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는 하나같이 슬퍼야 하는지 모르겠다. 눈 아래 있는 눈물점 때문일까? 시인의 눈물점은, 운다는 행위는 삶의 냉담과 눈먼 증오를 애도하는 하나의 절차다.
울음이 하나의 절차라니, 시의 화자가 애도하는 냉담과 눈먼 증오는 대체 무엇일까. 차가워진 도시의 풍경, 떠나간 지인들, 세상에 무덤덤해진 나. 삶의 즐거움과 감동을 잃어버린 나를 대신해 누군가 울어준다니, 시인의 시가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제의에 가깝고 눈물을 통해 삶을 다시금 정화되는 느낌이다. 운다는 행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이 시는 편안한 문장과 아름다운 시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숨겨진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도 않는다. 말랑말랑한 인스타 감성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시가 품고 있는 근원, 시인이 보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애절한 노력은 눈길을 끈다. 취향이 맞는다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한 그리움을 전달해 줄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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