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본 세월 - 4.16이 남긴 것
김민웅 외 지음 / 포이에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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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하다. 그날의 뉴스가 아직도 생생하다. 거짓말인줄 알았다. 이적의 그 노래말처럼...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렇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괜스레 요즘 들어 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다 거짓말같아서이다. 정부는 무언가 대책을 내놓을 듯하다가도 결정적일 때 방향을 틀고, 그 내용은 알맹이가 없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날의 뉴스가 다 구조되었다는 그 긴급속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잘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오보, 3일 간의 구조에 대한 어이없는 눈속임... 그리고 정말 책임을 져야할 책임자는 다 빠져나가고, 그에 상응하는 대체물 곧 희생양을 찾아 벌주었다. 그러한 한국사회의 희생양 찾기는 반복되는 죽음으로 결론났다. 그로 인한 '결론없음'은 또 다른 '결론 통제'나 다름 아니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시절이 여전하구나. 시절이 바뀐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래로라니. 마치 마법에 걸린 숲을 무한반복해서 걷는 것마냥. 이 사회가 갖고 있는 파괴성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다. 

답답하다. 1년이 지났지만, 해결될 기미가 안보이고 이러한 책이 나와서 답답하다. 계란으로라도 그 바위를 치고 싶다. 견고하여서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바위에 오물이라도, 모욕이라도 주고 싶다. 그래서 계란이라도 투척하고 싶다. 움직이지 않는 권력의 철옹성 같은 그 바위에다가. 그 날을 기억함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언가여서... 11명의 저자들의 글을 통해 그날을, 세월호 사건을 다시 떠올린다. 2015년 "사월(四月)을 사월(死月)로"(216쪽) 기억하게 되는 이 역사의  사건은 사고가 아닌 사건(사건은 의도성을 가지는 일-51쪽)으로, "'갑오참변'이라고 부를 만한 국가적 애통사태요, 국민과 정부를 분열시키는 참변"(178쪽)이 되었다. "세월호의 고통은 하나님 법정에 이첩된 항소문"(181쪽)이다. 이를 기억함은 우리로 "기억의 공동체"(로널드 타카키 재인용, 225쪽)가 되도록 한다. "'기억하고 있다(remembering)'는 것은 철저히 버림받은 세월호 유가족을 다시(re) 우리의 지체(member)로 받아들이는 행위(ing)이며, 그들을 잊었던 우리가 다시 그들의 일부가 되는 행위"이다. 또한 이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행위이다.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고난을 당한 사람이 상실의 아픔을 헤쳐나가고 불신과 회의의 늪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 가장 좋은 길"(45쪽)이다. "프로이트도 말한 바지만, 충분히 애도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은 우울증이라는 정신적 병증이 된다... 충분히 애토케 하지 않는다면 이 우울증은 얼마나 더 큰 사회적 병증을 낳을지"(56쪽)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백소영 교수의 제안처럼 우리는 "'세월절' 지키기"(56쪽)를 실제로 의례화해야 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의례화가 되고 있는 듯하다. "견고하고 높아 보이기만 하는 '죽임과 죽음'의 이 '자본' 우선의 시스템에 구멍을 뚫고 생명의 숨바람이 불게 하기"(65쪽)위해서 말이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서 "이제부터라도 염소의 자폐적 배역을 그만두고 양이 되어 지극히 작은 자를 주님으로 섬기는 우리 삶의 이타적 진정성을 되찾"(85쪽)기 위해서라도... 

꿀꿀하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난 이후의 나의 행보를 돌아보니 그렇다. 별달리 감정의 동요와 분노, 가끔씩의 슬픔 외에는 한 게 없어서... 그렇다. 삶의 팍팍함 앞에 변명처럼 바쁘다는 핑게로 그렇게 그렇게 살고 있다. 역사의 현장 속에서 나는 그렇게 꿀꿀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더 꿀꿀하다. "책임의 소재를 따지고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난하고 큰소리치면서 왈가왈부 떠들지 말고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너의 죄부터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그같이 망한다."(154-155쪽)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나의 글 읽기, 삶 읽기가... 아니 말씀 읽기와 말씀 살기가!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는 말씀을 나누었던 나 자신이 그에 걸맞게 살지 못함에, 이 사회에 작은 등불 되지 못함에... 꿀꿀한 밤, 세상을 넘으려고 했던 그 배(世越號)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넘어서는 배가 되라 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계란을 들고 바위 앞에 서려한다. 바위같은 계란이 계란같은 바위를 깨어부술지, 혹은 내가 계란이 되어 그 바위에 으깨어짐으로 그 바위를 이미 깨어부순 그분의 약함의 역설을 배워가리라.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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