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함의 유혹 동문선 현대신서 24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읽히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

번역이 전반적으로 무난하다고 생각하지만 세부적으로 정교한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131쪽 '영광스런 30명의 여인들'은 무엇일까? 갑자기 웬 뜬금없이 여인들?

프랑스에선 전후 30년 동안의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른다.

즉 -년이라는 욕설을 친절하게 여인이라고 교정해 준 것이다. 솔직히 이런 구절을

볼 때마다 번역자에 대해 신뢰가 감소하므로 출판사는 좀더 신경을 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저자에게 궁금한 점.

세르비아에 대한 '과격한' 공격은 정당한가. 오히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이슬람교도 집단과

홍보 회사들, 오스트리아, 독일, 아메리카, 국제연합과 유고전법재판소 등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를 비호하기 위한 이들의 희생화 경향을 저자께서 몸소 체현하고 계신 건 아니신가.

바보들의 십자군에 합류해서 단단히 일익을 담당하는 저자의 모습?  언론의 악의적인 또는

'순진한' 왜곡 보도가 문제로 떠오르는 마당에 아마 저자는 난처하거나 낯간지러울 것이다.

===허나 내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무책임하게도 일단 유보다.

저자의 폭언과 냉혹한 (또는 순진한) 장담을 정당화하려면 상당한 '견적'이 필요할 것인데 나중으로

미루자. 어쨌든 나토의 유고 '침공'을 성스러운 몰이사냥으로 떠받드는 저자에 대한 불편함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나토 개입 전에 썼다.) 세르비아가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세르비아의 희생화 경향에 융단폭격을 가하지만, 정작 서방 언론계에서 떠들썩하게 보도한

바는 그 역, 즉 보스니아의 이슬람계와 코소해방군과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등의 희생이었다.

주류 언론계에서 세르비아의 희생을 다루는 기사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몇몇 좌파 계열의 잡지류

에서만 나토의 개입을 반대하며 세르비아의 '못지않은' 참상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쪽은 전문가가 밝혀야 할 문제인 듯하다. 나의 주제넘은 참견이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이 책은 '니체'적인 것 같은데 니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수 배운 대목도

있었다. 그것은 '개인주의'의 최대 완성이다. 니체의 개인주의에 윤리적인 색채를 입히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고 게다가 그람시와의 접점을 마련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서 기쁘다.

따라서 반가우면서도 고마운 책이었다. 찜찜함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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