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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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가 극찬한 추리소설 유망주 요코제이 다이의 작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릴 정도로 몰입해서 읽게 된다. 그녀들은 함께 범죄를 공모하지만, 각자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함께 하지만 끝까지 함께할 수 없는 완전 범죄를 꿈꾼다.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남겨질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네 여인을 중심으로 사건은 이어진다.


간호사로 일하다 같은 병원 의사를 만나 결혼 후 사쿠라기의 부유한 마을에서 전업주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진노 유카리. 행복한 결혼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말 잘 듣는 하녀에 불과한 삶이다. 숨 막히는 그곳에서 구원의 빛처럼 만나 내 편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단지 유카리의 부부생활이 궁금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숨 막히는 그곳에서의 탈출을 계획한다.

"나는 남편한테 어떤 존재일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아내라는 말이 정답이겠지만 솔직히 자기가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도 아니고 어머니도 될 수 없고. 차라리 동거인, 아니 하녀라고 하는 편이 좀 더 맞는 것 같았다. 도모 아키의 시중을 드는 하녀." (p.53)


서른을 훌쩍 넘겨, 이제는 뭇 남성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아쉽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자신만만한 대기업 홍보팀의 히무라 마유미.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결혼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처녀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조차 마유미를 이용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자신을 속인 그를 단호하게 끊어내기에는 그가 속해 있는 세계가 탐난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날한시에 부모를 잃고, 염세주의자가 되어 버린 여자 다마나 미도리.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놀아도 살아가는 데는 조금도 문제가 없다. 사쿠라기의 부유한 저택을 뒤로한 채 오지를 떠돌아다닌다. 어쩌면 그녀는 일상을 벗어난 여행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리고 싶은 여행 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카리의 탈출을 돕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녀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비틀린 욕망일 뿐이다.


두려울 것이 없는 여형사 구마자와 리코. 수수한 시골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엄청난 비밀을 숨겨두고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그녀들의 범죄를 움직인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부유한 정형외과의 진노 도모야키. 부유한 집과 명석한 두뇌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 정도를 품고 있다. 사랑하지도 않고, 주변 여자 탐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생명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와 부모의 말을 따르는 하녀가 필요할 뿐이다.

"그 말대로 부유한 집안 출신에 직업은 의사다. 하지만 도모아키는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사는 꼭두각시 같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다. 눈앞에 깔려 있는 레일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타성으로 달려가는 인생이라는 느낌이었다." (p.249)


진노 도모야키로 이어진 그녀들은 각자의 목적을 이유로 범죄를 계획하게 된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가 시작되고 도모야키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아주 작은 혼란만을 일으키려던 범죄는 급기야 거대한 태풍을 일으키게 되고, 평범한 듯 이어지는 범죄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다가온다. 완전범죄에 이른듯한 그녀들의 범죄는 집요함과 동물적 감각으로 추적하는 형사들을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성들의 억압된 삶이 표현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남편과 시댁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인형 같은 삶을 버릴 용기는 없었는지, 대기업의 커리어우면으로서의 성공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와 명예를 보완해 줄 남자가 필요했던 건지 말이다. 몰입감 높은 추리소설은 맞지만, 그녀들의 범죄에 적극적으로 공감, 동조할 수 있는 메세지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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