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독립운동 열전 1~2 - 전2권 독립운동 열전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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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부터 독립운동가들을 다룬 위인전을 즐겨 읽었고 한국독립운동사를 포함한 한국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중고등학생이 된 이래 한국사 교과서에서 낯선 존재를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독립운동사의 절반이라고 여겨지는,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상인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이었다. 한국사 교과서가 역사학계의 연구 동향과 성과를 일부라도 담아낸 것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른들의 영향으로 강고한 반공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위인전에서 접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만을 접해온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위인전에서 벗어나 역사 서적을 탐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1960~1970년대 국가 주도 우익 편향 독립운동사에서 벗어나 1987년 민주화를 전후해 역사학계의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전복하고 한국인이 주인 되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의 총집합인 민족해방운동사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최근에 나온 독립운동 열전1, 2권은 바로 이러한 학계의 연구 동향과 성과를 있는 그대로 대중이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사, 특히 한국 사회주의운동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서문에서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을 독립운동사에서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밝혔다또한, 기존 독립운동사 서술이 영웅 서사에 매몰된 나머지 생동감을 잃어버렸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기존에 이름이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보다는 정의에 헌신했으되 잊혀져 버린 이름없는 투사들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자식들, 남편 없이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아내들, 자식을 잃은 노부모의 이야기에 주목하겠노라고, 민중 서사를 추구하겠노라고 밝혔다. 이 책의 1에서는 사건을 중심으로, 2에서는 인물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서술하고 있으나, 두 권 모두 이러한 점들이 잘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의열단의 의열투쟁이나 조선공산당의 대중투쟁과 지하운동을 사료에 기반해서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 현장에서 목도하는 느낌을 준다. 그동안 실종되었다고만 알려졌던 의열단원 김익상의 최후, 영화 <밀정>에서 다뤄진 의열단 사건이 의열단뿐만 아니라 이시파 고려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일명 내지당, 중립당)이 함께 벌인 거사였다는 이야기 등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라 흥미롭다. 3.1운동을 전후한 시기 러시아 지역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서구나 일본과 같은 노동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흐름이 아니라 반제 민족해방운동의 가장 적극적인 흐름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사회주의운동 개척자들의 이야기, 식민지 조선이라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투쟁을 이어갔던 조선공산당 지도자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또한, 6.10만세운동이나 대표적인 민족협동전선운동인 신간회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에 있어서도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사회주의운동의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새롭게 알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서문에서는 “3.1운동과 세계 대공황기 혁명운동과 같은 독립투쟁의 일대 고조기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고, 분명 세계 대공황기인 1930년대의 사회주의운동도 일부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3.1운동 이후, 1920년대의 사회주의운동을 다루고 있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1930년대에도 국내에서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된 적색노동조합·적색농민조합운동이, 중국 동북 지역에서는 중국 공산당 계열 항일유격대인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 내 조선인 부대의 무장투쟁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한, 1940년대 중국 화북 지역에서 중국 공산당과 함께 무장투쟁을 벌였던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의 활약도 있었다. 이러한 1930~1940년대 사회주의운동을 다룬 비중이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을 다룬 비중보다 너무 적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의 1권과 2권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들은 3권을 계획하면서 다룰 수도 있는 것이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역작의 후속작을 기대할 따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역사는 역사로서 정당하게 평가해야지, 정치적 주관을 앞세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늘날 학계의 독립운동사 서술, 연구 동향과 성과는 해방 이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과 6.25전쟁, 극단적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독재정권하에서 강요되었던 국가 주도 우익 편향 독립운동사를 탈피해 1987년 민주화 이래 식민지 지배체제를 전복하고 한국인이 주인 되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의 총집합인 민족해방운동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얼마 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당시에 벌어졌던 극우세력의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색깔 공세 등 사회주의운동을 독립운동사에서 축소하거나 배제하려고 하는 흐름이 여전히 존재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그동안 억울하게 배제되어 왔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이 되었고 최근에는 해방 이후 사회주의운동 경력과 별개로 식민지시대 독립운동 경력 자체를 기준으로 삼아 서훈 범위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 정부 수립에 참가한 경우에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테러와 암살이 난무했던 해방정국 당시 월북하여 북한 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나 결국 숙청을 당한 독립운동가들은 남한과 북한 양쪽으로부터 버림 받은 채 방치되어 있다. 


해방 이후의 역사적 맥락인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잣대, 정치 논리를 앞세워서 해방 이전인 식민지시대 독립운동 경력을 재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인 것이다. 해방 이후 월북을 해 북한 정부 수립에 참가한 사실을 두고 독립유공자 서훈 논란이 있었던 김원봉과 같은 경우뿐만이 아니다. (- 심지어 김원봉도 해방공간에서 악질 친일 경찰 출신 노덕술에게 체포되는 모욕을 당하고, 뜻을 같이했던 여운형이 벌건 대낮에 백색테러로 숨지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월북을 한 것이 아니었던가) 해방 이후 미군정하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운동을 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숨진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나 6.25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학살로 목숨을 잃은 광주학생운동의 지도자 장재성, 일제 치하 전설적인 혁명가 이관술 등은 어떠한가. 최근 들어 해방 이후 사회주의운동 경력이 있더라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할 수 있도록 그 범위가 확대되었지만, 이들은 독립운동사에 있어서의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거나 서훈을 받았더라도 일부 극우세력에 의해 독립유공자가 아닌 '빨갱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렇게 해방 이후의 이념적 잣대, 정치 논리를 식민지시대 독립운동에 들이대며 멋대로 재단하는 태도는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나는 정치적 신념으로 본다면 안창호 선생, 김규식 박사, 조만식 선생, 최능진 선생, 장준하 선생을 존경하고 기독교유학/유교, 공동체주의, 정치적 민주주의, 반공주의, 사회적 시장경제, 우리 공동체의 전통관습,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정치적 주관을 앞세워 재단해서는 안 되며 역사를 역사로서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또한, 우리가 반쪽짜리 독립’에 불과한 분단을 극복하고 독립운동가들이 바랐던 진정한 독립인 통일을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뤄내는 과업에 있어서도 역사를 역사로서 정당하게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주의운동은 정당하게 평가 받아야 마땅하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식민지시대 독립운동 경력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 공동체의 해방을 위해서, 우리 공동체 성원들이 주인 되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했던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우리 공동체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린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고, 또 이 말이 실체가 있는 말이다 보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립운동가 김익상이 동지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 "딸을 공부시켜 여성 혁명가가 되도록 교도하기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유언을 이행해야 할 사람은 이제 의열단장 김원봉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해방된 세상에 살고 있는 공동체 성원들이 마땅히 지키고 이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다."


백 번, 천 번, 만 번, 아니 그 이상으로 지당한 말이다. 이러한 기본 중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대체 그 누가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우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을 위해서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작년 3.1절과 광복절에도 독립유공자 후손 가운데 상당수가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오늘날 우리 공동체 성원들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겪고 있는 가난을 결코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일'로 생각하고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책임져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너무나 불명예스럽고 부끄러운 그 말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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