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백승무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 소설인 부활.

장편소설로는 <안나 카레리나>, 단편으로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포함한 몇 작품을 읽은 후 나에게는 호감인 작가였기에, <전쟁과 평화>나 <부활>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활>을 먼저 읽게 되었다.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1권까지 읽은 서평을 써보려고 한다.


1. 러시아 문학치고(?), 고전 치고 읽기 용이하다!

문학동네의 번역의 능력인지, 톨스토이의 <부활>이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러시아 문학 치고는 가벼운 편이다. 읽기가 쉽다. 톨스토이의 동일한 장편과 비교하자면, <안나 카레리나>에는 톨스토이가 살던 러시아 사회의 시대적 배경이 많이 녹아 들어가 있고, 여기에 더하여 톨스토이가 관심 있어하던 정치나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에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부활>은 좀 다르다. 배경이 되는 교도소나, 인물들의 직업인 판사, 지방 국회 의원, 매춘부 등은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직업이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배경이라면 신분제도 정도가 있겠지만, 그 정도는 이해가 어렵지 않다. 여기에 전체적인 줄거리는 귀족 남성과 하층민 여성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구도는 현대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많이 쓰이는 소재이다. 이렇게 인물이나, 배경이나, 소재가 어렵지 않은데, 여기에 더하여 매력적인 요소는 이 소설이 "고전"이라는 사실이다. 레프 톨스토이라는 대문호가 쓴 고전이기에, 결코 가볍지는 않다. 내용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안에 녹아 들어가 있는 문제 의식이나, 던지는 질문들이 묵직하다. 고전이나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 문학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던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러시아 문학인데 이름이 어렵지 않다.)


2. 왜 사람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까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이상하리만큼 사람은 비슷하다. 사람이 비슷하기 보다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 비슷하다는 게 조금 더 올바른 표현일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본 작가가, 그것을 녹여내어 소설로 만들게 되면 '고전'이 된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공감하고, 깨닫게 될 수 있다. 고전이 가지는 의미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활>에서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특별히 몇 개를 꼽아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1. 선택에 대한 문제

이 소설의 제목은 왜 <부활>일까? 남자 주인공인 네흘류도프가 인생에 있어서 큰 선택을 감행하며, 그 선택을 통해 인격적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부활1>에서는 네흘류도프가 이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며, 그가 사회의 통념과 내면의 갈등을 뒤로 하고 이전의 삶으로부터 돌이키기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네흘류도프가 선택하는 삶은 "선함"을 추구하는 삶이다. 사실 매 순간 선함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옳은 것임을 알고 있지만, 선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 부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내가 편한 것을 따르려는 마음, 이제까지의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믿음을 부인해야만 '선함'을 따르겠다고 결심할 수 있게 된다.

선택하기까지의 그 과정은 참으로 어렵지만, 그에 뒤따르는 달라진 삶의 모습은 꽤나 감동적일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선'과 '악'의 잣대가 개인에게로 넘어가서 그 경계가 다소 모호해져 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어렴풋한 '공동선'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공동선'을 따르는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묘한 경외감이나 감동이 있다. 네흘류도프에게서 그런 경외감이나 감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


2-2. 교회에 던지는 톨스토이의 날카로운 질문

<부활>이라는 소설을 쓰고 톨스토이가 러시아 정교회에게 상당히 큰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알겠더라. 상당히 신랄하게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행동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행동들이 우리 시대에 메스컴에 비춰지는 몇 교회들의 모습과 비슷하여서 참으로 놀랍다. 정말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보다.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니 행동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비슷한 행동이 200년 전 소설에서 발견될 때의 놀라움과 참담함이란.... 이런 톨스토이의 비판에 러시아 정교회가 자신을 돌아보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교회들도 <지금 교회가 가고 있는 길이, 하고 있는 행동이 정말 예수가 이 땅에 와서 행하려고 했던 일들과 부합하고 있나>라는 시대의 질문에 대해, 등을 돌리고 교회 안에 갇혀있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기를 참으로 바란다.


3. BUT 아쉬웠던 점은

1) 네흘류도프는 선한 길을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네흘류도프는 어쩌면 아주 이상적인 인간상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갈등이 조금은 존재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게, 그리고 그 후 선한 길을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모두 자연스럽고 쉬워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결정을 내리는 것도 어렵고, 결정을 따라 사는 것은 더 어렵다. 선한 길을 택하려고 결심한 사람도 작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번번히 무너지기 일쑤다. 소설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해주는 것은 좋지만, 나랑 너무 동떨어진 세계라면 그 인물은 그저 소설 속의 인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2) 톨스토이가 잘 알았던 귀족 세계, 그 당시 귀족들은 사회 고위층이었는데, 그 안의 세계는 그다지 고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귀족들은 고귀하게 보이기를 원했고, 그 간극이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낳았다. 톨스토이는 그것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고발하길 원했고, 그렇게 했다! 톨스토이는 귀족 사회에 만연한 위선과 허영을 낱낱히 파헤쳤고, 그에 비교하여 귀족들과 사회가 '추악하다'라고 보았던, 평민을 넘어선 범죄자 사회 안에 있는 선량함들을 보여주었다. 이런 비교가 소설적 기법이고, 톨스토이가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귀족에 대한 그의 시선이 날카롭기만 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어느 집단이나 선한 면과 추악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기 마련인데, 귀족을 향한 그의 시선에는 조소만 가득하다. 톨스토이가 허영심을 특히 혐오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난 균형이 좋기 때문에 그의 이런 시각이 아쉬웠다고 감히 말해보겠다.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고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며,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어떤 곳은 차갑고 또 어떤 곳은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모든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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