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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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마법사 이야기를 좋아했다. 요술 지팡이에서 튀어나오는 오색찬란한 불꽃, 저주에 걸려 공중으로 훌쩍 떠오르거나 폭발하는 물건들, 그것들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에는 늘 큰 위험이 따르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마법’처럼 다시 평온이 찾아오면 다 함께 와하하 웃고 마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라면 전생에 글자를 배우지 못하고 죽어서 한 맺힌 사람처럼 몽땅 찾아 읽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부엌 서랍에서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꺼내 쥐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방방 뛰어다니다가, 밤에는 아무도 몰래 그 젓가락을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들 정도였다. 나도 어쩌면 마법사가 아닐까? 누구나 가졌을 법한,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소망으로 나날이 살이 찌고 뼈가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조금 다른 마법사 이야기였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딘가 낯설고 음침한 기분이 들었다. ‘위저드’라는 단어에 꽂혀서 무심코 책을 펼쳤다가 읽기를 조금 망설였다. 이 마법사는 요술 지팡이도 없고(이게 핵심인데!), 마법의 주문을 외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신비한 마력이 담긴 빵을 만들어 파는 제빵사다. 언젠가 자신이 목숨을 구해 준 새가 인간으로 둔갑해 함께 일하는 빵집에서, 악의와 몽환을 철저히 숨긴 채 소름 끼치도록 평범한 외형을 두르고. 두꺼운 고서들이 담긴 책장의 먼지 냄새나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눅눅한 냄새, 신비한 동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숲의 무시무시한 냄새가 아니라 달큼하고 고소한 빵 냄새라니. 하지만 나는 마법과 모험에 집착하는 열네 살의 나이였음에도 그 소설을 도무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상야릇한 빵 냄새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아니면 책에서 정말로 빵 냄새가 솔솔 풍겨서였을까? 오감을 자극해 생생하게 펼쳐지는 장면 속으로 여기저기 던져놓는 구병모 작가의 문장들에 한동안 속수무책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어린 시절 품었던 남모를 소망의 주어를 난생처음으로 수정해 보기도 했다. 마법사는 어쩌면 내가 아니라 구병모 작가가 아닐까?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마는 이야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주인공이 불행해지는 꼴을 견딜 수 없었다. 온갖 고난을 감수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이 마침내 웃는 모습이라도 보는 것이 힘겨운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읽어온 독자들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도 가졌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끄트머리에서 양 갈림길처럼 나눠진 두 개의 결말에 충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껏 단일한 해피엔딩만을 고수해왔기에 책을 덮고 나서는 두 결말 중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은 행복해진다는 건가, 아닌 건가? 10년이 넘게 흘러 다시 책을 집어 든 지금, 나는 그때의 불평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징벌 같은 불행이 내려지기를, 마법사는 계속해서 빵을 굽고 세계의 균형을 지키기를, 주인공은 낙인이나 오해 같은 인생의 어떠한 오점도 묻지 않은 채 표백된 듯 말끔한 인생을 살기를 누구보다도 바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개의 결말을 다시금 읽고 난 뒤 알게 되었다. 어딘가에 확실한 행복을 맡겨놓은 것처럼 구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걸. 그건 현실에서도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니까. 반면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열광하던 이야기의 성질이 조금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나는, 뭐든지 해결해 줄 것 같던 마법이 한계에 부딪혀 영영 소용없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환상을 다룬 이야기는 끝내 세상이 환상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희망찬 결말에 기대를 걸거나 맹목적으로 낙관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이루게 해준다는 말을 가장 경계하는 일은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배운 쓰라린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법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른이 된(혹은 여전히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나는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마법의 존재를 마치 부서진 머랭 쿠키 조각처럼 남겨두었고, 그것이 이 희망 없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가게 해줄 단 한 번의 기억이라면, 그러니까 길을 지나다 무심코 맡은 빵 굽는 냄새로 마법사를 소망했던 어린 시절의 불평이 떠올랐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부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린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능청스레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들이 정말 내가 조정한 결과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은 어처구니가 없거나 억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땐 그저 마법이라고 생각해버리면 되는 일이다. 물질세계와 비물질 세계의 불균형으로 인해 숨이 붙어있는 모두가 그 책임을 조금씩 나눠지고 있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악마의 시나몬 쿠키가 효능을 제대로 발휘했고 또 누군가 타임 리와인더로 시간을 되돌렸기에 같은 실수나 행운을 두 번씩 반복하는 것이라고. 마법처럼 힘겨운 나날이 찾아오면, 다시 마법처럼 선택을 내려 현재 상태를 뒤집어버리면 된다고. 그러면 삶은 달고 둥근 대보름빵처럼 어떻게든 데굴데굴 굴러갈 것이라고. 마법이 끝내 실패하는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마법을 긍정하는 어른은 Y든 N이든 모든 알파벳을 총동원한 수많은 미래라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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