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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라는 제목그대로 운동을 소재로 한 에세이다. 제목에서도 눈치채겠지만, 운동을 열심히 했던 누군가의 성공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헬스장에 기부하고 요론조론 핑계로 운동가지 않을 이유를 찾고, 100일을 못 채워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처럼 운동의 동굴을 뛰쳐 나오는 이야기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필력에 놀랐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 흔하고 뻔한 이런 일상을 이렇게나 맛깔나게 글로 쓸 수 있다니.
나라면 공책 한페이지 정도 채우고 말았을 일기같은 이야기를 작가는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평범하고 보통의 일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작가의 괸찰력이 놀랍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정체도 없이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활자로 표현되어 있으니 반가웠고 옛날 추억들도 소환되어 내심 즐거웠다.
하... 살면서 이런 기부 한번씩은 다들 하지 않나.(아니라면 당신은 다른부류인걸로) 나 역시도 수능이 끝난 후 20대 시절 중 절반은 운동 유목민으로 떠돌이 생활을 했었다.
헬스장부터 요가, 방송댄스, 스피닝, 필라테스, 테니스동호회, 자전거, pt까지... 시대적 흐름과 함께 했던 운동들의 흥망성쇠에서 흥과 성에 많은 기여했다.
처음에는 남의 운동 얘기를 왜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저자의 필력에 빠져 '어머어머!! 이거 내 얘기야~' '맞다 맞다 내가 그랬어~!'하며 책에 빠져들었다.
추천사에 보면 "운동의 재미 대신 글 읽는 재미에라도 푹 빠지라는 작가의 배려인지....(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작가 추천사 중)" 라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이지싶다.
매 페이지마다 나를 웃게하는 킬링포인트를 만날때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지 슬며서 넘겨보게된다.
아쿠아로빅을 다니면서 붙인 재미 중 하나는 그 혼종의 플레이 리스트였다. 선생님의 취향, 수강생의 연령과 취향, 운동에 적합한 비트와 리듬을 모두 고려하여 선별된, 모든 것이 뒤섞인, 음악계의 김치치즈피자탕수육 같은, 괴랄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명곡이며 한 시간 동안 음악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는, 모든 음악이 고속도록 테이프 판매자의 터치를 거친 듯 묘하게 '뽕삘'이 나는 운동요.
P.72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그야말로 춤을 잘 못춰 "뚝딱거리는" 뚝딱이의 몸뚱아리면서도 방송댄스를 과감히 등록했던적이 있다. 시작 동기는, 회사에서 동료 1 정도로 튀는 법이 없던 그녀가 야유회 장기자랑 시간에 방송댄스로 좌중을 휘어잡으면서다. 남들은 요리조리 팀으로, 하다못해 둘이라도 짝을 만들어 묻어가기 바쁜데, 그녀는 위풍당당 혼자서 카라의 <미스터>를 간주부터 피날레까지 칼군무로 추는 모습에 반해 다음날 바로 그녀가 다니는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F등급 탈락 직전의 연습생처럼 맨뒷줄 구석에서 상하체가 각계전투로 박자를 타느라 한달 내내 3분짜리 노래의 춤 하나도 마스터하지 못한체 끝이났지만,운동시간마다 연습실 가득 울려퍼지는 운동요가 좋았고, 화려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만은 너무 좋았었다.
이렇게 추억에 소환되어 있다가 문득 어떤 대목에서는 감동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등록하고 싶은 운동도 있었다.
8개월 동안 인바디를 두 번인가 할 정도로 수치에 무감하게, 대신 소화할 수 있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기쁨에 몰두하며 운동을 했다. 느리지만 꼼꼼한 속도에 더 이상 초조해하거나 지겨워하지 않았다.
p.86 #금쪽같은 여자 트레이너
나는 지금 이 운동을 제공한다는 집근처 센터를 검색 중에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했던 많은 운동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직 평생을 함께하고픈 '운동의 반려자'를 만나지 못해서(그랬다는 핑계를대며)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애먼놈들만 쑤시며 기웃거리고 있다.
현재는 애둘 육아맘으로 운동은 꿈도 못꾸는데... 뭐 물론 이것도 핑계다. 애들 키우며 홈트로 끝내주는 몸매를 유지하는 비범한 이들도 있으니...
나이가 드니 부부끼리 하기 좋은 운동이라며 주변에서 골프를 추천해주는 이들도 많다. 그렇게 있어(?) 보이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부부끼리 주말에 배드민턴 채 하나씩 둘러매고서라도 밖에 나가 함께 운동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싶었다.
이제 슬슬 평생을 함께할 운동 하나 가져볼까... 스물스물 올라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