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 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선형 옮김 / 샘터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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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속았다 싶었다. 이 책과의 인연은 알라딘 굿즈를 통해 이 책의 표지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먼저 받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책장 구석에 숨겨져 있던 이 책의 엽서를 먼저 발견했고 몇 달간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이 책을 구매한 데에는 최근의 독서 엔진 가동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도대체 이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잘 읽혀지지도 않는 책이었다. '아, 중고 서적을 산 것이 천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챕터를 향해 지루하게 책읽기를 이어가던 즈음.

알게 된 것 같다. 이 책이 흥미롭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를. 이 책은 그야말로 무심한 소설가의 단상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언어를 빌린다면 나는 어쩌면 이 책과 인연이 도통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방문한 이시가키섬도 공항에서 출발해 호텔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딘가 이상한 곳 같다'였다. 저녁을 지나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되어 아침이 밝아오자 점차 그 '이상하다'라는 감상이 더더욱 짙어져 갔다. ... 이 경우의 '이상함'은 부정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라는 감각이다. ... 그 점이 바로 내가 인연이 없다고 느끼는 곳의 특징이다. p168-169>

내가 두 발을 딛고 서며 호흡하고 눈에 담는 하나의 도시도 그러할진데, 스미고 스며들어 마음의 스폰지에까지 차오르게 되는 문장들을 만나는 경험이란 어쩌면 익숙하고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는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한 인연의 숲을 그냥 밋밋한 감정으로 걸어가다보니 또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무심함의 역설이다.

<마흔 하고도 후반이 되어 취재라는 명목의 볼일을 해내며 마을을 이동하다 보면 문득 젊은 시절의 내가 보이곤 한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포장마차 거리 속을 헤집고 들어가는 내 모습, 택시나 툭툭을 타면 바가지를 쓸까봐 그저 걸어다니기 바빴던 내 모습, 길에서 버스 노선도를 필사적으로 해독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p 214 >

볼일이 있어 인연의 장소를 다시금 방문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걸어왔던 길의 여정들이 보인다. 추억을 다시금 선물해 주는 도시를 다시 만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더구나 그 곳이, 그 마을이, 그 장소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나는 내가 만날 나의 도시들에서 많은 추억의 여정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면 좋겠다. 비록 인연이 없었던 장소라고 할지라도. 낯선 그 길의 중간중간에 내가 사랑했고 또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하게 될 많은 문장들과 음악들과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 어느 곳이 볼일이 없는 곳이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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