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미션으로 받았던 메신저 라는 책에 이어서 또 로이스 로리 작가의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기억 전달자, 파랑 채집가, 메신저에 이어 태양의 아들로 끝이 난다고 한다.
나는 이 네권중 세권을 다 읽은 셈이 된다. 그런데 이 세 권을 읽었을 때 신기했던 점은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어귀가 잘 맞아떨어지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였다. 조나스의 탈출기, 산속을 뚫고 간 멧티가 떠오르면서
작가 로이스 로리가 이 기나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맺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클레어와 가브리엘이었다. 가브리엘은 애칭으로 게이브로 불리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분명히 기억전달자의 조나스가 새로운 마을로 데리고 온
동생이자 아기였다. 그리고 클레어는 게이브의 엄마였다.
클레어는 조나스와 같은 사회에 살고 있었다.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 모든 일, 모든 교육을 다 통제 관리하던 그곳에서 클레어는 출산모라는 직업을 배정받았다.
보통 그러하듯이 직업 배정은 열두살 때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열두살 때 그녀는 인공적으로 태아를 생성시켜야 했고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정말 잔혹한 사회가 아닐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기를 낳다가 문제가 생겨서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그녀는 마치 쓰레기 처분하듯이 어류 부화장에 가서 일을 하라며
보내졌다. 출산동에서 감정을 없애는 환약 복용을 그만 두었던 클레어는 다른 사회구성인원과 다르게 감정을 가질 수 있었는데 모정과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느낀 후에는 환약을 다시는 복용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 눈을 피해서라도 복용을 안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고 마음속으로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일
그 신생아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사회 규율인 거짓말 금지 규율을 어기고 양육센터에 가서 봉사가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바로 자신의 아기인 36호를 보기 위해서이다. 봉사를 핑계로 그녀는 아이와 장난도 치고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도 보고 품에 안아도 보았다.
하루하루가 지날 수록 클레어는 아기가 없으면 미칠것 같았고 하루종일 아기 생각만 났다. 공동체 위원회에서는 성장이 더딘 그 아이가 문제가 있다며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을 하는데
자신의 의사를 밝힐수도 그 아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 클레어는 절망했고 조나스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자 아이가 살수도 있다는 희망에 강가에 있는 배에 올라탔다. 폭풍우 치는 순간에 배는 클레어를 집어삼켰고 그녀를 바다로 데려간 강은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뺏었다. 기억마저 모두 없어진 클레어는 그 마을에서 인정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녀에게 기억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새 그녀는 소녀에서 여성이 되어있었고 오로지 아들을 찾겠다는 의지로 그녀는 절벽을 오르기로 결심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중 단 한명도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고 아이나르만이 절벽을 올라본적이 있는데 정체모를 악마에게 두 다리가 잘려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나르는 그 후로 말수가 적어지고 홀로 양을 돌보며 살았다. 클레어는 그에게 절벽을 오르고 싶다고 말하고 그는 고민끝에 클레어의 의지를 보고 도와준다. 눈을 감고 모래주머니를 여러개나 달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거나 한손으로 푸쉬업을 수백개씩하는등 뼈를 깎는 훈련을 오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견뎌낸 클레어는 드디어 절벽에 오르게 되었다. 오년이라는 아이나르 와의 훈련을 거치면서 클레어는 사실 아이나르를 향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그것은 아이나르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알았지만 클레어가 곧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슬픈 사랑을 단절시킬수 밖에 없었다. 피를 흘리며 절벽 끝에 도착한 클레어도 아이나르와 같이 거래마스터라는 사내를 만났다. 그는 실로 악마였다. 거래를 통해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조건으로 클레어의 젊음을 가져간
거래마스터는 그래도 클레어의 소원을 들어주긴 했다. 클레어를 게이브가 사는곳으로 데려다 준것이였다. 육체가 매우 강인했던 여성의 몸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된 클레어는 허리가 아파 많이 걷지도 못하고 이가 아파 과일을 씹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잘게 부슨 빵을 조금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클레어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가져야할 게이브에게 쭈구렁 할머니인 자신이 미안한 마음에 정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얼토 당토 못한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털어놓을 사람도 찾지 못했다. 항상 마을 뒷편에서 게이브를 바라만 보던 클레어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자신이 곧 죽으리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어릴적 공동체에서 가끔 얼굴도 마주했던 조나스가 있음을 기억해내고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녀는 게이브의 출산모라고. 조나스는 잘 들어주었고 게이브는 처음엔 이 꼬부랑 할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를 깨닫고는 그녀가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클레어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게이브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클레어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거래마스터와 한 거래를 물리는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려면 누군가가 악독한 거래마스터를 해치우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게이브는 그를 해치웠다. 게이브에게는 조나스나 키라와 마찬가지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것은 게이브가 어떻게 거래 마스터를 이겼느냐이다. 게이브의 능력이 힘이 마구 세지는 그런 초능력이라 거래마스터를 한번에 던져버려 쓰러트린 것이 아니였다.
게이브의 능력이 무기를 불러와서 그를 무찌르거나 동물과 교감하여 야생동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는 것도 아니였다. 게이브의 능력은 '접혼' 이라고 그사람의 의식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였다. 나는 사실 의아했다. 물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거나 시험을 볼 때 유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능력으로
어떻게 결투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게이브는 결투에 응하기 전에 세찬 강을 건너서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나는 게이브가 어떻게 싸움을 할지 몹시 궁금했다.
예상했던 대로 게이브는 접혼을 시도했고 거래 마스터의 속안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루이스로리는 거래 마스터를 악의 존재로 그려놓았다. 세상의 모든 악함을 거래 마스터로 비유했다고나
할까. 거래 마스터의 본질은 끝까지 악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비통을 보며 힘을 키웠다. 자신이 낳은 불행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다보면 또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는것을 게이브는 깨달았다. 자신의 힘이 강력하지 않다고 느낄때, 자신이 악하다고 믿어왔던 것이 깨어질때 거래 마스터는 비로소 힘을
잃는 다는 것이였다. 나는 그때 작가 로이스 로리의 생각에 또 다시 놀랐다. 악의 세력에 대항 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나 악행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힘의 근원을
무너뜨리는데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짚어냈기 때문이다. 만약 게이브가 힘으로 거래 마스터를 찍어 눌렀다면 게이브도 또 다른 거래 마스터와 다름없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무찌른것이 아닌 임시방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 마스터의 빈틈을 잡아낸 게이브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기꺼이 모든 것을 당신한테 넘겼고 당신은 빼앗아갔죠. 젊음과 아름다움, 힘과 건강까지 모두.....",".....하지만 상관없어요. 우린 서로 만났으니깐."
게이브는 거래 마스터를 동정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빼앗는 바람에 애틋함과 사랑은 더 진해졌으리라고. 거래 마스터는 말 하나하나에 공격을 받는듯이 키와 몸집이 줄어갔고 나중엔 한줌에 재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재마저 게이브가 발로 툭 차자 바짝 마른 모래성처럼 바스라져버렸다. 결국 거대해 보이는 악의 존재와 그 실체는 겨우 이정도라는 것을 뜻한 것이였을까.
클레어는 다시 젊은 모습으로 돌아온 게이브를 맞이했다. 이렇게 4부작의 시리즈, 기나긴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 이 이야기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희생, 기꺼이 실천하는 용기, 그리고 한줌의 재 뿐이 아니였던 악의세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클레어가 기억을 잃고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할때 그리고 결국 게이브를 멀리서 지켜만 볼 수 없을때 독자들은 클레어와 하나가 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야기만 들으면 뻔하지만 직접 그사람이 되어보아도 그럴까? 우리 사회를 빼다 박아놓은 듯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언듯 언듯 볼수 있는 그들의 인정이나 매몰참. 독자는 로이스 로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배경속에 녹아들어 그 분위기에 매료될 것이다.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