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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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의 작가. 7개의 세계. 하나의 책에서 이렇게나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고 기쁨이었다. 또한 당선된 작가들이 모두 여성작가, 여성의 서사를 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작품을 기대하고 독서를 설레게 만드는 소설들. 각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작품 속에서 작가 특유의 색깔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또 그들의 세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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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의 어느 밤은 남편에 대한 혐오를 느끼던 한 할머니가 킥보드를 훔치며 시작된다. 어느 밤 발견한 킥보드에 대한 은밀한 욕망은 결국 그것을 훔치고 매일 밤 신나게 타는 데에까지 이르며, 결국 는 내리막에서 사고를 겪는다. 주인공은 사고 현장에 쓰러진 채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회상한다.


주인공 가 가진 과거의 고통, 아픔, 절망은 무덤덤한 문체로 해설된다. 어떤 입장에 이입하기 보다는 그저 관찰하듯 보여준다. 기성 세대의 여성들이 겪은 상처의 서사를 할머니가 킥보드를 타는 동화적 설정과 일종의 얼음땡놀이로 은유하여 드러내는 방식은 새롭게 느껴졌다. 어떤 슬프지만 끝내 웃게 되는 동화를 보는 느낌.


권여선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을 갔다가 생긴 아이를 파양한 상처를 가진 주인공 마리아의 조각들이 그녀의 동료 성도들과 그 중 한 명인 베르타의 관점으로 모여든다. 이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변 성도들의 입에서, ‘베르타의 참회로 이어진다. ‘고귀하지 않음에 대한 반성.


고귀한 것과 고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베르타라는 인물이 마리아에게 윽박질렀던 대사처럼,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고귀하지 않은 입장이지 않았을까. 혹은 누구에게 라고 생각할 것 없이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까.


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은 시골로 거처를 옮긴 젊은 부부와 그들의 영역으로 무람없이 침범하는 보안업체 직원들 간의 갈등을 그린다. 비밀을 품고 있는 젊은 부부와 그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보안업체 직원들 사이의 팽팽한 불안과 긴장감을 편혜영 작가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편혜영 작가의 특유한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마주친 차와 시비가 붙어 폭력이 오가던 그녀의 소설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다(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한 권유가 실은 협박에 가깝고, 피해자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괴물과 다름없는 진실이 혼란스럽고도 기묘했다.


조해진의 환한 나무 꼭대기에서는 짧게 출가했다 환속한 간병인 가 그녀가 돌본 혜원이 죽은 후 그녀의 집에 살게 된다. 어렸을 적 이혼 후 아들에게 매일같이 이메일을 쓴 혜원의 부탁으로 는 스무 살쯤 되었을 그녀의 아들에게 부고를 알리면서, 그가 돌아온다면 그녀의 집과 유산을 물려줄 것을 부탁받는다. 삶의 무감함과 가 뜻밖의 인물과 만나며 이루는 어떤 마음의 연결은 아름다운 문장들로 한여름의 계절 속에서 천천히 흔들린다.


조해진 작가가 쓴 아름다운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계속 연필로 문장들에 밑줄을 치고 여러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어떻게 이런 관찰을 했을까. 빛의 호위단순한 진심등의 이야기들 속에서 보았던 낯설고 웅크린, 눈에 잘 띄지 않는인물들이 등장해 기쁘기도 했다. 계속해서 그들이 소설 속에 등장해주었으면.


황정은의 파묘는 외조부의 파묘를 위해 군사분계선의 최전방을 찾는 이순일과 그녀의 딸 한세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죽음 후에는 찾아올 이 없는 묘를 차라리 파헤치고 남은 유골을 화장하는 장례는 한 씨 집안사람들의 이야기와 교차하며 전개된다.


황정은 작가. 너무 좋다. 언젠가부터 소설 속 인물들을 호칭이 아니라 이름 세 글자로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군사분계선을 가본 적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산 속 풍경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순일과 한세진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좋았다. 도대체 한국의 가부장제란 무엇일까.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안 한다며 뒷짐만 지고 서있는 한중언이나, 자기와는 다른 일이라고 방관하는 한만수의 뒤통수를 한 대씩 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최은미의 운내가 과거 운내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운내의 기와유리집에는 기구한 내력의 산주님과 오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고, ‘는 기와유리집에서 함께 지내는 승미와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도 알 수 없는 관계의 경계선에서 갈등한다.


그들이 끝말잇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고, 서로 초성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좋았다. 마지막 결말은 섬뜩하면서도 기묘했다. 읽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한 감정들이 남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버린 기분.


김금희의 마지막 이기성은 한국유학생 이기성과 재일 코리안 유키코의 연애와 연대를 그린다. 잔뜩 압착되어있는 도쿄 사회에서, 답사 중 차별을 감지한 이기성이 같은 처지에 놓인 유키코에게 연대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유키코의 입장은 그와 엇나가고, 결국 기꺼이 연대해주면서도 다른 결을 가진다.


김금희 작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설이었다. 함축된 단어들이 부드럽게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문장들. 이어질 듯 빗나가는 인물들의 마음. 그들이 부딪히고 다시 만났다 끝내 멀어지는 것은,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알아내야 할 삶의 마지막 진실들을 마주하는 필수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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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년에게 지금은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거라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곧 누군가 땡 하고 외쳐줄 거라고. 얼음땡 놀이란 그런 거라고. 누군가 땡하고 말해줘야 집에 갈 수 있는 거라고.” (p.27)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p.174)

 

+) 책의 테마는 짙은 남색과 분홍인 듯하다. 두 가지 색의 띠가 표지의 위와 아래를 두르고 있고, 앞표지 정 가운데에 배치된 그림에는 시커먼 남색에서 점점 분홍빛으로 밝아지는 하늘과 그 위에 떠오른 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있다. 얼핏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디자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경영상의 문제로 잠시 중단되었던 김승옥문학상이 다시 재개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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