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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잠망의 시간 -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온고지신의 지혜 ㅣ 우리시대의 수필작가선 92
김옥한 지음 / 수필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평소에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느라 수필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족의 이야기라 가벼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수필을 가까이하지 못한 이유다.
이 책도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지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풀어놓아 잘 읽혔다.
쉽게 썼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청국장 같은 깊은 맛이 있었다.
생소한 말이 많이 나왔다.
잠망, 엄대, 두멍, 볕뉘, 초리, 풋굿, 간각, 거멀못, 적바람, 말곁, 보늬, 나비잠......
처음에는 쉬운 말도 많은데 굳이 이런 말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읽어보면
말 뜻도 알게 되면서 그런 말이 제 맛을 내는 것 같았다. 마치 전기밥솥의 밥과 가마솥에서 한 밥맛이 다른 것과 같은 느낌.
글은 어떻게 쓰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 저자는 일상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힘이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것에서 소재를 가져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런 것도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것도 잘 풀어내는 것을 보면 나물 몇 개로 한 끼 훌륭한 밥상을 차리는 엄마의 손맛을 느낀다.
이 책을 목포와 증도 여행 중에 다시 읽었다. 겨울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읽었다. 읽으면서 남도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어느 시골 황톳방에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는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시골 누나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같다. 오랫 동안 잊고 지내던 외사촌 누나가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누나에게서 편안함과 시골 정서를 느꼈듯이 이 책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서 나온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나 체격을 보고 판단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그 됨됨이를 알게 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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