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붓다 - 사진과 그림으로 만나는
마이클 조든 지음, 전영택 옮김 / 궁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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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책 광고를 보고 주저없이 주문한 책... 이라고 책 앞에 적어두었다. 그게 작년 6월의 일이다. 전면 올 컬러에다가 말하자면 온통 화보페이지로만 구성된 책. 세계의 부처님 모습을 한데 모아서 서로 비교해보고 연구해 놓은 책.. 각 나라마다 각 문화권마다 다른 부처님의 얼굴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책인가. 게다가 전체는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앞쪽은 인도/네팔/스리랑카/타이...이런식으로 나라별로 나뉘어있고 뒷부분은 머리/백호/눈/귀... 이런식으로 신체부위별로 나뉘어 있는 독특한 구성이었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책이야. 정말 참신하군..

그런데 말이다. 책을 쓴사람은 마이클 조든(조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그건 별 문제 없다. 작가이자 BBC방송인이며 동양의 종교에 관한 스무권 남짓의 책을 썼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옮긴 사람이 전영택이란 분이다. 누구냐고? 나도 잘 모르는 분인데.. 이분의 경력이 서울대 천문학과 및 대학원 졸업에 기술고등고시 출신이란다. 현재 한국 전력거래소에 근무하고 있고.. 번역한 책들이 「바이오테크시대」, 「인간은 얼마나 오래살수 있는가」, 「천문학을 잡아라」 등등...

 

200컷이 넘는 컬러사진과 종교기록을 통해 붓다의 일생 재조명

불교의 심장부인 아시아 15개국 순례, 아름답고 놀라운 불교미술 대탐험!

불상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사진의 의미와 유래를 낱낱이 해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책을 번역해주신 그 고마우신분이 불교공부는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분이란 사실이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증명해주는 것은 바로 책의 내용이다. 몇가지만 써보자.
1)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원 용주사’가 ‘수원. 용수사’로 표기되어 있다.

2) 조계사 벽화중 부처님이 성을 나가기 전에 성안의 모습을 관찰하는 장면이 있다.
  이 도판의 소개글이 이렇다. “불교도의 정신적 발전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심우도를 뜻하는 듯) 서울 조계사 벽화의 일부"

3) 21페이지에는 태자인 싯다르타와 데바닷타가 활쏘기 시합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유명한 북을 일렬로 늘어뜨리고 관통하는 시합장면인데 “양친이 지켜보는 가운데 활쏘기를 연습하는 싯다르타”라고 되어있다.

4) 일본 도다이지(東大寺) 천수관음상의 사진에 붙은 설명은 이렇다.
“팔이 수천개인 인도의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에서 유래한 일본 자비의 여신 칸논” 참고로 칸논은 이렇게 표기한다-觀音(아발로키테스바라는 관음,관세음보살의 인도표기이다)

5) 덧붙여서 이런 내용도 있다. “인도의 아발로키테슈바라 보살은 중국에서는 관인(觀音)으로, 일본에서는 칸논(觀音)으로 바뀌었다. 네팔과 티베트의 수호불이자 대승불교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 남성보살은 여성으로 변하여 자비의 여신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한자표기는 필자가 삽입한 것으로 본문엔 없다.

6) 마하보디 사원 앞의 보리수나무가 폐허속에서 계속 싹을 틔워서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실은 전란으로 여러차례 나무가 죽었고, 그때마다 예전에 ‘스리랑카’에 분양했던 보리수나무에서 씨앗을 받아 다시 심은 것이다.

7) 좋은 경구를 옮겨놓고선 ‘용수보살(티베트)’.. (용수보살은 인도의 전설적 승려로 티벳과는 상관없음)

 8) 윈강석굴의 명백한 관세음보살 사진에는 “장식한 관을 쓴 붓다”라고 되어있다.

 9) 보리달마는 “잡념을 없애기 위한 면벽수행법을 창시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있다”라고 되어있다. 달마스님의 면벽수행은 잡념을 없애기위한 한가한 놀이가 분명 아니다.

10) 대전.법주사 라고 되어있는 표기는 뭐 귀엽게 넘어가더라도 법주사 청동불 사진에는 ‘석불’이라고 설명해 놓은건...

 11) 한국선종의 최대 본산이 어디인지 아는가? 난 이 책에서 배웠다. ‘여주 신륵사’란다.

 12) 한국 사찰은 ‘산 꼭대기’에다가 많이 지었다고 하더군요..(참고로 사찰은 최소한 산의 8부능선 이하에 짓는다. 실제로 대찰은 3부높이에 짓고 그 이상에 짓는 사원은 거의 '암자'이다)

 13) 나발에 대한 설명..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삭발을 하고나서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그런식으로 자란다는 것’

 대강 눈에 띄는 것만 모아도 이 정도이다. 게다가 관세음보살을 예로 들면 책 전반을 거쳐서 관음보살, 관자재보살, 아발로키테슈바라 등등 표기가 계속 바뀌고 있다. 다른 불보살 명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참 듣도보도 못한 신비한(?)해석도 참 많다. 예를 들어 부처님 목의 삼도모양은 입 주위가 세겹의 주름이 진 소라고동의 무늬에서 왔다던가, 시무외인은 데바닷다가 풀어놓은 코끼리가 그 앞에서 고꾸라져서 죽어버렸던 일화에서 왔다고 설명해 놓던가 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여타의 심각한 오류들을 생각해보면, 다른 부분 -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각종 사진과 해석들도 정말 사실이고 검증된 자료인지 믿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사실 나도 동남아의 불상 도상에 대해 또는 그 유래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안타깝게도 그런 좋은 공부기회를 다 빼앗아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 책을 불교미술에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열심히 공부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고르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내가보기에 이 책의 오류는 저자와 번역자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그 피해는 그 두사람에서 끝나지 않을 듯 하다. 다행히 시대를 뒤흔드는 베스트셀러가 되진 않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래도 퍽 많이 팔려나간 듯 한데.. 도대체 이런책이 시중에 돌아다닐 동안 학계에선 뭘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진만 보아도 참 아까운 책인데... 그런데 아직 공부가 되지 않은 나로서는 어느 설명도 참고하거나 공부할 수가 없다. 씁쓸하다..

(번역하신분께는 죄송한 글이 되었네요.. 그분을 이전에 안적도 개인적인 감정도 없으나.. 이 책은 너무 문제가 많고 이 책으로 뭔가 공부해보려는 사람들에겐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쓴 글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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