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것 행복할 것 - 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홍인혜 지음 / 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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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파크' 홍인혜 작가가 쓴 독립 생활 에세이. 
캐릭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귀여운 루나파크를 보았을 것이다. 
카피라이터이자 카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홍인혜 작가. 
카피라이터만, 카투니스트 하나만 하더라도 시간을 쪼개 써야 할 것 같은데,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회사원 카피라이터이면서 어떻게 책까지 낼 수 있는지 
아무것도 안해도 시간이 슉슉 잘 가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불가.
심지어 이번 책이 첫 책도, 두 번째 책도 아니라니!!
무려 다섯 번째 책이다!!!
존경심이 절로...



에세이지만, 중간 중간 만화가 실려 있다. 
심지어 웃기다. 
일상툰 작가답게 일상의 유머를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주인님ㅋㅋㅋㅋㅋㅋㅋ



자취 5년차인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같은 자취 5년차인 나와 어찌도 이리 비슷한지.
읽으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자취는 5년차지만 혼자 산지는 2년차인 나도 처음엔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온전히 내 몫만 해서 먹을 수 있다는 로망이 있었는데
정작 혼자 살아보니 재료를 사 놓으면 상하기 일쑤, 
요리를 한 번 하면 적어도 다섯 끼는 그.것.만. 먹어야 다 먹을 수 있는데다가 
매일 3끼를 집에서 먹는 건 극히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결국 그 요리도 다 못 먹고 상한다. 
그래서 혼자 산 지 한 달 만에 웬만한 건 사먹는 게 훨씬 싸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나도 타취중.



특히 '쓰레기 메이커' 챕터는 우왁. 진심 격공. 
혼자 사는데 무슨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사 먹으면 사 먹는대로 일회용품 천국. 
재료를 샀는데도 포장지 천국.
쓰레기통은 왜 이렇게 금방 차오르는 것이며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라면 하나를 끓여 먹어도 건더기가 덕지덕지 달라 붙는데 
인간은 정말이지 쓰레기 메이커임에 틀림없다. 
지나간 자리엔 향기 만이 남아야 할지언데  자취생이 사는 자리엔 냄새만이 남는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는 시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결혼이 필수적인 시대는 지났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고 
'충분히 혼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고 여기는 이들이 점점 다수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물론 결혼을 가로막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모든 시선과 관습을 떠나서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주체적 존재가 된다는 것.

어찌 보면 깊은 얘기를 하면서 개그를 빠뜨리지 않는 작가의 매력이 터진다ㅋㅋㅋ



"연약한 마음에도 잘 듣는 영양제나 불안한 마음을 강하게 하는 강장제는 왜 없는 걸까.
왜 몸에는 그 많은 상비약이 있는데 마음의 상비약은 아무 것도 없는 걸까.
산란한 마음을 다독이고, 없던 기운을 샘솟게 할 만한 물질은 아직까지 맥주 한 잔밖에 찾지 못했음이다." 
p207, '술래 없는 술래잡기' 중에서


홍인혜 작가의 글은 직관적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고 스토리텔러적 기질이 있어 친구랑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으로 글을 이어 간다.
작가의 기분,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이라 생동감이 넘친다. 
자신을 가라앉히고 꾸며내는 글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기장 속 글과 같다. 
그럼에도 그 속에 좋은 은유들을 종종 사용해서 더욱 매력적이다.  




언뜻 보면 독립 생활의 행복함과 즐거움에 대한 책 같지만, 
독립 생활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이 겪는 불안함을 소상히 기록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현관 입구에 남자 구두를 하나 놓아야 하고, 
수리 기사님과 단 둘이 좁은 방에 있을 때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 
나만의 공간과 자유를 얻은 대신 공포와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는 독거 여성. 
남성에 비해 가지지 못한 물리력이라는 것의 존재가 여성이 숱하게 느껴야하는 불안의 원인이 되어서, 
그렇게 여길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격공 제 2탄. 
자취하면서 지속적으로 섭취한 인스턴트, 고열량 저영양소 음식들로 인해 생각지 못할 정도로 쪄버린 살. 
그리고 등록하는 고가의 PT.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고, 지금은 가난한 학생인 척 하는 백수이기 때문에 PT를 맘껏 끊을 수는 없지만
돈을 쓰지 않으면 절대 운동을 하지 않기에 한 달에 십만 원이 조금 넘는 요가 센터를 다니고 있다. 
정말 격공이다. 
돈의 코뚜레를 장착해야 그게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간다. 
그게 바로 우리같은 의지박약인들의 섭리. 




격공 제 3탄.
혼자 살면 내 시간을 온전히 내 맘대로 쓸 수 있으니,
집에서 매일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맘껏 알차게 할 줄 알았지? 
나란 놈은 그대로다. 어느 환경에서든. 




격공 제 4탄.
자취생들에게 냉동실은 정신과 시간의 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것을 냉동실에 넣지만 나오지 않는다... 
언니와 살 때는 빵을 사오기만 하면 언니가 다 먹어버려서 사놓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살면 시리얼과 식빵 등 내가 언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항상 구비해야지! 하고 결심한 후, 
식빵을 사서 냉동실에 얼렸는데
안 먹고 싶어진다. 
냉동 식품이 아닌 이상 냉동실에 들어가면 먹고 싶지 않아지는 이상한 논리. 
그렇게 좋아해서 돈만 있으면 매일 사 먹던 잉글리쉬 머핀도 만들어 먹겠다고 빵을 사서 쟁여뒀더니 두 번 먹고 안 먹음.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공감과 위안을 얻을 책. 
유난히 나와 생각이 비슷한 작가님이어서, 또 개그 코드가 나랑 너무 잘 맞아서,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오랜만의 책. 
책 속엔 게으른 루나지만 현실은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홍인혜일 것 같은 작가님이 더욱 정감가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문제도 많고 어려움도 많지만, 
혼자여서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자유와 자아로 가득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혼자여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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