 이야기인 ’SIDE A’ 파트에서는 소설 쓰는 걸 좋아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이길 극도로 꺼리는 한 여자가 주인공이다그리고 우연히 여자의 소설을 읽고 그 여자의 소설을 인정해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남자의 격려와 응원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한 그녀는 마침내 등단하여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그때 과거에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장본인들이 다시 그녀 앞에나 나타나 그녀를 괴롭힌다. 또 그녀의 가족들마저 충격을 안겨주면서 그녀는 결국 세상에서 오직 그녀만이 앓고 있는 희귀병에 걸리고 만다그것은 바로 생각을 할수록 수명이 줄어드는 병, ‘치사성뇌열화증후군이었다그것은 작가인 그녀에게는 더 없이 치명적인 병이었다그러나 그녀 곁에는 언제나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헌신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SIDE B’는 전체적인 플롯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닮은 면이 있다이야기 초반 사랑을 키워 나가는 커플이 등장하고 돌연 큰 난관에 봉착한다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남자췌장암 진단소설에는 남자의 죽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연들 앞에 배치되어 있어 극적인 사건의 긴장감을 더한다.이들이 기르는 고양이 냥이의 존재 또한 중요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부부가 키우는 개 카레닌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의 매개체이자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의 표본의 역할을 한다여기에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스토리셀러특유의 액자 구성은 이야기 구조를 탄탄히 하고 읽는 재미를 가져다 준다글 쓰는 여자와 글 읽는 남자글 쓰는 여자와 불치병에 걸려서도 여자를 먼저 배려하는 남자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스토리셀러>는 다른 무엇보다 두 이야기 사랑이 싹트기부터 연애의 모든 과정에서 남녀간 감정의 미묘한 변화의 흐름을 잘 포착해냈다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어느새 그녀를그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각박하고 무미한 일상에 마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어느 유럽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낭만을 부여한다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소설사랑하게 만드는 소설사랑스러운 소설 <스토리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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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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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만큼이나 유명한 <초한지>, 혹은 고대 중국사를 탐독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항우와 유방 간의 중원 쟁탈전에 몹시 흥미를 가질 것이다가장 극적으로 역사적 주인공이 뒤바뀌어버린 그 몇 년 간의 스펙타클한 사건들과 개성 있고 영웅적인 등장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일만 년 중국 역사를 통틀어 봐도 이때처럼 다이나믹한 시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관해 우리가 정보원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는 고작 몇몇 역사소설들그리고 단편적인 사실이 간략하게 나열된 중국사 개론서 정도가 전부였다개인이 <사기같은 역사서를 직접 연구할 수도 없는 노릇일뿐더러 중국의 역사특히 고대의 어느 특정 시기를 집중해 다루는 대중 채널도 국내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간 <항우강의>는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팩트와 예리한 해석통찰평론을 통해 인물 항우와 항우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임으로써일반 독자와 마니아들의 이러한 정보 갈증을 해소하고 지적 만족을 더해주는 동시에 다각적이고 심오한 역사적 분석을 대중화하였다.

<항우강의>는 당대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시간적 흐름 배경 위에, 항우를 주인공 삼아 주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정치역학적으로 분석하고, 항우의 패인을 정치적/군사적/성격적 요소로 나누어 설명하였다그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물 분석에 있어서의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접근과, 저자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드러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다면적 평가 부분이었다이러한 특징은 책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항우의 포악한 성품과 중국 통일 성패와의 관계그의 휴머니즘적 행동들과의 관계를 분석한 부분이 돋보였다여기서 저자는 항우의 폭력이 그의 패망의 주요한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항우는 분명 진나라 병사 20만을 생매장했지만 그러한 잔혹함은 일전의 진시황이나 그와 자웅을 겨루던 유방 모두 마찬가지였다나아가 저자는 항우의 폭력이 지닌 상황적 특수성을 밝히고 패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다른 주요한 실패 원인들이를테면 범증경포한신과 같은 인재를 잃게 만든 그의 독단적인 성격 등을 강조한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인물 항우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엿보이는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이다가능한 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드러난다사서에 기록된 항우의 언행으로부터 유추하여 그의 성격을 분석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그의 인품에 매우 비판적이나 일관된 논리와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어 전혀 과한 듯싶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미인과의 사랑과 그의 말년의 처지를 서술하는 파트에서는 따뜻한 시선으로 항우의 낭만적인 면모를 바라 본다항우가 자결하는 최후의 장면에 이르자 항우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항우와 유방을 비롯한 장량항백한신역이기종리매경포기타 수많은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의 정치역학적인 분석 시도일 것이다특히 사건의 분석과 비평 내용은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하는지역사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는 듯하다결론적으로 항우는 전투에서 패배를 모르는 당대 최고의 군사혁명가이자 시대의 영웅이었지만 전략적정치적 접근 의식의 부재로 인해 제왕이 되기에는 모자란 사람이었다게다가 자신감이 지나치고 주변 사람들을 신용하지 못하여 화를 자초하기도 하였다이러한 부족한 면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서초패왕의 자리에서 추락하고 스스로의 목을 찌르는 지경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동일한 논리가 여러 문제에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점도 일부 없지 않으나 대체로 납득할 만한 정도이다. 전체적으로 <항우강의>에서 보이는 저자의 논리는 비교적 정연하고 치우침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무리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초한의 역사는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읽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바가 다르다인간과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욕망과 의지를 이해하는 수준이 거듭할수록 깊어지기 때문이다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훌륭한 참고서인 <항우강의>를 읽음으로써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요구되는 회독수가 비약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초한의 역사에 해박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항우강의>는 충분히 흥미롭고 읽을 가치가 있는 역사 비평서이며, 대중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중국 고대사의 재미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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