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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조는 화성을 쌓았을까? - 정순 왕후 VS 정조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9
김준혁 지음, 이남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8월
평점 :

수원 화성 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정조, 정약용,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훌륭한 국왕중에 한
사람이였던 정조.
정조는 왜 화성을 쌓았을까요? 위대한 군왕으로 평가 되어왔던
정조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참 궁금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합니다.
오래전에 수원 화성을 다녀왔는데, 다시 가보고 싶어지네요.

어린 나이에 왕비로 들어가서 정조가 조선의 22대 국왕이 될때까지
보호해 주었다고
주장하는 정순왕후가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현 시대의 방송
내용에 대해서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조가 이중인격자라고 하는데,
사실일까요?
정순 왕후가 권력을 탐하기 위해서 사도 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고,
정조의 개혁 정치를
방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조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역사가들도, 실학자들도 정조를 위대한 국왕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정순 왕후의 주장에
따르면 국왕 임명 교지도 내려주고, 국왕에 오른 정조는 정순 왕후의
친정 오라버니를
귀향 보냈고, 또 죽게 만들기도 하였다고 하면서 정조는 사기꾼에
패륜아 라고 합니다.
15세의 나이로 67세의 영조와 결혼한 정순 왕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수원 화성은 백성을 위해서
화성을 쌓았고,
화성 축성시 엄청난 국가 재정이 낭비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증인으로
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이 등장해서 거중기와 녹로와 같은 과학 기계를 만들어서 쉽고
편하게 돌을
나르고 일한 만큼 철저하게 임금을 지불해서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고
합니다.
총 공사비 87만 냥은 정조가 왕실에서 검소하게 사시면서 모은 돈과
쓸데없는 군대를
통합하여 모은 돈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았으니
백성을 위해 만든 성이 맞는것일것 같기도 합니다.

판결문이 나오고 정조와 정순 왕후가 함께 생활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