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박소연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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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중간관리자의 역할에서, 상사님이 추천해준 책. 회사 일이 일생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더 확실히 잘하겠다는 목표와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 이 책을 보며 깨닫는 바가 있었다.


2. 마음에 남는 문구들:


57p 우리의 뇌는 복잡한 걸 싫어합니다. 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습니다. 남는 건 꽉 찬 스케쥴과 피곤한 몸 뿐입니다.


110p 우리의 몸과 마음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충실히 따릅니다. 외부의 힘이 없는 한 그저 가만히 있고 싶어 합니다. 기획서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해서 움직이려면 단순하고 게으른 뇌를 흔들 만큼 매력적인 힘이 존재해야 합니다. 머리에 꽂히는 강렬한 컨셉처럼 말이에요.


118p 일상의 업무를 펼치고, 쪼개고, 새로 네이밍한 후, 재구성해 봅시다. 그리고 대상, 공간 프로세스, 목적 등을 살짝 비틀면 새로운 사업계획이 됩니다. 원래 완벽히 새로운 기획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125p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면 불안한 마음에 자꾸 업무를 추가합니다. 자신의 상황판을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좌표를 해석하는 습관을 지니세요. 


131p 좁쌀 서 말보다 호박 한 개가 낫습니다. 호박 한 개에 해당하는 자신의 브랜드 사업을 기획해야 합니다. 이력서에 적을만한 굵직한 기획이어야 비로소 커리어가 됩니다. 


153p 평소 '전체 요약 + 소제목별 요약 한 줄'로 보고서를 쓴다면 보고할 때도 이 요약만 읽으면 충분합니다.


195p 동일한 단어를 보고 완전히 동일한 뜻을 떠올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을 '기호의 임의성'이라고 합니다. "사과 같은 얼굴"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특정 동요를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머릿속과 똑같이 해석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자주 화를 냅니다. 


210p '자기도 모르는 걸 시키는 건 비겁하다'...(중략) 

1.상사의 지시사항인데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는 경우  

2. 내가 원하는 방향을 아직 생각 안 해본 경우


213p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아니오. 모릅니다." 지시할 때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명해줍시다. 지시하는 사람이 5분 더 쓰면, 실행하는 사람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직급이 높을수록 시간이 비싸진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원의 시간을 흥청망청 써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218p 두괄실 보고를 적용한 강팀장의 보고

결론을 포함한 도입부->결론->성과 어필


221p 기-승-전-결을 모두 갖춰 이야기하면 상대방은 '승'때부터 이미 딴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결론 전의 얘기는 모두 잊어버립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두괄식입니다. 두괄식으로 시작해서 30초 안에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끝내야 합니다.


228p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몰라 에둘러대며 비슷한 답변들만 늘어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질문한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질문한 사람의 입장이 아닌 자기 위주로만 대답하는 습관은 혼선과 오해를 일으킵니다.


241p 숫자1은 누구에게나 1입니다. 하지만 의미는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바뀝니다. 빌게이츠와 우리는 1억 원에 대해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숫자에 해석을 함께 곁들이면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274p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지를 판단하는 '선'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합니다. 


280-281p 상사와 잘 지낼 수 있는 정말 단순한 칩이 있습니다. 상사가 잘 되게 도와주면 됩니다. 그것도 티 나게, 생색내며 말이예요....(중략)그러니 우리는 상사가 자신의 상사에게 칭찬을 받을 사업들을 기획해줍시다...(중략)그리고 윗선에 자랑할 좋은 소식이 있으면 주기적으로 정리해 줍니다. 


297-298p 첫째, 가십 메이커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세요.

(중략) 둘째, 진짜 문제는 얘기하지 마세요.

(중략) 셋째, 잘 보이려 애쓰지 말고, 마음을 오래 공유하지는 마세요. 


3. 오랜만에 리뷰를 쓰려고 알라딘을 열었더니 2007년, 2005년 리뷰가 나온다(그것도 산도르 마라이). 15년 간 나는 무엇이 되었는지 무엇을 쌓아왔는지 당혹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뉴스에 회자되기 시작하는 지인들과 선배들을 보며 나는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 없이 이곳까지 닥쳐오게 되었다. 10년 뒤에는 또 어떤 리뷰를 쓰기 위해 알라딘의 서재를 열고 있을 것인가. 늘 미정의 인생을 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엇인가 되지 못하였다면, 무엇인가가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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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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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래는 ㅂㄹ냥이 추천해준 <사랑>이란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중도에 대출 중이기에 <유언>을 대신 빌렸다. 산도르 마라이의 책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얇고 글씨가 컸다. 뭔가 마음을 가라앉혀줄, 잔잔하고도 깊은 글에 절실히 기대고 싶어하던 차라 얇다는 사실에 아까워하면서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에스터, 라요스는, 정말 개자식이예요.

 

후후, 앙드레는 그를 '악당'이라는 점잖은 지칭을 쓰고 있지만 나는 다 읽고 난 뒤엔 정말 라요스를 이렇게 욕했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곤 언니와 결혼하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가져가놓곤 이제 20여년이 지난 뒤 돌아와서는 그나마 에스터에게 남아 있던 정원과 집을 가져가겠다고? 허나 물질적 사실만 가지고 그를 판단하자는 게 아니라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방법이나 그의 태도가 비겁해서 정말 맘에 안들어. 자신이 에스터의 남은 안식처를 차지하기 위해 에스터에게 과거의 책임 운운한다거나 과거에 쳤던 사기나 거짓말이 사실은 세월에 씻겨나갈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자신을 정당화하잖아.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세상이나 오성보다 더 가혹한 율법이 있다고? 그건 자기가 그 자리서 만들어 낸 것 아냐? 더 화나는 것은, 한때 자신이 정말 진심으로 썼던 과거의 편지를 들먹이는 거야.물론 진심이겠지 자기에게나, 에스터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에파도 그 편지만을 읽음으로써 에스터를 탓하잖아. 하지만 편지를 이용하는 지금에 있어서는 라요스에게 그 진심조차 에스터의 남은 재산을 뺏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덧없다. 적어도 라요스의 말이 거짓인줄 알면서,(정확하게 말하면 진심으로 하는 거짓말)라요스가 어떤 사람인 줄 알면서도 집을 넘겨준 것은 에스터였으니깐. 에스터는 순순하게 매매계약서를 써준다.그리고 '의무를 다했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누누는 모든 걸 이해하고, 에스터에게 따져묻거나 하질 않는다.다만 그날 밤, 에스터 곁에와서 라요스의 편지를 읽어준다. 라요스의 편지의 내용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건 상관없다. 그는 진심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니깐. 그런데 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에스터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전부를 라요스에게 던졌어야만 할까? 에스터뿐만 아니라 누누도 걸려있는 이 집문제에, 왜 누누는 화를 내지 않는 걸까? 라요스는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인데, 모든 걸 당연하게 차지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자신의 삶의 마지막 의무.에스터는 그것이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라요스의 '율법'은  에스터를 마지막으로 깨쳤다. 라요스의 존재란 인간적이기 보단 차라리 비인간적일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인간적인 한계를 갖지 않는 거짓말의 천재인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이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말의 영속성을 전제로 한다. 어떤 말이든 영원한 효력을 지닐 수는 없지만 상대와의 약속 하에 일정한 시간 동안 지켜져야 하는 말이다. 라요스의 말이 뱉어지는 순간에는 자기 뿐만이 아닌 상대를 기쁘게 해줄 의도에서 뱉어진 것들이었기 때문에, 라요스가 '순수하게' 악하다는 사실을 아는 티보르나 에스터, 혹은 누누는 라요스에게 약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에스터, 이제 그녀에게 라요스를 '사랑'한다는 강렬한 감정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녀는 평안하고 아무런 변화없는 삶에서보다는, 거짓투성이인 라요스 곁에서 위험했던 때에 비로소 삻의 한가운데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라요스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기 보단 자신의 삶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라요스에게 무릎을 꿇었다기 보다는 자신을 불살랐던 과거,그 과거를 지니고 있는 전 생을 지배하는 율법- 용감하지 못한 자가 운명에 진 빚은 언젠간 갚게 되어있다는-을 충실히 따랐다. 그녀는 과거의 남은 빚 위에서 무의미한 삶을 꾸려갔던 것이며 그 빚을 갚게 된 때에 비로소 삶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죽음이 두렵게 되지 않았다. 그녀의 죄명은 결국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손안에 움켜쥐지 못했다는 것일까. 그것은 빌마가 훔쳤기에 라요스의 편지가 전달되지 못했다는 장난같은 운명의 어긋남이 있었음에도, 에스터가 라요스가 있는 현실을 외면했음을, 그래서 조용하고 안정된,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나날로 돌아오게 됬음을 탓한다.

 

누누만큼은 아니더라도 에스터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이런건 자신의 마음에 대한 빚인거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오히려 라요스는 에스터의 아버지의 명의로 거짓 어음을 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소설은 라요스의 거짓을 폭로하려고 하지 않는다. 빌마가 라요스의 마지막 편지들을 훔쳤다는 것도 소설의 반전이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 소설에서, 에스터에게 전해지지 못했을 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보다 소설은 라요스가 어떤 사람인지 에스터의 눈으로 길게 보여주고, 에스터와 라요스의 대화를 직접 보여줄 뿐이다. 그에 따른 에스터의 결정-마지막 빚을 갚는다는-은 그 모든 것의 자연스런 귀결, 일의 마무리인듯 예정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는 화가 났다. 단순히 라요스가 생각없는 뻔뻔스런 나쁜놈이라는 걸 떠나 에스터가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의무, 빚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말이다. 마음의 빚이며, 의무같은 것들은 갚아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갚아야 제값을 하는 것이다. 라요스가 에스터에게 돌리는 책임의 반은 라요스 스스로 지는 것이었다. 그는 왜 스스로를 줏대없는 인간,성품이 결여된 자라고 부르면서 에스터에게 그 모든 것을 떠맡기는 것인가?  라요스는 에스터의 마지막 결정에 고마워할 사람도 아니며 그의 마음에 에스터가 차지하는 자리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말로만 평생에 '사랑했던 단 한 사람'.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자신도, 에스터의 방식으로 에스터를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사랑과 배신을 통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책에 대한 옮긴이 및 인터넷 서점의 평이다. 라요스와 같은 독특한 인물을 선과 악이 배제된 시점으로, 또 한여인의 삶을 여과없이 담담한 독백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한다. 그런데 내가 아직 어린건지, 소설이 주는 풍부한 의미를 다 품어내지 못한 건지, 난 에스터같은 사랑-뻔뻔한 상대에게 받치는 완전한 의무-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 이렇게 생각해버렸다. 

 

헌데-한편으론 생은 평안, 조용한 것보다 사랑과 배신,질투와 같이 위험하고 격한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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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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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wandulungen diner EHE 이네요. 저는 프랑스어를 배운다면 밀란씨 소설을 읽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마라이 씨를 만나고선 헝가리어를 읽는 법을 배우고 싶네요.

1부 일롱카ㅡ2부 페터ㅡ3부 유디트-로 목차가 매우 심플하신 이 소설은 모두 대화체로 되어있다. 그런데 대화체라 하기엔 뭣하신게, 각 부에선 그 부의 제목이 된 주인공들 혼자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 뒷모습밖에는 보이지 않는 상대-가끔 '어, 그랬니, 그래서?' 이 정도의 짧은 응수를 해주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주연-를 앞에두고, 화면으로 얼굴이 보이는 인물이 대화하듯이 독백을 이어나가는 느낌이다.(영영이별 영이별이 생각나네)우린 이 소설에서 '독백'(이라 부르겠심. 대화 상대자에 대한 정보가 형식적 측면을 제외하곤 소설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함.연극이었다면 아마 관객을 대화의 상대자로 상정하고 인물들이 독백을 치도록 해야할 텨.)을 통해 사건의 추이와 심리를 본다.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우아하거나, 강하다. 그런 탓으로 주인공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사건과 인물들은 그들의 심리와 감정, 사고와 짜인듯이 맺어져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의 성격적 특성과 함께 농축되어 보여진다.

세명의 인물이 바라보는 곳은 같지 않다. 일롱카가 '페터'를 향하여 그의 온전한 사랑을 바랬다면 페터는 '외로움을 치유할 무언가'를 일롱카와 유디트에게 찾으려고 한다. 유디트는 '페터'를 향했지만 그것은 페터라는 사람이 아닌 페터가 대변하는 세계이다. 이렇게 세명의 인물들이 차례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일롱카에서 페터로, 페터에서 다시 유디트로 이어지는 세계로, 점차 세 사람과의 관계 전체를 조망해나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유디트가 앞의 두 인물을 아우르는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기 보다는, 유디트가 가장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또한 시간의 차이-유디트가 과거로 부터 가장 떨어진 뒷날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결혼의 변화'-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를 겪은 세사람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면으로서 존재하면서 '결혼'이라는 한끈-제도와 삶으로서 양면성을 가진-으로 이어져 있다. 

각 인물의 부제는 각각 '일롱카-열정적 사랑, 페터-용기없는 사랑, 유디트-파괴적 사랑' 이렇게 붙어있는데 이 부제들에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결혼의 변화'라는 제목도 썩 맘에 들진 않는다. 이 책이 '결혼'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이 사랑과 삶과 교집합을 이루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결혼'이란 단어가 내게 지독하게 제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안정적인 틀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자주 껍데기로만 남기도 하기에.) 일롱카의 부제만 괜찮다. 일롱카 편이 제일 읽기 쉽고, 감동받기 쉽다.사랑할 대상을 잃을 위험에 처한 여자의 한결같은 사랑과 분노, 슬픔. 이제 상처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우아한 여자가 친구에게 자신의 지난 8년간의 애처로운 고군분투에 대해 얘기해준다. 일롱카 편만 읽는다면 '결혼의 변화'라는 제목도 꽤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페터 편에서부터는 일롱카가 보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난다.

'계급의 문제'- 일롱카는 단지 유디트가 자신의 남편에게 더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지만 페터와 유디트는 자신들의 문제가 태생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나 페터는 일롱카와 유디트와의 관계를 모두 시민-비시민의 틀로 바라본다. 페터는 자신이 '창조적 시민'이기를 고수했었기에 두 여자를 사랑하는 동안에도 그 틀을 깨지 못하고 다시 외로움으로 돌아간다. 일롱카는 경직된 시민의 틀을 정확하게 고수하며 사는 여자였고, 유디트는 완벽한 시민을 수행해냈으나 자신과의 관계에선 늘 주인을 섬기는 하녀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만약 페터가  일롱카가 주는 사랑의 부담이나 유디트의 경계심을 그의 틀 안에서 수용했더라면 그는 행복했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페터는 자신만의 세계-자신의 지위, 성격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를 포기했어야 했을 것이고,  한없이  불편부당하고 공평한 합리적인 그의 세계는 '사랑'이라는 불공정 거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두여자를 사랑하려는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용기없는 사랑'이라기 보단 '외로운 사람'이 더 부제에 적합하지 않나 싶다.

유디트는 이 셋 중 가장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일롱카보다 더 분명히 자신의 처지-젊은 주인을 사모하는 하녀-를 인식하고 신분의 한계를 깨기위해 교활해졌고 자신이 페터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이용하여 상류계급의 지위를 성취했다. 그러나 그 뒤엔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또한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말없이 지위를 포기한다.그녀는 그런 면에서 가장 자유롭고,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원하는 삶을 획득할 줄 알았다. '파괴적인 사랑' -그녀가 타락시킨 것, 부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오랜 열망에 충실하게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 라자르는 그녀가 페터가 가진 것을 무너뜨리게 할 것을 염려하여 그녀를 페터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그녀는 페터와 같은 위치에 서기 위해 상류층의 모든 것을 습득했다. 영리한 그녀에게 지울 수 없었던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고 다닌 '가난의 기억' 뿐. 유디트는 정식 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무식하진 않았다.그녀는 하녀에서 마님-다시 평범한 여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본디 예리하던 감각으로 전쟁과 인간에 대한 많은 것을 몸으로 배운다. 셋 중 가장 라자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한 것도 유디트였다. 

라자르-그가 유디트의 이야기에서,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 인물의 이야기에 모두 등장하면서 (세 인물과의 관계에 빠짐없이 관계했으면서) 자신의 독백은 없다. 모두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보여진 인물, 다른 인물과 나눈 대화만 있을 뿐이다. 네이버에서 어느 분 감상평을 보니 유디트가 (페터가 아닌) 라자르를 사랑했다는 반전에 놀랐다고 했는데 이건 완전 우스개 소리다. 둘은 연인, 부부, 친구 중 어느 관계도 아니다. 극에서 유일하게 '어떤 단어로 규정되지 않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선지 유디트는 일롱카처럼 '자신의 문제 해결에 어떤 비밀을 쥔 인물',페터처럼 '인생의 증인'이 아닌 라자르 그 자체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 유디트는 라자르와 자기도 모르는 동질감(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페터와는 다른 시민으로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민이 아닌, 자신과도 같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라자르는 작가가 바라보는 '작가'라는 직종의 인물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며, 작가 자신이 작가라는 직종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작가로서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들을 가장 가깝게 드러내 주는 인물이다. 라자르는 현자의 차가움과 현명함을 가진 사람, 시민세계와 가치있는 문화의 종말을 자괴하며 바라보는 아웃사이더, 그럼으로써 세상에 모든 것(자신을 포함)에 약간의 경멸과 안타까움을 품고 살아가는 문학가였다. 산도르 마라이의 시대가 일, 이차 세계 대전과 부다페스트 점령을 지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라자르가 느끼는 것이 바로 마라이의 가장 깊은 속마음이었을 성 싶다. 마라이는 일롱카도, 페터도, 유디트 보다도 라자르를 본인과 가장 가깝게 생각했을 것 같다. 라자르의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은 과도기적 모호한 시대, 파괴되어 가는 것들 사이에서도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을 갖고 진실을 추구할 수 밖에없는 작가적 본성에서 비집고 나온다. 마라이는 자신의 힘없는 상황, 그러면서도 완전히 손을 놓지못하고 펜을 드는 자신의 심정을 유디트의 입을 빌려, 라자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조하듯이 구현해낸다.

 본문에서 각 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몇 문장과, 내 맘에 들었던 구절들을 따왔다.

 

"집? 사회적 신분? 점심 저녁으로 같이 밥을 먹고,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물 한 컵과 두통약을 주듯 이따금 약간의 애정을 베푸는 사람? 이런 어설픈 삶보다 더 굴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요? 저는 한 사람, 온전한 한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일롱카, 134p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언제나 상대방의 영혼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건 죄입니다."고해성사 신부님,102p

"부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현실이 훨씬 더 단순하고, 평범하고,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기괴하고 위험한 것에 놀라실 겁니다" 라자르,121p

물론 내가 라자르의 집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 일들이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았어. 라자르와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에도 나는 남편과 함께 이년을 더 살았어. 세상만사가 보이지 않는 시겟바늘에 맞추어 일어나지 않나 싶어. 인간은 말이야. 사건이나 상황이 결정을 내린 후에야 비로서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일롱카, 222-223p

그래, 하느님은 내가 그것을 직접 몸으로 겪고 견디어 내게 하심으로써 나를 벌하시고 축복하셨어.내가 무얼 겪었나요? 바로 그것, 서로에게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일롱카,234p

처음에는 외로움이 유죄판결처럼 가혹하게 느껴지네. 외로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 있어. '누군가와 함께 있는게 좋지 않을까? 품위에 좀 맞지 않더라도 동행자, 낯선 여인, 누구하고라도 나눌 수 있다면 무거운 형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것은 약해지는 시간일세. 그러나 그 시간들은 지나가기 마련이네. 삶의 모든 비밀스런 요소들이 그렇듯이 모든 일이 이러나는 시간이 그렇듯이 외로움 또한 차츰 자네를 끌어안기 때문일세. 페터, 392p

누구한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네. 페터, 435p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어쩌면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없을지도 몰라. 나는 그 심정을 잘 알아. 나중에 우리가 이혼했을 때 나도 한동안 그 사람을 기다렸어, 일 년 남짓 그런 식으로.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천식 환자처럼 숨을 헐떡이며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찾아 더듬는 거야. 이제 다른 사람이 거기 옆에, 가까이에, 이웃집이나 옆 동네에 없다는 사실을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는 것지. 거리를 돌아다녀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아. 일롱카, 228p

나는 두번 다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때 알았어. 다시는 누군가를 못 만나리라고 꺠닫는 순간, 어떤 심정인 줄 알아.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해야할까. 유디트,608p

감상평이 마치 소설의 예고편이 될 수 있도록 본문처럼 깊숙하고 매끄럽게 빠져들수 있게끔 적으려고 했는데 함량미달이네요. 위의  단편적인 문장들은 전체 글에서 일부를 따온 것에 불과합니다. <결혼의 변화>는 모든 문장이 인동덩굴 문양처럼 아름답게 얽혀있어요. 읽어가다보면 세 인물의 담담함에서 , 아직 남아있는 -그러나 거의 다 꺼진-사랑의 잔재에서 위로를 받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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