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서울셀렉션 시인선 1
류미야 지음 / 서울셀렉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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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만할 것들은

언제나 곁에 있고, 있었다.

우리가 늘 잊고 또 잊었을 뿐.

시인의 말 중에서

삶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변화하는 계절, 떠나가는 소중한 사람들, 어느새 삶의 풍경이 바뀌고 낯선 얼굴을 하고 있는 도시. 시인의 시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하나같이 한 박자가 늦는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깨닫는 순간이 늦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인이 깨달았을 때 삶의 아름다운 빛은 이미 사라진 뒤다. 시인의 시가 슬프고 서늘한 이유다.

잊혀진 삶의 풍경들은 슬픔에 이웃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절망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눈물에 부옇게 흐려진 세상은 이미 번진 뒤다. 이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우리는 섬세한 감각으로 안간힘을 쓰듯이 세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정말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맞을까? 슬픔과 절망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니, 도태되는 삶에 아름다움에 숨어 있다니, 저자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순수한지 모른다. 되려 그런 작가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작가의 삶일지 모른다.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혹은 한자리에서 잊히기나 하는지요

날리는 저 꽃잎들 다 겨울의 유서인데요

그래서 늦는 것들 중에서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이름까지도 시인 같은 류미야 시인의 시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의 문장들이 그렇다. 시인의 시 섬세하면서 서늘하다.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늦고, 흩날리는 꽃잎들은 겨울의 유서라고 표현하는 시. 삶이라는 아름다운 '매혹'과 죽음의 '탐미'가 경계를 두고 치열한 눈치 싸움을 하는 듯 보인다.

나는 눈물이 싫어 물고기가 되었네

폐부를 찌른들 범람할 수 없으니

슬픔의 거친 풍랑도 날 삼키지 못하리

물고기자리 중에서

눈물이 싫어 눈물과 같은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기로 선택한 삶. 이미 물이 가득 차 눈물을 범람할 수 없다. 어떤 슬픔의 풍랑에도 삼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는 이미 슬픔에 침잠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시를 들여다볼수록 생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차오른다. 물고기의 생을 택한 화자의 선택이 실패했거나, 실패할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은 고해(苦海)라든가 마음이 쉬 밀물지는 내가 물고기였던 증거는 넘치지만, 슬픔에 익사 않으려면 자주 울어야 했네

결국 슬픔에 잠기지 않으려 물고기가 된 시의 화자는 슬픔에 익사되지 않기 위해 자주 울었다 표현한다.

먼지 풀썩거리며 살비듬이나 털다 가는

이 생에서 스스로 눈물마저 도려내면

예언은 실현되는 것,

나는 울어야 한다

마른 땅 휘적시는 몇 방울 이슬처럼

갈증의 한나절에 반역하기 위하여

냉담과 눈먼 증오를 애도하기 위하여는,

눈물점 중에서

시인의 시는 하나같이 슬퍼야 하는지 모르겠다. 눈 아래 있는 눈물점 때문일까? 시인의 눈물점은, 운다는 행위는 삶의 냉담과 눈먼 증오를 애도하는 하나의 절차다.

울음이 하나의 절차라니, 시의 화자가 애도하는 냉담과 눈먼 증오는 대체 무엇일까. 차가워진 도시의 풍경, 떠나간 지인들, 세상에 무덤덤해진 나. 삶의 즐거움과 감동을 잃어버린 나를 대신해 누군가 울어준다니, 시인의 시가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제의에 가깝고 눈물을 통해 삶을 다시금 정화되는 느낌이다. 운다는 행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이 시는 편안한 문장과 아름다운 시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숨겨진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도 않는다. 말랑말랑한 인스타 감성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시가 품고 있는 근원, 시인이 보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애절한 노력은 눈길을 끈다. 취향이 맞는다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한 그리움을 전달해 줄 시집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4278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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