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금지 리스트
레이철 콘 외 지음, 황소연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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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제목과 깜찍하고 예쁜 또래 소녀의 모습으로 장식된 겉표지부터 맘에 끌려 읽어내려간 "키스 금지 리스트"는 처음 몇 장을 읽는 순간 깜짝 놀랐다. 책에 씌여진 말투가 너무 투박하고 직선적인데다 톡톡 튀는 로맨스 표현들이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이성에 대한 사랑에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주인공은 나오미, 첫번째 브루스, 두번째 브루스, 일리, 나오미의 어머니, 그리고 가브리엘이며 작가는 그들 사이의 꼬이고 꼬인 로맨스를 간단명료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배경자체도 충격적이고 외국의 개방적인 문화도 따라잡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오미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자면 나오미는 엄마가 실연당하셔서 아버지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고 계시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든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나오미는 가장처럼 행동하고 자신은 절대 사랑에 실패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엄마 노릇을 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스트레스와 힘듦을 나오미는 베프인 친구 일리에게 기댔고 일리는 나오미의 모든것이자 사랑이었다. 적어도 나오미는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다.

 

나오미는 정말 일리와 친했다. 나오미의 옷이 일리의 것이였고 일리의 옷을 나오미가 입었다. 둘은 서로의 집에 뭐가 있는지 속속들이 꿰고 있었고 밤늦게까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맥주를 마시다 그대로 잠드는 경우도 허다했다. 나오미는 외모가 수려해서 남자들이 잘 고백하는 타입이였고 일리또한 그녀만큼 매력적이라 게이바에 가면 항상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였다. 하지만 나오미는 다른 남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일리만을 바라보았다. 물론,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건성이였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늘 생각했다. 남자친구 마저도 일리를 질투하지 못했던것이 나오미와 일리의 사이는 누가 건드리면 안될 것 같던 방해하면 안될 것 같던 특별한 그리고 지극히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리가 게이라는 것이다. 나오미는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과 사귀어 결혼해서 사랑할 수있다 생각하지만 어느순간 그건 깨져버렸고 자신의 남자친구와 키스하고 있는 일리를 발견하게 된다. 깨질듯이 위태로웠던 일리와 나오미의 사이는 10년의 사랑을 부숴버렸고 나오미와 일리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나오미는 일리를 거부했고 이렇게 둘의 사이는 부서지고 서로를 평생 몰랐던 사이처럼 지냈다.

 

나오미의 남자친구는 브루스로 나오미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오미를 만나러 아파트로 왔다가 나오미가 늦어 일리와 만나 잠시 일리네서 기다리고 있기로 한날 사건이 터졌다. 일리는 매우 매력적인 성격이었는데 브루스도 일리와 이야기하다보니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끌려버린것이다. 브루스는 게이가 아니였지만 일리에게 끌리면서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있다 키스를 했는데 바로 그때 나오미가 알게 된 것이었다. 나오미는 일리에게 상관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일은 이미 꼬이고 꼬여버렸다. 나오미의 틀어진 사랑은 그렇게 어긋나고 말았다. 나오미는 곧 자신이 엄마가 꼼짝않고 누워있는 "실패한 사랑" 의 침상 옆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해보니 나오미에게는 일리만이 전부가 아니였다. 일리도 나오미를 사랑하지만 나오미가 일리를 사랑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였던 것 뿐이다. 서로의 감정을 정리하며 일리는 나오미가 어쩔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해주길 바랬고 곧 나오미도 자신이 바보같았음을 어느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도 남자를 좋아하고 일리도 남자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사랑이 될 수있겠는가. 그래서 나오미는 곧 털고 나와서 일리와의 부서진 벽을 다시 세웠다. 새롭게 세워진 벽은 예전 같진 않겠지만 우정으 힘으로 매우 견고했다. 나오미는 절대 자신이 엄마의 침상곁으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엄마를 침상에서 일으켜세웠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집을 떠나자고. 새로운 곳을 찾아 일리와 아버지의 여운을 잠시 잊자고. 새출발을 하자고. 엄마를 설득했다. 나오미는 게다가 줄곧 호감이 있던, 그리고 자신에게 대시해오던 잘생긴 경비원 가브리엘과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틀어져있던 모든것이 자리를 찾았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조금 놀랐던 것은 게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 때문이였다. 나도 모르게 나한테는 게이에 대한 편견, 이상하다는 선입견 등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오미는 게이인 절친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게이여도 자신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키스 금지 리스트를 만들어 서로 같은 남자를 좋아하게 될경우 키스할수 없는 사람을 나열해 조율했다. 문제는 그게 깨졌다는 것이겠지만. 게다가 우리나라와 달리 게이와의 우정과 사랑에 대해 정말 솔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새로운 문화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한국과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치관이 정말 다른 것 같았다.나오미는 고심하는 것 없이 모든 행동이 거침없었고 두려울 게 없었다. 자신만만했고 친구가 많이 없어도 자신감 없어하기는 커녕 더 당당하고 고개를 치들고 사는 용기있는 여성이었다. 그런 도도함과 용기, 자신감에 나는 무척  인상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 자신을 자신감있게 만드는 것은 친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두 명의 작가가 공동작업한 이 책을 보며 나도 언젠가 맘 통하는 친구와 함께 공동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끝으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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