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우리 시대의 질문 2
윤보라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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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쏟아져 나오면서 최근 여성 혐오에 관련된 책들이 단기간에 많이 나왔다. 그 중 여성 혐오가 어쨋다구?’는 점점 여성 혐오 이슈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무렵인 20157월에 출판된 책이다. 이 빠르기라면 거의 여성 혐오, 가 인터넷에서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할 때 바로 글을 의뢰해서 받자 마자 출판했다고 봐도 무방할거 같다. 덕분에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도서 이벤트 할 때 이 책은 항상 추천도서에 있었으며, 여성 혐오에 대해 잘 설명해줄 거 같다는 이미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려고 구매했을 것이다. 이 책의 기획의 말에서도 여성 혐오란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혐오라는 거대한 괴물의 몸뚱어리를 확인해보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기에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뒷통수를 맞는 기분을 겪을지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의 글쓴이는 6명으로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못 들어본 사람도 있었다. 다만 글쓴이 소개에서 정말 다양한 경력을 지닌 글쓴이들을 섭외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각자의 입장에서 여성 혐오를 어떻게 바라볼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아마 이 책의 첫 꼭지를 쓴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을 읽을 때만 해도 그 기대는 유지가 되었던거 같다. 그 뒤 임옥희, 정희진이 쓴 글들은 자신들이 연구한 영역에서 여성 혐오를 말하려고 했으나, 독자 설정을 어떻게 했는지가 의문스럽다. 글 쓰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일반인 보다는 이에 관해 연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거나, 아니면 일반독자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지고 내용이 어렵다. 이 책으로 여성 혐오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이 당황하지 않았을 까 싶다.

 이 두사람의 글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탓에 그 뒤인 시우의 글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는데, 소재가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오해 받을 만한 행동을 먼저 시도했음에도 그런 사항을 제거하고 교직원의 근태만을 지적, 이를 논리적 연관성 없이 남학우 휴게소를 만들어 달라는 주장으로 연결시킨 연대의 논지당 사건으로 대학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여성혐오 사건을 다뤘다. 얼마전 강남살인남 사건과 비교해 봤을 때 인터넷에서 나타난 남자들의 태도와 논지당 사건에 대응하는 연세대 남학생들의 태도를 비교해서 보면 더욱 재미있다. 여성 관련 사건이 나오면 어떻게든 자신들이 겪는 조그만 불이익을 설명하며 이부터 바꿔야 한다는 기득권자들 잘 설명했다. 앞의 두 글이 어렵기도 했지만 시우가 워낙 주제를 잘 골라서 친절히 설명했다. 때문에 시우의 글을 잘 읽었는면 앞으로도 대학가에서 논지당 사건과 같은 쓸모없는 논쟁이 줄거나 그러한 논쟁이 다시 생기더라도 그러한 주장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 두 명이 남았다. 루인은 트랜스 여성이 비트랜스 여성으로부터 겪는 혐오에 대한 문제를, 나라는 성소수자들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양성애자나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리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루인의 글을 읽으면서 트랜스 여성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여성들이 오히려 공감은 커녕 시스플레인을 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나 또한 충격을 먹었고, 내가 트랜스 여성에 대해 과연 -사회적-혐오 없이 동등한 인간으로 대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나라의 글에서는 소수자 안에서도 소수자의 혐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수자가 소수자란 이유 만으로 다 연대 할 수는 없는건데 그저 우리는 성소수자를 다 같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버리는, 역시 일종의 혐오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할지도 몰랐던 혐오를 알게 해준 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루인과 나라, 이 두 사람이 이 책을 무슨 주제로 엮는 거였는지 생각하면서 쓴 글일까, 라는 것이다. 글의 완성도나 문제 제기는 둘째 치고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젠더퀴어와 성소수자가 말하는 여성 혐오, 그리고 이에서 이어가는 사회적 혐오였는데 정작 이 둘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만 줄창 풀어놓는다. 루인은 트랜스 여성이 여성에게 당하는 시스플레인 문제를 제기하며 자연적 여성이 인공적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를 말하지만 정작 트랜스 남성이 겪는 혐오는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트랜스 여성이 여성에게 겪은 혐오를 지속적으로 말하지만 문제는 트랜스 여성이 여성에게 겪은 혐오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글에 여성혐오란 키워드는 다 들어가 있긴 하지만 엉뚱하게 여성 혐오가 아닌 여성이 가하는 혐오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다. 알게 되어서 좋은 문제이긴 했지만 여성 혐오에서 왜 여자가 하는 트랜스 여성 혐오에 대한 글을 읽어야 하는지 글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루인의 의식 아래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이런 소수자 혐오에 대해서 같이 편들어야 할 여성이 트랜스 여성을 혐오한다는 억울함이 있지 않나 싶다. 그동안 여성 운동은 성해방운동의 역할도 하며 사람들이 이원적 성이 아닌 다양한 성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응원하긴 했었다. 하지만 모든 여성 운동이 젠더 퀴어과 함께 해야하는 것도 아니며, 여성의 수가 많은 만큼 트랜스 여성에 대해 혐오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같이 여성인데도 인공적이라는 이유로 트랜스 여성을 혐오하는 비트랜스 여성들 실망이야.’라고 읽힌다면,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가 불편하다면 그건 내가 잘못된걸까.

 루인의 글에서는 심지어 여성도 사라지고 혐오만이 남았다.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받는 혐오와 성소수자들이 자기 내부의 소수자에게 하는 혐오 이야기, 그 어디에도 여성 혐오의 이야기는 없다. 글을 부탁받았을 때 주제가 여성 혐오라는 전달을 받지 못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글을 자유기고로 받았는지 혼란스럽다.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가 둘다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현상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독자들이 이 책에서 읽으려고 했던 것은 여성 혐오에 관한 이야기인데 왜 나는 주구장창 양성애자와 트랜스 성애자들의 혐오만을 읽어야 했을까. 이쯤 되면 책 이름에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두가지 결론이 나온다. 두 사람이 여성 혐오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썼던가, 아니면 출판사가 원래는 두 사람한테 사회적 혐오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했다가 페미니즘 이슈가 뜨자 책 팔고 싶은 마음에 책 이름을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로 지었던가.

 임팩트 있는 제목, 좋은 글들, 그리고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몇 명씩 예약대기를 할 만큼 높은 인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아쉽고 어이없고 짜증나는건 여섯 편의 글이 어우러지면서 여성 혐오의 입체적인 윤곽을 보여준다는 기획의 말과는 달리 전혀 따로 노는 여섯 편의 글에 벗어나는 주제들, 잘 못된 독자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윤곽은 커녕 그림자도 보여주지 못하는 여성 혐오 때문이지 않을까. 글 하나하나는 정말 수작인데 이렇게 모아 놓으니 폭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출판사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제목의 속은 독자들이 없기를 바라며 그래서 뭐가 어쩄다는건지 불만만 가득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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