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는 길이었을까요? 아직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기차역에 들어선 엄마. 어느 나라나 엄마 마음은 비슷한지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이 셋 모두 파랑색으로 예쁘게 맞춰 입히셨네요. 그런데 마침 불어온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버리자 무척 아끼는 모자였던건지 아니면 그리 멀리 날아가지는 않아서 금방 찾을거라고 생각했던건지 위의 남매에게는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으라 하고는 막내를 안은채 모자를 찾으러 가는데... 에고고... 하필 그 자리가 짐 나르는 수레 위였네요.. 본의 아니게 수레에 실려 자리를 떠나 엄마를 잃어버리게 된 남매. 경찰관 아저씨께 엄마를 설명하는데 이 아이들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무거운 짐도 혼자 옮길만큼 힘이 세며 하늘만큼 땅만큼 책을 많이 읽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목소리의 소유자인데다가 아주 날씬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예쁜 모자만 쓰며 용감하고 똑똑할 뿐만 아니라 말할때면 모두 귀를 기울인대요. 나중에 엄마를 찾고 나서 지극히 평범한 엄마의 모습에 황당해하는 경찰 아저씨의 표정이란..ㅋ 왜 잊고 있었을까요? 엄마만 고슴도치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눈에도 콩깍지가 덮인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 역시 과대평가 되어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미안하기조차한데 언제까지 이 콩깍지가 덮여있을런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조금 슬퍼지기도 합니다.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그림에 숨어있는 아이를 찾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랍니다~^^
'쏘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으로 널리 알려진 Molly Bang의 작품입니다. 같은 작가의 그림책이 맞나 싶을 만큼 '쏘피가...' 와는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죠. (이런 주제로도 한 번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것 같네요~ 같은 작가, 다른 느낌 ^^) 얼굴과 양 손 외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회색인 할머니가 가게에서 딸기를 사가지고 나옵니다. 그 뒤를 온통 푸른색에 긴 손발의 깡마른 딸기 도둑이 쫓아 가지요. 딸기 도둑이 할머니의 딸기를 막 뺏으려는 순간 낌새를 알아챈 할머니는 달아나고.. 이후 쫓고 쫓기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결국 할머니는 무사히 딸기를 가져가고 딸기 도둑은 산딸기를 따먹으며 만족스러워합니다. 아이 그림책으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의 일러스트인지라 예쁘고 고운 그림을 선호하는 분들이라면 조금 거부감이 들런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아이들은 상당히 좋아합니다. 잡힐듯하다 빠져나가는 아슬아슬 쫓고 쫓기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긴장감과 함께 숨바꼭질하는듯한 재미도 느껴지고, 딸기 도둑의 음산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비해 쫓기는 할머니의 표정이 종종 여유로워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스토리에 몰입되고 맙니다. 그다지 사실적인 그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느껴질만큼 생동감있구요.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재미있는 요소들이 읽을때마다 튀어나오네요.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볼 때마다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오히려 글이 있었더라면 방해가 되었으리라 생각될만큼 일러스트의 구성이나 스토리가 빼어난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지금 내 품안에 안겨있는 작은 이 아이가 자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수 있을만한 나이가 되었을때 아이의 기억속에 소중히 남아있게 되는건 과연 어떤 일들일까요? 아마도 역사책에 기록될만한 엄청난 사건들보다는 자신만의 작지만 기념할만한 일상의 일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마 그 상당부분은 '처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하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처음 가는 심부름 길, 엄마와 함께 갈때는 몰랐던 그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집니다. 길에서 친구를 만났을때는 잠시 으쓱하기도 했지만 넘어져도 아픈줄도 모르고 동전부터 찾을 만큼 바짝 긴장한 이슬이. 겨우 언덕 위 가게에 도착하지만 이제까지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게 아주머니께 우유를 달라고 해야하는데 이슬양 어찌나 긴장했는지 눈에서 꿈뻑꿈뻑 소리가 나는것 같았다네요. 정말이지 아이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듯한 표현 아닌가요? 표지의 활짝 피어나는듯한 이슬이를 보세요. 처음으로 혼자서 심부름을 해낸 뿌듯함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 심부름이 동생을 위한 것이었기에 더욱 빛나는것이겠지요. 심부름을 마치고 당당히 집에 돌아 오는길엔 엄마가 동생을 안고 마중나와 계십니다. 틀림없이 엄마에게도 이슬이만큼이나 마음 졸이는 시간들이었을테니까요. 제가 접한 쓰쓰이 요리코씨의 작품들 모두 하야시 아키코씨의 수수한듯 정감있는 그림체와 찰떡궁합으로 어우러져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매를 키우고 계신다면 '순이와 어린 동생'과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도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마음이 찡해지는 소중한 그림책들이랍니다.
요즘은 외동이들도 많지만 가정도 작은 사회라고 하는 만큼 아이들은 형제 관계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며 자라지요. 태어난 순서에 따라 고유의 성격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던데 맏이, 그 중에도 특히 큰 딸의 경우는 엄마의 역할을 일부 분담하며 자라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한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직은 실컷 어리광 부릴 나이인데도 맏이라는 이유로 양보나 동생 돌보기등을 당연히 해야할 일로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이 책의 지원이도 아직 어린 아이지만 혼자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 댁까지 가야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네요. 여동생이었더라면 지원이가 좀 편했을지 모르겠는데 남동생, 그것도 한창 말썽부리기 좋아할 나이의 개구장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 표를 홀랑 빼앗아 달려가지를 않나 갈아타야할 역에서 깨우니 버럭 화를 내지를 않나 가는 길 내내 말썽이 끊이질 않습니다.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무사히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때 엄마의 동생 데려오느라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에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리는 지원이.거기서 끝이었으면 이 책의 재미는 반감되었겠지만 우리의 지원이, 누나 맘도 몰라주고 내내 말썽만 부린 얄미운 동생의 엉덩이를 한 번 내질러줍니다. 형제간의 싸움을 조장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형제들은 누구나 투닥투닥하며 자라잖아요. 동생이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눈쌀이나 한 번 살짝 찌푸려주는게 전부인 아기토끼 루비같은 천사표 누나보다는 지원이가 더 살갑게 느껴지네요. 우리 작가가 그린 우리 동화책이라 이 책의 주 무대인 지하철의 모습이나 주위 풍경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답니다. 이런 좋은 우리 그림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참. 이 책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 한가지 알려드릴게요. 각 페이지마다 숨어있는 물고기를 찾아보세요. 병관이 옷에 그려져 있는 물고기 말구요. 병관이 티셔츠의 물고기가 병관이가 화낼때 어떻게 변하는지도 한 번 눈여겨 봐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