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교수의 산문집.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책 제목에, 재밌는 칼럼을 쓴다고 들어보았던 저자의 이름이라 관심이 갔다. 소장할 책을 고르기 위해 교보문고에서 책을 조금 읽어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되었다. 기미로 읽던 부분은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는 칼럼이었다. 마침 연말이기도 했고,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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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1분이 60초라는 것도, 한 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며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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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전체가 옮겨적고 싶은 좋은 문장들로 가득차있다. 그래서 따로 옮겨적지 않는다. 책은 크게 일상에서/학교에서/사회에서/영화에서/대화에서, 5개 챕터로 나뉘어있는데 제일 앞 부분인 ‘일상에서’ 챕터의 글들이 재밌고 공감이 많이 됐다. 문장 하나하나가 위트있고 통찰력있고, 그러면서도 저자가 강조하는 ‘리듬감’이 살아있어서 읽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챕터별로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사회에서’는 한국 현대사/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짚어내는 부분도 있어서 무거움을 느꼈고, ‘영화에서’는 취향에 맞지 않아 스킵했다. 그치만 다음에도 꺼내보고 싶을, 즐거운 산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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