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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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존재들이다. 주어진 삶의 여정 속을 걷는다. 때로는 묵묵하게, 때로는 포효하기도 하면서 운명이 내 편이기를, 내가 원하고 상상하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싯다르타, 2022년 새해  첫날 주문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이 주는 단단한 믿음이 아니어도 무엇인가 삶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싯다르타가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인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싯다르타는 유복한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했고 즐거움이 그의 원천이 되지도 못했다. 싯다르타는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이 영원토록 자신을 행복하게 하여 주시도, 자신을 달래주지도, 흡족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만족시켜주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 존재의 내면 속에 삼라만상과 하나이자 불멸의 존재인 아트만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온갖 번뇌로부터 자신을 비우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신을 초탈하는 상태의 경지에서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은 것이 목표였다. 
 
그는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의 길을 걷는다. 사문 생활을 하며 명상을 하고 고통과 굶주림을 극복함으로써 자기 초탈의 길을 간다. 그러나 그 길 또한 자아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사문 생활을 하던 중 그는 세상의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킨 부처 고타마의 소문을 듣게 되고 마침내 고타마를 만나게 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으며 고타마를 떠난다. 
 
그는 세상으로 나와 기생 카밀라에게서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재산도 얻고 권력도 얻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빠져 들어가 있음을 깨닫고 또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생명의 근원인 강에 이르러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생활하며 온전한 평화에 이르는 길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은 외부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완성의 길은 외부의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체험, 삶을 온전히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이를 수 있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사건의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생명의 음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싯타르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이 강에, 이 수천 가지 소리에 어우러진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가 고통의 소리에도 웃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 두거나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 소리를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싯다르타 196페이지) 
 
완성의 의미 옴은 모든 것은 온전히 수용하였을 때에 우리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소리다. 싯다르타가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일도, 고민하는 일도 그만 두었을때 그는 온전한 평화에 이르렀다. 자신의 운명을 상상하고 그 방향으로 끌고 가려 안간힘을 쓰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화를 염원하고 깨달음과 해탈을 염원한다. 주어진 삶과 대립할 때 평화는 우리에게서 멀리 도망가 버린다. 갈등과 분노와 괴로움이 그 곳에서 일어선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싯다르타'의 싯다르타처럼 우리는 자기완성을 염원하며 살아간다. 그 해답이 결코 자신의 외부에 있지 않음을 가르쳐 준 책이다. 내 삶의 이정표는 결국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한다. 가볍고 얄팍한 확신이라 작은 바람에도 또다시 흔들릴지라도 다시 알아차리면 된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해로 계획을 세운다. 그 중심에 '내가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싯다르타는 자기완성을 위해 스스로 나아갔지만 아직은 싯타르다도 부처 고타마도 작가 헤르만 헤세도 곁에 두고 싶은 영적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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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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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세월'이란 단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 쉼 없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 누구에게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세월을 따라 흐른다. 그 유장한 흐름이 삶이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개인의 서사이고, 가족의 서사이며, 프랑스의 서사이고, 유럽의 서사인 동시에 세계의, 인간 보편의 서사다.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반칙이다. 그녀의 기억은 집요하고 촘촘하다. 사라지지도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때로 장중한 오케스트라 같고, 때로는 가족 음악회 같으며, 때로는 허밍 같다. 이 책은 '그녀'의 기억이고 '우리'의 기억이며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 속에 전쟁과 테러와 삶을 위한 투쟁이 함께 흐른다. 사랑이 있고 이별도 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 모든 과정의 경험들은 개인의 기억에 각인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자신의 생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사람살이는 시대와 시간을 넘어서있다. 이런 자연적인 순리가 왜 우리를 슬프게 할까? '퐁투아즈 요양원 현관에서 오후 내내 잠옷과 슬리퍼를 신고, 방문객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더러운 종이를 내밀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며 울던 남자' 책의 마지막 장 그 남자가 '그'이거나 '그녀'이거나 '우리'이거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울게 된다. 우리들의 부모 혹은 우리의 모습일지 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다. 책을 덮으며 느꼈던 쓸쓸함과 애잔함은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많은 문장에 줄을 그었다. '세월'을 세상에 남겨놓은 그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럽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연말연시다. 그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부산스러운 시기, 이 책은 추억을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그 시간 속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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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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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무서운 단어다. 전쟁을 본 사람, 들은 사람, 겪은 사람 모두에게. 대다수의 사람에게 전쟁은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 또한 많은 전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듣는 행위만으로도 심장이 덜컥거려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

전쟁을 본 사람, 겪은 사람들의 공포와 고통을 생각한다.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고, 그 전쟁의 공포를 고스란히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로만 처리된 수많은 죽음들의 삶과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

전쟁을 이유와 명분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그 이유와 명분이라는 것 또한 인간의 과도한 욕망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단테의 신곡을 생각했다. 전쟁의 주범들, 그들은 어떤 벌을 받게 될까? 설사 그들이 어떤 벌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가족을 잃었거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기나 할까?

세계는 평화를 외치고 공존을 외치고 있고, 전쟁을 막기 위한 여러 노력들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리 앞에서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누군가의 목숨은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간과하는 것 같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지금도 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냥, 미안하다. 전쟁은 끝나도, 전쟁이 남긴 상처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끝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신을 등에 업고, 명분을 등에 업고 신의 뜻인 냥, 정의의 실현인 냥 행세할 뿐이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힘을 갖기를 소망하는 자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평화와 공존이다.다. 민족과 종교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인류애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도.

이 책이 들려 준 수많은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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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계 -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고 나만의 설계도를 만드는 법
론 프리드먼 지음, 이수경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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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계/ 론 프리드먼 지음, 이수경 옮김/ 어크로스

역설계란 배우고자 하는 대상을 체계적으로 분해해 탁월함의 비밀을 알아내고 중요한 통찰을 뽑아내는, 즉 성공의 패턴을 발견하는 접근법이다. 작가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는지, 그들이 어떤 역설계를 사용했는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작가의 글에 신뢰하게 되고, 작가가 제시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도 그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던 대로 살고 하던 일을 하고 산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준다.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에 대한 시도 대신에 편안함을 선택하며 현실에 안주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대신에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패턴이다. 성공한 이들은 이런 패턴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이들이다.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성장을 갈망한다.

이 책은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유튜브에는 성공과 성취에 대한 방법론들이 넘친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통해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고 개인의 신념과 행동의 문제다.

성공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에 다가서기 위해서 행동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계획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꾸준함과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1. 수집가가 돼라
2. 차이를 발견하라
3. 설계도를 뽑아내라
4. 모방하지 말고 한 단계 더 나아가라
5. 비전과 능력의 격차를 받아들여라
6. 당신만의 점수판을 만들어라
7. 리스크를 최소화하라
8. 편안함을 경계하라
9. 미래와 과거를 이용하라
10. 똑똑하게 질문하라

저자가 제시한 성취를 위한 방법들이다. 이 방법들을 다 실천할 수는 없다. 저마다의 환경은 개별적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성공으로 이끈 방법이 반드시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성공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제대로 아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모른다. 성공은 생각을 바꾸고, 작은 행동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새긴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 중 실천 중인 것이 하나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이 책에 제시된 방법 중 하나를 실천하자 결심했다.

변화에 대한 기대도 많고 결심도 많은, 그럴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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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4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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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만나다-『성』

『성』은 카프카의 대표작으로, 마지막 장편소설이며, 미완성작으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답답함을 느꼈다.

토지 측량사 K가 한 마을에 도착해 성과 성의 관청으로부터 자신의 직업과 개인적 삶을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다. 그러나 K는 결국 성에 이르지 못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아니 처음 투쟁을 시작한 지점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K는 ‘토지측량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인정받고자 성에 이르고자 하나, 성으로 가는 길이 여러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성에 이르려는 K의 의도는 무산되고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더구나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외지인’ 임을 상기시키며 K에게 배타적이다. 더구나 K의 행위가 무모한 짓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제안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성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에 존재한다. 성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K뿐만이 아니다. 성과 성의 관리들은 마을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외경의 대상이며, 성의 체제와 위계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굴복의 대상이다. 때문에 마을 축제에서 성 관리의 추잡한 구애를 거절한 아말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경멸의 대상이며 배척의 대상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K가 이르고자 한, 마을 사람들에게 외경의 대상인 성의 실체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때문에 성은 종교적 해석, 실존주의적 해석, 정신분석학적 해석, 사회학적 해석 등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며,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결말을 묻는 막스 브로트의 질문에 카프카는 “K가 기력이 다해 죽는 것으로 계획되었고,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K는 죽기 직전에 성의 관리로부터 마을에 살기를 원하는 K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의 정황을 고려해 여기 머물며 일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라고 밝혔다 한다.  K의 죽음에서 ‘변신’의 그레고르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좌절되자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결말, 그의 전지적 생애와 흡사해 K가 카프카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성에 이르고자 한 K의 의지가 번번이 실패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버리는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행위를 포기하지 않았던 K, K의 답답함이 내게 전이됐다. K에게 성은 넘사벽의 존재였다. 그렇다면 카프카에게 그 성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프라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다수가 체코어를 사용했고, 독일어 사용자는 소소였고,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카프카는 그 극소수에 포함되었다. 그는 다수의 체코인에 속하지 못했고, 유대인인 까닭에 프라하의 소수 상층부를 형성한 독일인 특권층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의 관심은 문학과 글쓰기였지만, 서구 동화의 길을 걷던 유대인인의 전형이었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을 전공했으며, 아버지와 오래 갈등을 겪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K의 성처럼 넘사벽의 존재였다. 그는 또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지도 못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갔다. 두 번의 약혼을 했지만 파혼을 거듭하며,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카프카는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성’의 마을사람들은 끊임없이 K가 ‘외지인’ 임을 상기시키며, 그에게 배타적이고, 그들의 제안에 수긍할 것을 강요한다. K는 카프카의 분신인 셈이다. 가족의 멸시와 경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레고르나, 성에 이르고자 한 투쟁에서 기력을 다해 죽음에 이르는 K 역시 카프카의 분신이다.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카프카의 전기적 생애가 만들어 낸 그레고르와 K에게서 카프카가 읽힌다. 그의 무기력, 그의 좌절, 그의 절망이 느껴져, K가 카프카 같고 카프카가 K 같았다. 안쓰럽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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