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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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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숀 비텔의 <서점 일기>라는 책을 읽었다. 위그타운의 Bookshop에서 2월 초부터 시작되던 서점 이야기는 그 다음해 2월 초에 끝이 났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여름에서 서둘러 찾아온 겨울과 지리하게 이어지는 기나긴 겨울로. 마치 서점과 출판의 공기가 기나긴 겨울의 시린 시간들을 겪어내듯이.

숀 비텔이 그 시린 감정들을 독자들에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서점 일기에서 아주 긴 겨울의 계절을 보았고, 역설적으로 따스한 겨울들도 체험할 수 있었다. 보는 내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이 되뇌어졌으니까.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서점의 365일을 따라 가며 내 마음도 위그 타운의 봄, 여름 그리고 겨울을 따라 갔다. 난방을 아무리 해도 데워지지 않을 것 같은 추운 서점의 겨울 기운은 일기를 읽고 있는 내게도 영국의 특별한 스산한 기운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보다는 스산하고 비가 오는 날들이 많은 서점의 시간들이었지만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적어도 서점 일기 속의 서점상인 숀 비텔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므로.

책을 다 읽고 위그타운 북 숍을 검색하여 이 책의 원작인 "The Diary of a Bookseller"를 북샵에서 주문한 후 Bookseller이자 이 책의 저자인 숀 비텔에게 메일을 보냈다. 위트 넘치고, 솔직하며,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당신의 책이 너무 마음에 들었노라고(순도 백 퍼센트의 나의 마음이 영어로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번역 능력이 미천하여...).

좋은 책을 만나면, 인생의 문장들을 스쳐 지나가게 되면 그 책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게 된다. 번역된 멋진 책을 접하였다면 원서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게 된다. 숀 비텔이 'I don't like my writing style similar to a teenage boy.'라고 말한 그 서툰 십대 소년같은 글 스타일이 과연 날 것 그대로 어떤 느낌이었는지 직접 체험하고 싶어지게 된 것이다.

오늘 아침 난 깨닫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가 우연히 만난 저 먼 Wigtown의 Bookshop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책의 세계에 한 발 더 내딛어 걸어갔듯, 누군가에게 멋지고 신비로운 매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하민이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들 수 있는 원석같은 사람. 그 인생 가운데 하민이의 책 속으로 걸어 들어와, 진정한 문장들을 판독해낼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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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들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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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잠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됩니다. 그 말은 곧, 불가능한 것을 실현시키려 애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사람은 어차피 잠들지 못합니다(그런데 신은 심지어 꿈도 없는 잠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잠들지 못하면서 머릿속으로 일에 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밤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깨어 있는 밤과 불면의 밤. 당신에게 이 밤들에 대해서 자세히 쓰려고 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듣고자 한다면, 나는 영영 이 편지를 끝내지 못할 겁니다." p149

매일매일의 삶이 잠을 위한 싸움이었던 카프카.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찾아오는 환상과도 같던 꿈들은 그의 편지와 실제적인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의 불면이 아니었던들 변신의 그레고르가, 소송의 요제프 k가 탄생될 수 있었을까. 이쯤되면 꿈과 환상, 환상과 현실이 모호하듯 모든 것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아니, 의미없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불면과 불면에서 기인한 불안함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바뀌어 버리는 그레고르를 탄생시켰나, 아니면 세상 속에 태어나버린 괴물이 그를 지속적으로 억압하여 불면의 밤을 만들었던 것인가.

어쩌면 반쯤 잠이 든 듯, 들지 않은 것 같은 불면의 밤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맞대어 둔 두 면을 풀로 붙여 두듯이 어쩌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결국은 같은 면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었을 때 전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두려워 우리는 때로 불면의 밤들을 선택하곤 하지 않았던가. 꿈과 현실이 온전히 반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는다는 모호함은 종종 우리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 날카로운 경계에 계속 서 있고자 할 때 삶은 위태로워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것. 두려움에 맞서는 것. 어제의 그 태양이 오늘 또한 또 다른 찬란한 빛으로 우리에게 비추일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바로 그 때 나약한 인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을 청할 수 있게 된다.

카프카의 불면의 밤이 아니었던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었겠지만,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버텨 가느라 한낮의 몽상도, 한밤의 달디단 꿈의 대화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던 작가의 모습이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영면한 카프카는 영원한 잠의 '꿈' 속에서 평안히 휴식할 수 있기를...

- 2020.12.28.
때론 모든 것이 꿈이길,
때론 모든 꿈들이 현실이길 바라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꿈'을 살아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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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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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제이는 앨리스 섬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배우자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은 중년의 남자이다. 그 서점에 어느 날 한 젊은 여성(미혼모)이 두 살된 아이를 두고 가면서 그의 삶은 우연처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데... 삶은 때로 흰 블라우스 위에 실수로 엎질러지는 커피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상처)들을 개개인의 삶에 남겨놓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 얼룩이 언제나 새로운 삶의 무늬를 만들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 속 불변의 진리는 <섬에 있는 서점>이라는 제목처럼, 인간은 때로 섬처럼 외롭지만 섬 안의 서점처럼 무수한 인생을 만나는 삶의 과정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 한 편의 책을 읽듯이.

초등학생 아들을 둔 부모로서 종종 마음 속으로 아들과 대화를 하듯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은데 에이제이가 그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존재인 딸 '마야'에게 편지 형식으로 단편소설을 추천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에이제이가 언급했듯이 어쩌면 우리 삶은 때때로 장편보다는 단편 아니 단편집에 가까울 때가 많지 않을까 한다. 단편집 속 모든 작품이 다 완벽한 구성과 인기를 끌만한 흡인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형편이 없고, 어떤 작품은 주목받을만 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모든 작품들이 동일한 작가가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 지루한 작품을 읽을 줄도, 마음을 별로 감동시키게 하지 못하는 작품을 읽어내려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편집은 인생을 닮았다. 입양된 딸인 마야에게 단편소설을 추천하며 글을 써 내려간 형식이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하민이에게 은유적으로 책을 소개하며 삶의 지혜를 충고해 주는 노트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먼 훗날 언젠가 하민이가 볼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 p304

결국 희귀한 암에 걸린 에이제이는 이 말을 마야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들려지는 언어로 전달되지 못했던 이 말은 그러나 분명 마야에게 에이제이를 추억하는 어느 날 어렴풋이 가슴으로 전달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사랑, 행복, 희망의 축복 안에서 아름다운 사람되거라.' 라는 장영희 교수님이 남겨주신 짧은 메세지 속에서 삶을 관통하는 묵직한 진리들을 매순간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다시금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바로 '나'에 다름 아니므로.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숨을 거둔 이후에도 오랫동안 진정 살아남게 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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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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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부터 온수 공급과 난방이 중단된다는 상의하달식 일방적 통보에 재빨리 씻고 나왔다. 머리를 말리고 <섬에 있는 서점>을 들고 거실로 나와 책상에 앉았다. 책제목, 책표지 그리고 첫번째 챕터부터 마음에 든다. 이 책은 꼭꼭 씹어 내려갈 것이다. 앨리스 섬에서 서점을 자기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운영해 가고 있는 에이제이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볼 생각이다. 말을 툭툭 까딸스럽게 던져대는 이 인물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까다로움 속에 외로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물의 모난 성격을 네모난 각설탕으로 만들어 뜨거운 인스턴트 블랙커피에 무심한 듯 던져 녹여 낸다면 그 커피를 마신 사람은 자신이 약을 먹은거라고 놀랄지도 모른다. 코 끝은 찡해지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질 수도 있으니. 그 별 것 아닌 모난 설탕에 인생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녹아 들었을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내 니콜을 잃고 경찰관과 나누는 대사에서는 횡설수설한 이 에이제이라는 주인공에 직진하여 빠져들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내던질 수 있는 피칭. 툭툭 던지는데 전부 스트라이크이다.

"처형 내외가 곧 오겠군요. 아까 당신더러 '별 중요하지도 않은 조연'이라고 말한 거 사과드립니다. 무례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렘비에이스 경관님의 웅장한 대하소설에서는 나야말로 '별 중요하지도 않은 조연'인 데 말입니다. 책방 주인보다야 경찰관이 더 주인공에게 어울리죠. 당신은 이미 하나의 장르인데." (p38)

아~! 하민이가 언젠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좋겠다. 훌쩍 커버린 어느 날 책장에 꽂힌 이 책의 첫 챕터를 읽어 내려가며 옛 시간을 회상할 수 있다면. 그 회상에 조연으로나마 내가 등장할 수 있다면... 에이제이처럼 하민이에게 말을 건네본다.
"하민아, 네가 때로 실수한다고 해도 너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 그리고 너는 이미 하나의 장르란다."

2020. 11.05.
난방은 끊겨도
설탕을 넣은 커피는 따뜻할 것 같은 아침, sp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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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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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내가 눈 먼 자들의 도시에 살게 된다면 나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홀로 눈 뜬채 목도해야 하는 유일한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모든 걸 맡겨버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눈 먼자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빨리 소리쳐 빠져나오고 싶은 꿈처럼 주제 사라마구의 초현실적 리얼리즘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 내려가기가 버거웠다. 소설 속 세계가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라는 철학적인 명제 근처를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면, 나는 '볼 수 있는 제한적인 시간 속에 나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속에 아주 자주 책을 덮었다. 당장 내일 눈이 멀게 될 운명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이 책은 읽고 싶지 않았다. 보다 희망적이고, 비끼어 가는 빛이 얼굴을 수줍게 간지럽힐 것 같은 따스함이 묻어나는 책을 그 마지막 시간에 읽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보는 것을 주제로 삼아 수많은 것들을 나열했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우울한 책으로 남았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윽고 의사의 아내는 계속 장님인 척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설사 전에는 있었다 해도, 지금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명은 또 이런 것,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p29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 멀지 않은 자의 희생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실명이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단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눈뜨고 있는 자,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대단히 희망적이다. 그리고 어느덧 그 희망과 따스함은 보지 못하는 눈 먼 이들에게까지 잔잔히 스며들지 않는가? 두 손을 맞잡거나 한 줄로 이어지는 인간 띠 속에서 어떠한 인간을 짓밟는 탄환도,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폭력도 희화된 코메디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눈먼 깡패들이 있는 병실과 대치되던 장면에서는 어떤 고결함까지도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수없이 갈무리해 둔 많은 문장들을 뒤로 하고 기억이 나는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세 여성의 베란다에서의 비 샤워 Scene이다. 그 장면을 읽어내려갈 때는 악취나는 눈 먼 자들의 도시 속에서 맨살 위에 살포시 어리우는 비누향이 풍겨나는 것 같았다. 보는 것, 듣는 것 그리고 우리 삶 속에 느껴지는 향기에 이르기까지 공감각적인 심상을 상당히 은유적으로, 만연체의 방식을 빌어 구현해 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의 눈은 늘 영혼을 담을 수 없을지라도, 나의 귀는 늘 누군가에게 향하여 있고, 나의 행동에서는 은은한 비누향이 풍겨지길. 그것이 바로 눈 먼 자들이 가득한 세계 속에서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일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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